고종 황제의 비밀 지령 - 헤이그 특사, 을사조약 무효를 주장하다 근현대사 100년 동화
이규희 지음, 정진희 그림 / 풀빛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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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제위에 오른 고종은 이후 러일전쟁, 을사늑약(p157) 등을 거치며 망국의 비운을 거친 군주입니다. 하지만 마냥 수동적으로 사직을 넘겨 준 건 아니어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세 분을 비밀리에 특사로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의사를 대변하게 합니다. 그러나 일본 측의 필사적인 방해로 인해 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하고, 부사 이준은 현지에서 병이 악화하여 끝내 순국합니다(p144).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동화는 헤이그 현지에서 세 분의 특사를 수행하며 결정적일 때 대한제국의 국익을 위해 종횡무진 활약한 이강수(p40, p71)라는 남대문 출신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물론 강수는 실존인물은 아니며, 다만 그 시절 역사의 현장에 충분히 있었음직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관들을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을 맡아 하는 급사직이란, 당시에 매우 보편적이기도 했고, 어린 강수가 마치 조선인들을 대표하듯 겪는 이런저런 고초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지지와 공감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지금도 남대문 인근에는 주변과 완전히 다른 맛을 자랑하는 설렁탕 전문 노포가 있는데, 어린 소년 강수는 그런 설렁탕집에서 배달을 하다 일본인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응징을 해 주다 치안당국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블라디보스톡(해삼위)에 도착하여 강수 눈에 조선인인 듯하여 질문을 건넸던 노인은 "부, 까레이스끼"라 대답하는데 이때의 감탄사 "부"는 不입니다. 즉 노인은 중국인이었던 거죠. 안타깝게도 강수가 멀리서 찾아온 김창주는 벌써 고인이 된지 오래였습니다. 김철만 선생의 호의로 강수는 해삼위 개척리 그의 저택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데 애가 원체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 주변의 호감을 얻습니다. 물론 일본의 불량청소년들 때문에 이런 고초를 겪게 되었다는 사연이 알려지고부터 김철만을 비롯한 개척리 주민들이 더욱 비분강개한 점도 있습니다. 어느날 김철만의 집을 일성(아호) 이준이라는 분이 방문하고, 그때부터 강수의 운명이 급변의 계기를 맞습니다. 

보재 이상설 선생은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도 북간도 서전서숙(p79) 관련하여 그 존함을 배운 위인입니다(헤이그 특사 중 정사 역할 외에도). 강수는 공교롭게도 2년 전 한양에서 보재가 당시 의정부 참찬 신분으로 을사늑약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던 모습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회는 상동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보재는 비분강개하여 자결을 시도했었으나 주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었고 영특한 강수는 그때의 목격담을 이야기하며 선생과 기분좋게 재회합니다. 김철만 선생은 꼬마가 보재와 구면이었다며 흥을 돋웁니다. 

그런데 강수는 이들 지사들이 개척리에서 회동하는 자체가 뭔가 범상치않은 사연이 있겠다며 주의를 집중하니, 이런 걸 보면 과연 애가 똑똑하다 할 만합니다. 강수는 민족을 위한 중대사에 자신도 한 힘을 보탤 것을 간청하며, 두 지사와 김철만은 심부름꾼을 둔다기보다 청년 인재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소년을 헤이그행에 동참시킵니다. 

이제 강수는 역사의 현장에서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될 운명에 한 발을 디뎠습니다. 가는 길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도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대외개방 상징인데, 여기에 이르러 일성과 보재는 앞선 문물을 배움이 민족의 자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수에게 가르칩니다. 통역관 이위종이 합류하고, 이범진 선생이 베를린으로 다시 떠나는 그들을 배웅합니다. 책 p88에도 나오듯 이범진 선생의 친아들이 이위종입니다. 

p101의 리더잘(고유명사)은 네덜란드어로 Ridderzaal이라 쓰는데 네덜란드어 ridder가 독일어 Ritter(기사)와, zaal은 독일어 Saal(궁전)과 각각 동계어입니다. 강수는 헤이그 리더잘 회의장으로 기지를 발휘해 들어가서 태극기를 펼치고 특사들을 입장시키려 들지만 일본의 방해로 좌절합니다. 사실 일본 측의 방해공작이 있겠음을 충분히 예상했기에 우리 측에서도 헐버트 박사를 일종의 연막으로 썼으나, 강수가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열차에서 본 그 일본인이 결국은 첩자였다는 게 드러납니다. 강수는 윌리엄 스태드라는 기자를 알게되고 신문에 한국의 입장을 게재하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강수는 이준 열사의 장례를 마치고 호머 헐버트(제4의 특사. <사민필지>의 저자) 박사를 따라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납니다. 이런 청년이 있으니 비록 나라를 뺏겼을망정 겨레의 앞날은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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