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현재다
안원근 지음 / 문이당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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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에서 5.18 광주만큼 그 근본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대사건도 없습니다. 불의와 폭압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선 그날의 광주 시민들이 보여 준 용기, 과단성 있는 행동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들이 참된 민주주의를 향유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작가 안원근 선생은 서문에서 폴 고갱의 그림 제목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인용합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등만 따숩다고 다가 아닙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이웃과 공유하며 그 벅찬 감동을 누리에 전파하며 겨레와 후손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했다는 그 보람,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혈관에 뜨거운 피가 흐르게 하는 근원적 동력일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광주의 애국혼은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까지 닿을 수도 있습니다. "중근아! 머리는 순간마다 움직이는 신체부위이다.(p31)" 과연 시대를 바꿔놓은 위인에게는 그런 그릇을 키워놓으신 위대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들은 비록 야만적인 일제 당국에 끌려가 무수한 고초를 겪겠으나, 겨레를 대표하여 그 장쾌한 의거를 완수하고 명분을 세계에 떨친 그 결과를 생각할 때 그저 감격스러우시기만 합니다. 이처럼 민족의 영웅을 낳고 기르신 한 분의 어머니는 그 아드님뿐 아니라 겨레 전체에 은덕을 끼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범의 모친이시자 당신 자신이 한 분의 독립운동가였던 곽낙원 여사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작가께서 이 대목을 서술하며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의 존함을 특별히 반복 강조함도 우리 독자에게는 절절하게 다가오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또 작가는, 이토 히로부미라는 자가 어느 특정 시대, 장소에만 나타난 악인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반복 출현하는 독재자상을 대표한다고 지적하며 그 죽음이 발생한 날짜의 특수성까지 환기합니다.   

"반복되지만 인간 세계에 닥친 재앙은,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강한 인간애가 뿌리내리고 있다고 봅니다.(p95)" 의로운 교사 서상록은 인신공희(供犧) 설화까지 거론하며, 기회주의적 정치군인들(p34), 간교하고 약삭빠른 출세주의자(p69)들이 권력을 찬탈하려 기어이 야만적인 수순에 돌입한다면,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각성한 시민들이 봉기하여 역사의 동맥과 정맥에 악성 종양처럼 순환하는 폭력의 고리를 단호히 쳐내야 하지 않겠냐고 하성미 선생님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신의 형상을 한 우리 인간은 (결국) 신과 같은 동물이다(p57)." 인신동형론을 말하는 김진자씨의 열변에는, 이미 피의 희생으로써 면면한 폭압의 세습을 일거에 혁파하려는 단호한 의지가 스며 있습니다. 

ooo은 보안사령관이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주제갑은 p69의 설명에 의하면 군의 정보계통에 근무하는 인사, 또는 정보 장교(p89)라고 하니, 아마 당시 ooo의 신임을 두텁게 받은 요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도도한 변설을 통해 조선 7대 임금 세조의 쿠데타와 이후 벌어진 잔혹한 피의 숙청을 옹호하며, 현대사에서 민중의 의거에 의해 하야한 ooo의 행적까지 연결하여 두둔합니다. 악력(握力)이 유달리 강한 그의 눈빛은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를 연상케 합니다. 그는 늑대 무리의 선발대처럼 눈을 부라리며 금남로에서 사냥감을 물색할 것입니다. 이들의 수법에는 돈, 검고 더러운 돈의 위력이 또한 그림자처럼 따랐는데, 왜 독재권력이 항상 돈의 추악한 생리와 질펀하게 엮여야만 했는지도 잘 암시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다도해는 바다의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곳(p102)." 여기서 서상록과 하성미 두 교사는 꿈꾸는 듯한 정서적 교감과, 절경(絶景)이 자연스레 빚는 육적 욕망 사이에서 무척이나 낭만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남달리 민감한 성격이었던 하성미 선생은 여러 복잡한 갈등을 겪는데 기어이 자궁근종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습니다. 이 와중에 김진자씨는 아직도 잔존한 봉건적 남녀차별의 폐습이 빚은 영향에 괴로워하며, 시대의 질곡이 개인에게 여전히 가하는 악덕과 압박에 대해 깊이 사색합니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조변수와 친일 문인 지미련의 소생인 조성균은 벌써 무등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결에 피냄새를 맡았는지 그 하이에나 같은 후각을 발동하며 동네 어르신들을 모욕하고 다닙니다. 그는 광주 현지의 분위기를 탐지하여 서울의 정치군인들에게 보고하고 특유의 강경 스탠스를 고집하여 대치상황을 악화하는 데 일조합니다. 

p186에서 서상록은 계엄군의 기세에 대해 마치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호남을 말살하려 든 일본군의 살기에 비깁니다. p200에 나오듯 이때의 계엄군은 동시다발적 진압책을 펴며 그간의 후퇴에 대해 분한 기운을 참지 못하며 앙앙불락했다고 서상록 교사 등은 분석합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앞두고 저세상에서의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서, 하 두 교사의 얼굴과 가슴에 꽂히는 비정한 계엄군의 총탄 묘사를 끝으로 소설은 일단 막을 내리지만 그 후편의 진행은 현대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이어진다는 점 모두가 아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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