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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읽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인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4년 8월
평점 :
이 책의 추천 서문은 이현정 고대 교수님이 쓰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성년자, 청년, 어린이 등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글에서도 드러나듯 그들의 표현에 어떤 나쁜 의도나 욕심 같은 게 담겨 있지 않음이 누구 눈에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시경(詩經)>을 두고, "시 삼백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라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일개 독자인 제가 이 시집을 읽어도, 젊은(어린) 시인의 그 노래하는 마음에 어떤 더러운 티끌 같은 게 없음이 피부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p18에는 "물놀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아이야, 물장구를 그만 치려무나, 아이야, 이제 그만 단잠에 드려무나 같은, 자못 나이 지긋한 옛 선비들의 시구(詩句), 시조, 가사 초장에나 나올 법한 청유문이 매우 구수하면서도 애절하게 들립니다. 맑디맑은 하늘 아래 그 빛깔을 닮은 물이 흐르는 시골, 설령 아이가 내에 앉아 물을 튀긴다 한들 그 교란이 얼마나 멀리 미치겠으며 밤에 늦게 잠들어 소릴 낸들 그 파장이 기껏 얼마겠습니까. 그래도 그 촌락은 본래 같은 호흡을 유지했었으며 여태 간직하던 고요의 템포가 있습니다. 이걸 지켜 주라는 겁니다. 평화로운 산골의 참한 정태는 힘없는 아이의 가뿐 호흡만으로도 어느새 무너질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p38에는 <우산>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의 입성이 젖지 않게 하늘의 질서 없는 수분 분출로부터 지켜 주는 고마운 우산. 대개 우산을 신장 옆에 툭 던져 두곤 하지만 시인은 좀 색다른 곳에 곱게 보관하시나 봅니다. 마지막 행에서 그 고마운 우산을 "그녀"라며 성별(gender)을 부여해 대접하는 배려가 돋보입니다. 저도 저의 오래된 우산한테 그녀라고 한번 불러 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 나름의 결실을 맺는 건 아닙니다. p50에는 <습작>이라는 시가 나오는데, 젊은 시인의 노래치고는 사랑의 barren함을 매우 쿨하게, 혹은 시크하게, 괜찮다, 딱히 상처 받을 일 아니다, 나나 너나 괜한 가책과 미련으로부터 한시바삐 벗어나자, 이런 개운한 정서를 몇 줄 안 되는 시행 안에 담백하게 담아냅니다. 멋있습니다. 쇼팽의 습작은 그 어느 완성편보다 더 완결된 구조 아니겠습니까(물론 연습곡이라는 뜻이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가장 필요충분한 정의는 청마 유치환의 어느 작품에 나오는데, 아직 나이도 젊으신 인창 시인은 p66의 <너랑 나만은>에서 역시 멋지게, 사랑에 대한 깔끔한 개념 규정을 하는 듯합니다. "받음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고, 함에 있어서는 숨김이 없고, 줌에 있어서는 인색함이 없는" 이 주어를 설령 다른 미덕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 자체로 멋진 잠언이 될 것 같습니다.
"글자 하나의 차이, 너는 오른팔 나는 왼팔(p76)" 사랑 애라는 글자가 그렇게도 해석이 되나 봅니다. 중요한 건 너와 나의 손이 맞잡아져 그 모든 설레는 감정과 애착과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가장 흥분되고 보람차고 뿌듯한 그 체험이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이는 매서운 산길 때문인가 혹은 그대 때문인가?" 현장에 있지도 않은 그녀가 산정(山頂)에의 온전한 호흡을 방해할 수 있음도, 우리네 삶에서 대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긴치않은지를 말해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