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어 Chair - 혁신적인 의자 디자인 500
파이돈 편집부 지음, 장주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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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그저 모양만 예쁘게 뽑는 과정이 아니라, 기능성을 그 안에 내포합니다. 멋지게 고안된 디자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저 겉모습이 멋져서가 아니라, 그 겉모습 안에 들어 있을 것 같은, 발휘될 것 같은 기능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란 매우 실리적이고 타산적인 동물입니다. 예쁘기만 하다고 좋아할 리 없고, 그 예쁨이 나한테 안겨줄 수 있는 (잠재적인) 효용과 이익에 마음 설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의자란, 본래 다른 가구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아주 단순한 기능을 수행할 뿐이었으나, 경제가 윤택해지고 문명이 고도화됨에 따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진화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의자가 근현대에 어떤 모습으로까지 발전했는지를, 미려한 사진들과 함께 다룹니다. 사진 한 장이 백 마디의 텍스트를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 실린 의자들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정말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돕습니다. 어떤 의자는 의자라기보다 한 점의 예술작품, 공예품 같아, 거기 앉기가 꺼려지는 마음이 들 정도인가 하면, 다른 의자들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릴 듯 안온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산업디자인은 현장의 엔지니어, 디자이너들의 무수한 고민이 녹아드는 영역이며, 그 치열한 고민의 산물을 빚어내는 워크숍이라고 하겠습니다. 

p68을 보면 과연 이 조형물이 의자인지, 아니면 어떤 해양 도시의 랜드마크를 미니어처화한 작품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제목은 그저 소박하게 "나무의자"라고만 붙었습니다. 마치 마르셀 뒤샹의 (철물점에서 흔히 취급하는) 변기가 "분수"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처럼, 이 조형물에도 어떤 다른 심오한 의의가 저 3차원 모양새 안에 들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려면, 일단 몸부터 깨끗이 씻은 후이거나, 아니면 저 좁은 곡면으로 몸이 쏙 포함되게끔 체형부터 날씬하게 관리를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다만, 설정각이 굉장히 넓은 편이라, 길게도 뻗은 등받이에 몸을 의지하면 피로가 확실하게 풀릴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 책 서두에 알려주었듯, 디자이너의 이름이 굵은 글씨로 표기되었고, 다른 부수적인 이름들은 제조사를 표시한 것입니다. 비록 계약관계의 변동 때문에 제조사는 바뀌어도, 최초 디자인을 세상에 내어놓은 디자이너의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는 점 다시 확인할 수 있죠. p172를 보면 세키테이 의자가 나오는데, 앙상한 뼈대만으로 담백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저 튼튼한 프레임 안에 어느 사람이라도 자신의 몸을 마음놓고 맡길 수 있게, 어떤 듬직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역시 명품임을 실감케 합니다. 앞트임만 없으면 마치 아기가 눕거나 몸을 뒤집을 수 있는 크립(crib)처럼으로도 보입니다.  

바실리 의자(p212)는 마치 역 대합실이나 병원 대기실에 비치되었을 법한 모양새이지만 길이가 짧고 팔걸이가 좁게 배치되어, 누구라도 이 의자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역시 최소한의 장식과 프레임만으로 그 용도를 잘 구현한, 명품의 디자인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 의자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그 색상입니다. 땅에 머물러 있지만 지향만은 하늘을 향한다는 디자이너의 야심이 저런 색상으로 표현되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이 두꺼운 책에 수록된 의자들은 탄생 후 40년 이상 지난 것도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도 있어서, 오래된 명품은 왜 그 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았는지(최근까지 출시된다는 건 그만큼 현대 소비자의 취향까지 만족시킨다는 뜻입니다), 또 최근의 상품들이라면 왜 이런 디자인이 동시대인들에게 간택되는지 그 이유를 독자 앞에 자랑스럽게 내세운다고 하겠습니다. 

p492를 보면 등받이가 원통형으로 붙었습니다. 역시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물론 원통형 등받이는 이 작품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저런 길이, 또 직경, 비율의 원통이 저 지점에서 등받이로 쓰이는 건  보는 이에게 생경감까지 줍니다. 다만 그 생경감이 생경감으로 그치지 않고, 전에 마주하지 못했던 안락함과 반가움을 선사한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우리를 반겨 주는 건 의자라는 가구입니다. 이 가구가 가구를 넘어, 심미적인 만족감과 각성까지 전달하는 게 이런 명품들의 공통점입니다. 평소에 의자라는 가구를 예사롭게 봤던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하다못해 자신의 집에 아무렇게나 놓인 낡은 의자조차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들 멋진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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