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라이즈 포 라이프 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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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나고 성장했으면서도 그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명철한 지성을 편히 쉬게 내버려 두지 않고 치열한 지적 모험에 몰두했습니다. "삶은 긴 죽음이다. 나는 왜 무수히 많은 이들의 생을 단축시켰고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지 못했던가? 왜 나는 냉정한 관객으로 죽는가?(p50)" 아우구스투스와 (바로 다음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의 최후는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맹렬하게 남의 고통과 시련에  공감하는 것도, 냉연히 그들을 관찰하는 것도, 정상적인 인간에게라면 사실 일관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죽음의 순간 미련이 남아 다시 몸부림쳤는데, 그에게 베개를 뒤집어씌운 건 일종의 coup de grace였는지도 모릅니다. 

"현대인들이 악한 충동을 더 이상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며, 세상은 이제 선(善)의 왕국으로 들어선 듯하다(p67)." 무슨 뜻일까요? 얼핏 보아 앞뒤가 모순인 듯해도, 중근세에 종교의 억압 때문에 욕망 자체를 악으로 간주하며 과도한 죄의식에 시달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그 무엇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더 편안히 세상만사를 대하게 되었다는 뜻 같습니다. 만취한 자가 거리에서 주정을 해도 단지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이지 누가 그에게 다가가 단죄를 하지는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을 벌여도 그러려니하고 자기 갈 길을 갈 뿐입니다. 니체의 시대는 근 150년 전입니다만 이런 대세는 지금까지 큰 단절없이 방향을 잡은 듯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와 사람들이 이처럼 쿨해지는 것과 대조되어, 철학자와 사색가는 남들의 몫까지 더 괴로워하고 더 슬퍼합니다. 니체는 자신의 고뇌를 항상 "슬픔"에 포섭하는 게 독특한 태도입니다. 

선해 보일 뿐 내면까지 선해진 것은 결코 아니며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순백으로 거듭나기 무척 어렵습니다. 사람은 원래 모든 점이 불완전합니다. 다만 그 불완전함을 스스로도 싫어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p78에서는 시인의 예가 하나 소개됩니다. 이 시인은 스스로도 자신이 부족함을 알고 그의 작품을 읽는 대중도 그를 압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시인은 열정을 다해 무엇을 노래하며, 그런 몸부림이 좋아 대중은 그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이것이 바로 불완전함이 주는 매력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하다면 그것은 신이며 신이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예토에서 뒹굴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애쓰는 건 언제나 인간이며 그래서 인간들의 박수를 받습니다. 

니체는 신이 죽었음을 선언했던 사람이며 그 이전에도 그런 말을 한, 혹은 행동으로 표명한 사람들은 있었겠으나 유독 우리가 니체를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p86의 다음과 같은 서술이 인상적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주는 본래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에 온갖 불운을 다 갖고 태어난 사람, 혹은 대단히 부당하고 부조리한 사건을 볼 때 우리는 개탄하며 세상에 정의가 없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니체는 이것이, 종교인들이 가르치듯 우리에게 신이 어떤 심오한 이치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결과 같은 게 아님을 강조합니다. 아무 의미도 부여할 것 없고, 우주와 세상이 본래 그처럼이나 무작위하고 부조리함을 그대로 수용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하긴 세상의 모순을 있는그대로 이해할 때 어떤 바른 타개책이 더 눈에 바로 들어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재자(p146)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인가? 니체는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를 단순화하거나 호도하여 더 키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는 듯합니다. 물론 세상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분쟁을 해결해야지, 어디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이 더 많다면 어디 싸움, 불화, 폭력이 그칠 날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히틀러도 이런 그의 말을 부분에만 주목하여 곡해하다가 그지경까지 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니체는 문제를, 현상을, 본연의 모습 그대로 봐야지 어떤 해석이나 프레임에만 기대면 발전이라는 게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자신을 어둡게 만들거나, 상대를 압도하거나 처벌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p202). 아마 이 대목을 히틀러는 안 읽은 듯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키우고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들어야 하며, 이런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할 때 공동체도 개인도 번영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길은 결코 안일하고 평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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