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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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해서 기대를 잔뜩 가졌는데, 막상 받고 읽어 보니 마음이 무척 답답해졌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사회구조, 평균적인 사람들의 심성 몇 측면이 닮았다 보니,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사회상이 꼭 일본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한국의 여느 싱글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마지리 다카요 씨는 못난 남편을 만나 재산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 영향이 친정에까지 미쳐 거의 살림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입니다. 딸 아야나까지 혼자 힘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 궁핍함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읽으면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채업자가 있다는 게 말이 될까? 과도한 친절은 뭔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채업자는 기어이 다카요의 집에 찾아오려 들고, 하필이면 남편에게 받을 빚이 있다는 불량한 사내도 같은 날 찾아오겠다는 기세라서 다카요는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다카요는 이른바 헬스딜리버리라는 준 성매매업소에까지 다닐 뻔했으나 직전에 다르게 진로를 틀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더욱 불안해졌다가 잠시 안도하게 됩니다. 지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칼까지 손에 쥔 상태에서 괜히 경솔한 판단은 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예전부터 일본 미스테리물은 서술 트릭을 교묘히 잘 쓰는 걸작들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서술 트릭, 나아가 사건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트릭인 셈이어서 구성 트릭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칼을 쥔 다카요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생략된 채, 누마지리(p225에 누미지리라고 오타난 부분 있습니다)가 그 마음 좋은 사채업자 밑에 들어가 사부님으로 모시며 일을 돕고 배우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갑니다(그렇게 보입니다). 누마지리는 (기대대로 사람 좋아 보였던) 사부님 밑에서 특유의 순진함도 드러내며 경제적 곤궁도 벗어나고 있는 듯해서 독자는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다만 딸 아야나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인데, 배우자에게서 "딸에게 학대를 가한 적 있다"는 공격까지 받는 판이라서 양육권을 둘러싼 다툼이 불리해질 듯도 합니다... 

와... 지나고 보니 이 부분도, 작가가 노골적으로 힌트를 준 셈이었는데, 독자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많은 사회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뭔지는 이 리뷰에서 말할 수 없고요). 이 요소 때문에, 이 소설은 한국을 배경으로라면 도저히 그 트릭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이 소설은, 라디오극이나 영화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지면(紙面) 소설이 담을 수 있는 트릭의 극한까지 몰고갔다는 점에서 저는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소설은 여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입소문이 과연 그렇게 날 만했습니다. 

소설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앞에 말했듯이) 2부에서도 딱히 다카요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적응, 안정을 찾아가는 듯해서, 작품의 긴장은 감소해도 차라리 독자는 마음이 좀 놓입니다. 뭐 별것없고, 그냥 착한 사채업자도 세상에 있긴 하고, 현행법(우리 나라나 일본이나)이 워낙 강하게 규율하기 때문에 요즘은 저런 패턴의 사업도 나오나 보다(이른바 소프트사채)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업계의 실태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면 곤란하겠습니다. 별일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소설은 좀 밍숭맹숭하다, 이렇게 착각하고 책을 덮...을 뻔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사건의 진상을 잘못 파악했습니다. 마지막에 인물 간의 대사가 바뀌었나 싶은 대목이 있긴 했는데, 둘이 이야기가 잘 안 되어서 ooo가 xxx을 죽이고 비극으로 끝났나 보다 하고 독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지금 사회고발 소설인가, 아니면 미스테리물인가? 분명 걸작 미스테리라고 해서 읽었는데 뭐가 이렇게 심심하지?" 싶어서 양윤옥 역자의 후기를 읽었는데, 엄청난 반전이라고 해서 뭐지 싶어 (좀 이상했던) 마지막만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는데 한동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속을 수도 있구나! 

반전인 줄 알고 다시 읽어 보니, 소설 곳곳에 빤하게 힌트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두눈뜨고 속은 셈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 차례에까지도 힌트가 대놓고 주어졌는데 그걸 몰랐다니! 자세하게 짚으면서 여기, 여기, 여기가 암시, 복선이었다고 썰 좀 풀고 싶지만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자제하고 후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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