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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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중후반부에 고아원에 버려진 소년 이고르가, 국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장군에게 입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표트르와의 살벌한 다툼 때문에 장밋빛 꿈이 사라지고 소년원에 수용되는 비극을 맞았었습니다. 저는 소설에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 <백 투 더 퓨처 2>를 보면 주인공 마리(마티)가 "치킨"이라는 조롱을 끝내 참느냐 마느냐로 미래가 바뀌고 말고의 기로에 서는 설정이 있죠. 이런 세팅 자체는 매우 흔하지만, 베르베르는 어린 이고르에게 상황을 냉철하게 살필 이성을 충분히 부여하여, 표트르의 어떤 도발에도 불구하고 "참아야한다!"를 내면에서 끝없이 되뇌는 장면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고르는 실패하지만, 그의 고뇌를 충분히 어필하면서 진부함도 피하고, 수호천사의 구원 시그널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악마 같은 게 아니라 당사자 내면의 못난 고집이라는 주제도 더 선명히 부각합니다. 

한편, 이 2권 p26을 보면 중국 고사 새옹지마가 언급되는데, 우리한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설화일 것입니다. 1권, 소년원에서 절치부심하던 이고르가 얼마 후 그 장군이 추악한 범죄를 저질러 파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안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저뿐 아니라 한국 독자 누구라도 새옹지마 고사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다만 새옹지마 항목 소개가 왜 한참 뒤인 이 2권 116번 꼭지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고르가 형벌 부대에 징병되어 체첸과의 전쟁에 끌려가는 운명이, 마치 새옹지마 고사에서 아들 또래들이 맞는 상황과 닮아서일 수도 있죠. 

이 2권 p33을 보면 "관념권"을 설명하면서 리처드 도킨스 등의 입장을 재미있게 풀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 중간쯤에 보면 자크 모노라는 저자의 <우연과 필연>이 소개되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이미 번역이 되어 있는 인문 명저입니다. 정말 내용이 좋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37을 보면 비너스가, 1권에서 그리 노래를 부르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입상하여 소감 중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p44에서 이고르도 수훈 후 상관에게 마땅히 둘러댈 말이 없어 어머니에 대해 공치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동기는 생판 다른 것인데, 이고르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서는 이미 1권에서 우리 독자들이 다 알았습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지난세기에 꽤 유명했던 페전트인데, 현재 젊은 세대에는 지명도가 떨어져서 어떤 사람은 "베르베르가 지어낸 행사임?"이라고 제게 묻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한국에서도 열려 기념우표도 발행되었습니다. 

p65를 보면 이고르가 낙담하며 스탤론의 영화를 보고 시름을 달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생각할 것도 없이 테드 코체프 연출의 <First Blood>, 우리가 람보 1편으로 알고 있는 그 영화입니다. 와 그러고 보니 람보하고 이고르가 닮았네 라며 감탄할 필요까지는 없겠는데, 당연히 람보에서 영향을 받아 베르베르가 이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스탤론은 이처럼 비주류, 억울이(?) 배역을 자주 맡아 1980년대 백인 일부층에 큰 호응을 얻었는데, 반면 슈워제네거는 그런 배역을 맡은 적이 없는지라 이고르가 뭘 보고 공감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스탤론에게는 현재의 루저로서 울분을, 슈워제네거에게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누린 승자의 영광을 투사했을 듯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의 자유입니다. 

여튼 이고르는 딴에는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합니다. 경찰서장으로 출세한 바냐를 보고 그의 도발(이고르는 그렇게 해석하는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도 꾹 참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마 한때 폭력으로 제 주변을 제패한 자가, 싸움 실력으로는 한참 밑인 자들과 대등하게 살아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굴욕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고르에게 부당한 도발을 일삼는 자들도 있으나, 상당수는 그저 사회 통념에 따라 그를 대할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p97에 나오는,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그 결합이 오랠 수 있는지에 대한 웰스, 아니 베르베르의 지론이 무척 재미있고, 이 원칙은 저 뒤 p241에 구체적인 사례(뭘까요?)에다 적용이 됩니다. 

이고르는 (악착같기 짝이 없는 카르마 때문인지) 그 생부(이 양반은 이고르가 누군지도 모르죠), 바냐, ooo까지, 전혀 예측 못했던 상황에서 차례로 만납니다. 특히 ooo은 이미 1권에서 죽은 줄 알았기에 독자의 충격은 더 큽니다. 저는 이고르의 편은 아니지만, ooo가 이고르에 대해 그토록 깊은 한을 내내 간직했다는 게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자들은, 폭력의 논리에만큼은 철저하게 맹종하고 언젠가는 폭력으로 파멸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그 운명의 방향을 일단은 (작품 안에서) 정리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말입니다. 

타티야나의 치료에 힘입어 배꼽에 생긴 암이 나은 이고르. 베토벤도 재능이 곧 저주라고 여겼었는지 가장 축복받은 신체 부위인 "귀"에 말년에 탈이 생겼습니다. 이고르는 아마 출생이, 또 모친과 자신을 연결했던 그 흔적 부위가 그리 저주스러웠나 봅니다. 사실 마지막에 이고르가 그런 선택(p181)을 한 게 납득이 인 된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고르 입장에서는 운명의 신, 수호천사(그로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가 자신을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반복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겠고, 타티야나라는 "마지막 엄마"를 또 잃느니 차라리 자신이 먼저 그녀로부터 상실되자며 일종의 복수를 한 셈입니다. 물론 타티야나 입장에서는 뭔 날벼락인지 전혀 몰랐겠고 말입니다. 

자크 넴로드... 팽송은 1권에서 세 의뢰인이 고루 자신의 숨은 욕망을 대변한다고 했으나 이 자크는 팽송, 나아가 베르베르 본인을 너무도 닮아 있어서 어떤 대목은 독자가 읽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p194에서 메리냐크는 성공한 작가로 등장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자크를 표절했다며 조롱인지 리스펙트인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알듯이 베르베르는 성공한, 그것도 글로벌리하게 크게 성공한 작가이며 그래서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이처럼 번역본 개정판까지 나온 작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발한 아이디어의 과잉이라는 특징적 요소는 베르베르를 사랑하는 독자들마저 아쉬움을 느끼게 하죠. 자크는 아마 다른 평행우주에 사는, 실패한 버전의 베르베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베르베르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좀 아껴 두지 않고, 마치 아무 피자에나 최대의 토핑으로 보답하는 인심 좋은 주인마냥 지금 집필 중인 작품에다가 모든 기발한 착상을 다 때려박기 때문에, 독자는 나중에 가서 작품들이 잘 구별이 안 되는 곤란함을 겪기도 합니다. 하긴 이 역시도 그만의 창의력이 빼어난 탓이긴 합니다. 

이 작품은 예상을 비껴가 하르마게돈의 대회전을 거쳐 엄청난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나중에는 하나의 공식이 되긴 합니다만). 딱히 악인이나 빌런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특정 선역 캐릭터가 기어이 흑화하여 참극이 빚어지는 결말이 충격입니다. ooo는 주어진 운명이 부과한 시련을 매번 극복했기에 독자들은 그를 좋게 보았는데, 사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매번 뒤로 미루었기에 마지막에 크게 곪아 터진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게 그의 잘못이며,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우라고 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성숙함은 누구에게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는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한편 1권에서도 우리가 봤고, 2권 p67에서도 재확인한 그 업보 때문에, 결말에서 ooo 부부가 그토록 참혹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숫자 7에 얽힌 비밀(p169)은 이 작품에서는 끝내 완전한 해명이 안 되고, 독자들은 14년을 다시 기다려 <신(神. nous les dieux)>에서야 해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천사들의 제국> 1권 p82, p110에 보면 엘로힘, 신들이라는 복수형(plural)에 대해 언급이 있는데, 이른바 존엄의 복수형(pluralis majestatis)이란 것이며 기독교나 유대교나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복수형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저 작품 <신>도 원래 프랑스어 원제로는 "우리들, 신(동격)" 정도의 뚯입니다. 베르베르는 이처럼 엄청난 지식을 통해 후속편에 대해서도 제법 깊은 복선을 미리 깔아둔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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