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 - 우리 모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지연 지음 / 보아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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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은 기껏해야 2m, 120kg을 넘기 힘든 자그마한 입체입니다만 그 안에 깃든 마음, 영혼은 전 우주를 품고도 남을 만큼 복잡하고 다단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무난하게 성장하면 본래의 착한 심성을 지키지만, 그렇지 않고 어떤 심각한 상처라도 받는다면 그 다친 마음 때문에 큰 사고를 저지르거나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며 방황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인생이 파멸하기 직전,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양 위태위태하게 타락과 일탈에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타인의 고민을 들어 주고 괜찮은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은 그래서 정말 뜻깊은 직분을 행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나쁜 심성을 타고 태어난 아이는 없습니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은 끝에 마음이 망가지고 말았을 가능성이 큰데, p6에 잠깐 언급되는 정윤주(가명)라는 아이의 사례는 아마도 얼마 전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정xx을 염두에 둔 캐릭터겠습니다. 이 첫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현수인데 다니던 학교에서도 포기하고 만 문제아로 아주 낙인이 찍히고 만 처지였습니다. "마음서고"의 소장이자 심리상담사인 이유경은 이 현수라는 애한테 관심을 갖고 친절히 대하며 바른 길로 이끌려고 합니다. 

문제아가 문제아가 되고 마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 가정에 있습니다. 어느날 상담소장 이유경은 현수가 그 부친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현수는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편인데,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에 감정을 잘 다스리는 건 사실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알고 보니 현수 아버지도 속마음으로는 아들을 몹시 걱정하며, 이유경 소장이 진정성을 갖고 설득하자 금세 협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상담은 성공적이었고 김해인 상담사는 이 소장과 현수의 사례를 사후 분석하며 어떤 교훈을 끌어냅니다. 

내담자들도 다 같은 접근, 해답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 감정적으로 감싸고 옹호해 주길 원할 것 같아도 의외로 이들은 "논리적(p75)"인 어프로치를 선호할 때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그들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가 대단히 부당하고 비논리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대해 주길 바랐던 것입니다. 이유경 소장도 세훈의 "스마트함"을 알아 보고 그의 자존을 효과적으로 달랩니다. 김지수 임상심리전문가는 세훈처럼 영리한 내담자도 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투사적 검사(p79)"의 결과를 이 소장에게 보여 주며, 세훈이 어려서부터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생겼으며 그 결과 성 정체성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요즘은 알코올중독자라는 용어보다, 의존증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듯합니다.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성격이 내향적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상처를 자주 받고, 부당한 대우에 욱하고 분노하는데 이 화를 다스릴 길이 따로 없어 술에 의존한다는 거죠. 술은 어떤 경우에도 현실 탈출구가 될 수 없고, 술에 의존한다는 건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서서히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유경 소장은 내담자 이미희씨가 그 모친과의 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게 됩니다. 남편인 정철씨는 아주 자상하고 아내를 최대한 이해해 주려는 선한 인물이었습니다. 많은 여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이 남편과 원만치 못한 관계 때문에 고생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p150을 보면 이미희씨의 상담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등 여유를 크게 찾은 모습이 나오네요. 

김희진은 본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성장과정에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은 듯합니다. 그녀는 가난을 견딜 수 없었고 따라서 반드시 부유한 집안에 시집을 가야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댁에서 지독한 냉대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경제적 풍요가 반드시 당사자에게 행복을 필연적으로 가져다 주는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새로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희진을 사랑해 줄 줄 아는 도량을 갖춘 사람들이며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돕습니다. 이 소장은 그녀의 나이가 아직 젊음을 상기시키며 창창하게 남은 인생을 힘차게 가꿔 나가라고 격려합니다. 

TV의 돌싱 예능에 나오는 김희준은 한때 이 소장이 대했던 내담자였습니다. 희준은 순탄치 못했던 젊은 시절을 보냈고, 영업직 일을 하면서 배우자가 될 여성의 "스펙"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잘 골라 인생역전을 노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남자가 여자 잘 만나 팔자를 고치려 든다는 사연은 흔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희준은 다른 스펙이 좀 부족해도 영업 능력 하나는 봐 줄 만했고 이는 그만의 뛰어난 능력이 맞았습니다. 희준은 참된 자존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의 대미는 바로 이유경 소장 본인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픈 사연이 있고, 이를 잘 다스리려는 과정에서 남들의 인생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은 아깝게 흘러가버린 자신의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책에 실린 어떤 내담자들보다, 아니 어쩌면 다섯 명의 사연을 한 인생에 합쳐 놓은 듯 힘들게 살아 온 게 이 소장 본인이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옛 대중가요의 가사도 생각났으며, 상처가 깊은 만큼 그로부터 피어나는 꽃도 한층 아름다울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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