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가에쓰 히로시 지음, 염은주 옮김, 기타무라 다이이치 감수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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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その犬の名を誰も知らなあい입니다. 신석기 이래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 인간과 종이 다른 생명체 중에 개처럼 친숙하고 정이 많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인간이 문명을 이처럼 가꾸고 번영하며 살아 온 데에는 개보다 더 큰 기여를 해 준 다른 동물들도 있겠습니다. 실험용 쥐, 모르모트라든가, 가축으로 고된 노동을 해 준 소, 단백질의 주된 공급원이었던 돼지와 닭... 하지만 개의 경우 그 희생의 상당수가 자발적(?)이기도 했고, 유독 많은 야외 활동에서 인간과 제법 교감까지 하며 난이도 높은 기여를 했기에 그들을 더 특별히 기억하게 되는 듯합니다. 

한국도 1980년대 중반부터 남극에 과학기술 인력을 파견했었기에, 극한의 기후 여건에서도 나라의 이익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일본의 남극 기지 주재원들이 현지에서 함께했던 여러 개들에 대한 감동적인 사연을 담았는데, 저도 책을 읽고서 비로소 알았지만 일본은 1955년 파리 제1회 남극회의에 처음 참여할 때부터 남극과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당시 패전국으로서 대단히 국제 평판이 나빴고, 이런 회의나 국제 활동에 부지런히 참여함으로써 다시 국제 사회에 재편입도 이루고 장기 국익도 도모하자는 생각이었다고 나옵니다. 시기가 이처럼 오래전이라서 기지 이름도 쇼와, 당시 재위 중이었던 일본 임금의 연호를 그대로 딴 채입니다. 물론 이 군주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가라후토라고 하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대단히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야 익숙한 명칭이겠습니다. 알다시피 남극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극한의 기후입니다. 사람이 외쿠메네에서 가동하던 이동 수단은 각종 인프라가 깔려야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남극처럼 추운 곳에서는 스마트폰, 자동차 등의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길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더군다나 1950년대 중후반이라면 아직 (일본뿐 아니라 어느 나라라 해도) 기술 수준이 일천할 때이니, 남극에 진출하려던 기술진은 개썰매를 대뜸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썰매를 이끌 동력은 당연히 개들이겠으며, 일본 기술진에게 가용 가능한 견종은 가라후토견(樺太犬)밖에 없었습니다. 

책 16, 17페이지에는 모두 19마리의 개들이 사진과 함께 그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 개들에게는 마리라는 조수사를 막 대기도 미안할 정도입니다. 이 개들이 아무리 가라후토견이라 해도, 사할린과 남극의 추위라는 건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19마리 중 9마리가 죽었고, 7마리는 행방불명되었으며, 오직 세 마리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사람도 시설 안에 오래 견디기 힘든 판에 개들까지 일일이 챙기기 어려워서 현지 기지에 안타깝게도 몇 마리가 남겨졌습니다. 비정하게 그럴 수 있냐 싶어도 당시는 일본이 패전국으로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데다, 기지 관리 노하우가 매우 부실했다는 점 감안은 해야 하겠습니다. 

"가라후토견은 (본능적으로) 썰매를 끌고 싶어한다(p131)."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고된 노동을 시키는 인간이 미안하니까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개는 개일 뿐이라서 예측 불허의 행동을 합니다. 사람도 단체와 조직의 목표에 일일이 호응하지 않고 일탈을 일삼는데 동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리키는 끝내 그 행방이 밝혀지지 못했고, 내성적인 벡은 앓다가 결국 숨이 끊어졌습니다. 개들도 다 개별 생명체라서 견종만 같다고 해서 성격이 같은 게 아니기에, 얌전하고 착했던 애가 유명을 달리하면 사람 입장에서 훨씬 마음이 아프기 마련입니다. 엄마 젖 먹고 자라는 포유류의 감정선은 아주 원초적인 면에서 다들 닮은 데가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일을 독자가 그저 지면으로 읽는데도 마음이 이처럼 슬퍼지는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대원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이런 극한지에 파견되는 대원들은 자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건하고, 마치 전쟁이 한창인 theater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적응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 야전사령관의 자질까지 갖춰야 한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어떤 매뉴얼이 마련되어서 그대로만 따른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서 최초로 극지에 파견되었는데 매뉴얼이 어디 있겠으며, 패전국에게 다른 나라들이 뭘 넉넉히 공유해 줄 리도 없습니다. 그런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마침내 살아남은 개들에게 얼마나 한편으로 미안했겠으며 또 그 건재한 모습에 반갑고 대견했겠습니까. 

사실 저는 일본이라는 사회가 한국에 비해 개인적 자유가 억압되는 면이 많다고 보며, 비합리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도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예를 들어 p303 같은 곳을 보면, 지원도 변변치 않으면서 진실을 알리는 소통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검열하려 드는 당국에 대한 분노가 표시됩니다. 극한 상황에서 분투하는 인간들의 생생한 감정이 드러나는 한 편의 서사시를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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