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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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그저 상대를 절멸시키려는 인간의 악독한 의지에 의해서만 수행될 것 같지만 사실은 첨단 기술, 과학 원리의 치열한 응용이 많이 개입하는 장(場)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극적인 발전을 본 분야도 많은데 심지어 선형계획법 같은 수학의 원리가, 제한된 자원과 예산 하에서 최소 비용, 최대 효익을 거두려는 전쟁 수행 수뇌부의 의도에 의해 크게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과학이 서로 이만큼이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발전했는지를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지만, 죽이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몰린 인간들에게서는 못 짜낼 지혜가 없다는 사실에서 어떤 경외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국민(나시옹)"이라는 집단의 기치 하에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각자의 재능과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적 의의가 큽니다. p46을 보면 나폴레옹 1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벌써 이때 그가 거느렸던 학자 가스파르 몽주가 선형계획법을 (초기 형태로나마) 고안해 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역시도 전근대 체제였다면 그의 천재적 재능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인물인데, 프랑스가 지금도 세계적 수준의 과학, 수학을 뽐내는 건 이 책 제3장에 자세히 나오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같은 명문학교가 제대로 작동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러시아와 튀르키예(터키)가 사안에 따라 협력하는 모양새지만 근세 이래 이 두 나라는 화해가 안 되는 앙숙이었으며 나중에는 투르크 제국이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과 손을 잡기까지 했으니 러시아로부터의 위협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p76을 보면 산업혁명 이후 이런저런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이, 전쟁의 압박에 내몰린 여러 나라들에 무기를 수출하여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세머 제강법이야 영국의 기술자 헨리 베세머가 발명했지만 프리드리히 크루프, 그리고 그의 아들 알프레드 크루프가 산업화하여 큰 돈을 벌었으며 지금까지도 뒤셀도르프에 본사를 둔 티센크루프 주식회사로 번영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저들 업자들을 "1세대 글로벌 방산기업"이라 성격 규정합니다. 

1년 반 전쯤에 짐 라센버거가 쓴 <콜트>라는 멋진 책에 대해, 책좋사에서 당첨되어 리뷰를 쓴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에도 콜트 리볼버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작게는) 미국의 역사, (크게는) 세계사를 바꿔 놓은 명기의 발명이라 부를 만합니다. 미국은 특히 남부의 기후와 지형 조건을 이용하여 대규모 면직 공업을 발전시켰는데, 남부는 아마도 1차 산업은 노예 노동을 통해 자신들이 맡고, 공산품은 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분업 체제를 상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부의 압도적인 생산력은 남부와 (기울어져가는 제국인) 영국이 그런 몽상에 빠지게 가만 놔두지 않았고, 후발 주자들의 복제가 쉽지 않게 고안한 고부가가치 제품인 여러 무기를 생산하려는 미국 업자들의 야심은 날로 커져 갔습니다. 

책 초반부에서 나폴레옹 1세가 아꼈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대서양 건너편 미국 사람인 실바누스 세이어도 이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며 나중에 웨스트포인트에 미 육사를 만들 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책에 나옵니다(p146). 세이어는 나폴레옹 1세와 16년 정도 차이가 날 뿐인, 거의 동사대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인 인물입니다. 이 책에서는 "과학 기술을 중시하는 전통"이 에콜 폴리테크니크형 군사학교에 면면히 살아 있다고 누누이 강조합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미 웨스트포인트를 본받아(p150) 과학 쪽의 비중이 커리큘럼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현재는 과연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조직이건 애플 폴리셔, 출세지상주의자가 승자가 되는 풍조가 지배적이라면, 그 조직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할 뿐입니다. 

과학기술은 돈이 되느냐? 원래는 기초과학이 실용성을 과연 가졌냐에 대해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에서조차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자는 패러데이에게 대놓고 이런 전자기학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둥 무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그러나 이 책 제14장에도 나오듯 토머스 에디슨 등 발명가형 사업가들이 등장하고부터, 과학과 기술은 정말로 돈이 되기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에디슨이나 벨 등의 이름은 지금도 AT&T, 제네럴 일렉트릭 등에 남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본인도 상대성이론, 광양자설 등이 엄청난 위력의 폭탄 개발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과학의 발전과 그 파급의 힘이란 심지어 그 성과를 이뤄낸 과학자 본인의 입장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 원자핵무기의 개발은 인류 역사를 그 전과 후로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p189). 책에서는 왜 오펜하이머 등 일부 과학자들이 소련 등으로 기밀을 빼돌리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었는지에 대해, 인류 공적인 나치를 박멸하는 데 당시 소련이 기여한 바가 크며 핵무기 같은 치명적인 수단을 오로지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품은 이유가 있었다며 당대의 역사 맥락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것(p221)을 독자들에게 권유하기도 합니다. 

첨단 군사기술 발전은 주로 미국이 이루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스핀오프 현상은 원 기술 보유 측도 어떻게 통제할 수 없으며, 그래서 작금의 현실은 20세기 양극 체제 냉전과는 달리 불확실성이 더 크게 확산하는 추세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앞선 시대에도 송나라에서 최초 개발한 화약이 정작 대포로까지 발전한 건 유럽이었으며 대포를 전쟁에 적극 활용한 건 사파비나 오스만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일관되게, 군사 기술이 어디서 어떻게 발전되어 대량 살상에 응용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각자가 현명하게 이 불확실성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 나라도 수십 년 동안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대치를 이루는 와중에도 이 정도의 번영을 이뤘고 (가성비 위주라는 외부 평가가 지배적이기는 하나) 독자적인 방산 산업의 발달도 이룬 만큼 더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책은 주장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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