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회고록 1 : 어둠을 지나 미래로 - 침묵을 깨고 역사 앞에 서다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1
박근혜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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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과 회고록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이 책에는 저자의 대통령 재임 기간의 일들이 주로 서술되었으므로, 책을 펼치자마자 "정치"라는 제목의 챕터가 독자를 맞더군요. 그 내용도 취임 초기나 그 직전의 사건들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군 장성과 지역 유지의 딸, 두 부부 사이에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를 들려 주리라고 개인적으로 예상했었으나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자가 기존에 썼던 다른 책들을 찾아 보면 될 듯합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 당시부터 조각을 아주 힘들게 했었다고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었으나 여러 말들이 있어 좌절되었고, 1년여 후인 2014년에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정홍원 총리 후) 지명했으나 역시 여러 비판이 있어 낙마했었습니다. p62를 보면 조각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직에 김종훈씨를 임명했지만 (책에 자세히 나온 대로) 기어이 당사자가 사퇴했습니다. 이런 일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종종 일어나곤 하지만, 첫째 챕터에서 유독 김종훈씨 관련 일을 대단히 자세히 적었다는 점에서, 저자가 김종훈씨 영입에 애착이 매우 컸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 때 한미 FTA를 이끈 그 경제관료 김종훈씨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제가 이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현재 이준석의 개혁신당 공관위원장직을 맡고도 있는 김종인씨에 대해 p47 이하에서 상당히 강한 어조로 저자가 비판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준석당에서 하는 업무 관련이 아니라(그 일은 이 책이 출판된 한참 후의 일입니다), 자신과 관련된 범위 안에서 그 나름 불쾌했던 감정을 토로한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특정 정책 입안, 채택 관련하여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바로 업무를 거부하고 출석을 하지 않는 등 너무 자기 고집이 강했다며 김종인씨를 비판합니다. 

그런데 김종인씨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현재의 이준석당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이런 식으로 일해 온 인사이므로 저자만 딱히 서운해할 건 아니라고 생각도 되네요. 또 어떻게, 새누리 비대위원이었던 분이 나중에 반대당으로 가서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냐며 의아함을 표시하는데, 책에도 바로 나오지만 원래 17대 때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과는 다른, 구 동교동계 중심입니다) 비례를 지낸 인사이므로 이 역시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저는 봅니다. 김종인씨 특유의 묘한 스탠스가 있으므로 여기저기 합류하여 꼬장을 부릴 수가 있는 게, 대체불가능한(?), 대한민국에서 오직 그 노인장만이 부릴 수 있는 신묘한 재주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p20을 보면 2011년 12월 30일(대선이 이미 끝난 후입니다) 새누리 비대위를 찍은 사진이 있는데 13년이 지난 지금 보면 정말 희한한 느낌입니다. 맨왼쪽에 이준석, 그 옆에 이양희씨, 이상돈 교수, 김종인씨가 나란히 앉았는데, 이양희씨는 고 이철승씨의 영애이며 2022년 이준석을 국힘 윤리위원장 자격으로 징계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때라면 부친 이철승씨가 아직 생존해 있을 때입니다. 

불과 며칠 전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하여 뉴스를 탄(끝내 사과한) 성일종 의원의 형이 고 성완종 경남(京南)기업 회장입니다. 성완종씨가 창업주는 아니고 재미교포 신기수씨가 크게 키웠다가 1980년대에 대우가 인수해서 일반에 널리 알려졌죠. 이후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 대우가 공중분해되고 우여곡절 끝에 성완종씨의 대아그룹과 통합했습니다. 경남건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굴지의 건설업체로 인지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여튼 이분이 2015년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당시 큰 파장이 일었는데, 저자는 이 책 중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당시를 회고합니다. 성완종씨는 박 정부가 아니라 전전 정권 때 특별사면을 받은 적 있어 당시 박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역공을 폈는데(저 개인적으로는 통 기억이 안 나네요), 이 책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합니다. 이 서술이 "고인은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다"라는 취지인지, 아니면 "오히려 니네들하고 더 크게 얽혔던 사람이었으니 비판 금지!"라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면 아마 재임기간 동안 갑자기 담뱃값을 큰 폭으로 올린 걸로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저같은 비흡연자한테는 환영할 만한, 최소한 아무 타격 없는 조치였으나 애연가들, 노동일 하는 분들 중 상당수에게는 정말 큰 원성을 샀었죠. 이 책 p130 이하에 자세한 회고가 나오는데, 일단은 청소년 흡연률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다른 데 있습니다. 

진영씨는 원래부터 우파에 가까웠던 인사였고 박정부 조각 당시부터 복지부장관이었는데, 2013년 9월 갑자기 저자와 충돌하여 사표를 내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이 됩니다. 이 책을 읽어도, 거의 평생을 우파로 경력을 채운 사람이 왜 갑자기 반발하여 다른 진영에 합류했는지 동기가 잘 짐작되지 않습니다. 저자도 모호하게 서술할 뿐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참고로 진영씨는 판사 출신이며 2000년에 처음 용산에 출마하여 (지금은 인기 강사로 유명한) 설민석씨의 부친인 설송웅씨와 대결하여 당선된 경력이 있기도 합니다. 용산은 원래 서정화씨라고 고위관료였던 정치인이 오랜 동안 국회의원을 도맡아 하던 곳인데 2000년에 이회창씨가 자기와 친분이 있던 진영씨에게 넘기게 한 지역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정화씨는 아직 90대의 나이로 생존 중이며 몇 년 전 사망한 전두환 대통령 등과 비슷한 또래입니다. 군 장교 경력이 있다는 점도 공통적입니다.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씨 같은 사람들은 원래 국민들이 누군지도 잘 몰랐는데 국정농단 관련 재판 때문에 얼굴과 이름이 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81에서 저자는 안봉근씨에 대해 설명하면서 원래 이분이 김석원씨 비서관이었다고 밝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김석원씨는 쌍용그룹 회장이었고 창업주 김성곤씨의 아들입니다. 쌍용 역시 외환위기 때 공중분해되었고 그후 자동차 부문은 여러 주인을 거치며 고생하다가 현재 KG에 인수되어 재기를 노립니다. 코란도는 Korean can do에서 이름을 땄다며 이 모델을 론칭한 김석원씨가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당시에 홍보하기도 했죠. 김석원씨는 저자보다 7년 연상이며 김석원씨의 부친 김성곤씨는 박정희 대통령보다 네 살이 많습니다. 김석원씨는 바로 작년(2023)에 향년 78세로 타계했습니다. 

왜 지소미아가 필요했는지,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는 왜 단행했는지 저자는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합니다. 이는 저자가 재임 당시에 발언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딱히 새로울 바는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저자는 김무성씨, 유승민씨 등에 대해 책 곳곳에서 여러 사건들을 회고하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데 사실 이런 대목을 읽는 게 깨알 같은 재미입니다. 정치인의 말과 글은 사실 문면 그대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은 아니며 행간을 잘 읽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독서였다고 말하고 싶네요.  

*문충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아주 솔직하게, 또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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