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앤 아트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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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문화와 경제가 얼마나 융성하고 번영하는지는 여성들의 패션을 보면 알 수 있을 듯도 합니다. 번화가에서 얼마나 말쑥하고 세련되게,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지를 관찰하고, 이 사회가 어느 정도로 너그럽고 품위 있게 상호 소통을 이어가는지 판단할 수 있다면 다소 과장일까요? 한국은 1980년대에도 중저가 브랜드의 수출과 수입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에 비해서는 패션 산업이 발달한 편이었습니다. 이제는 세계로부터도 일정 수준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으며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활약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그저 표피적으로 명품 소비와 추종에만 쏠릴 게 아니라 명품에 스민 장인정신과 성공 비결을 탐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현재는 생로랑으로 이름이 바뀐 이브생로랑은 이미 지난세기부터 유럽과 세계 패션계를 이끄는 리더였습니다. p24에는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유명한 사진, 이른바 스모킹룩을 표현한 전설적인 컷이 담겼습니다. 책에도 잘 나와 있듯이 이런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차림이 실생활에서 언제나 환영받은 건 아니고, 식당에서 과감하게도 이런 차림을 한 사람이 입장을 거부당하는 등 크고작은 소동도 빚었습니다. 그러나 예술과 문화는 언제나 혁신가와 파이오니어들에 의해 여러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한때 시끄럽더라도 지나고보면 남들이 감히 상상도 못한 엄청난 진보를 끌어오는 수도 있습니다.   

패션은 산업자본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된, 대단히 실용적인 성격일 것만 같아도, 시대의 이단아들이 마음껏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는 경연의 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파격과 발칙함으로 무장한 신예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p71에 나오는 카우스(Kaws), 본명 브라이언 도널리도 그 중 한 명입니다. 1974년생이라니 이제는 청년이라기보다 사회의 중역을 맡아야 할 지긋한 나이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험정신과 도전 의지는 결코 젊은이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습니다. 파리의 콜레트(편집샵), 일본의 여러 쇼핑가(街)로부터 언제나 건강한 영감을 받아 온 그의 감각과 비전은 업계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했으며, 겉으로 보아 동네 아저씨같이 점잖은 외모인 그의 내면 대체 어디에서 그처럼 폭발적인 창의력이 솟아나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한국의 도산대로에도 커다란 에르메스 빌딩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크고작은 연예기획사나 금융기관, 심지어 초고급 접대업소들까지 위치한, 그야말로 한국 부의 밝고 어두운 단면이 압축적으로 담긴 구역이라 할 만한데, 그만큼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세계의 패션피플, 상위 0.5%의 부유층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잘 보여 주는 입지라고 하겠습니다. p117을 보면 세계 어느 나라의 에르메스 스토어도 공통적으로 채용한 디자인 팩터가 있는데, 그게 바로 윈도 디스플레이라고 합니다. 지나갈 때마다 이 부분은 그리 신경을 쓰지 못하고 지나쳤는데(그것보다는 바로 앞에 자리한 이국적인 공중전화 부스에 더 시선이 갔던...) 그렇게 깊은 뜻이 담긴 줄이야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레일라 멘사리라는 이름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프라다라는 브랜드를 두고 예술의 수호자라고까지 선언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바 중 하나는, 비단 프라다뿐 아니라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들이, 음으로 양으로 예술가들을 지켜 주고 사회의 무정한 시선으로부터 그들의 예술혼과 크리에이티브를 상처입지 않고 돌보는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부녀지간인 냇 킹 콜과 나탈리 콜이 한자리에서 노래부르는 듯 레코딩한 음반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당시 냇 킹 콜은 이미 고인이었음), p175에도 서로 다른 시대를 산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미우치아 프라다가 대화를 나누는 영상이 화제가 되는데, 현대의 발달한 VR로 얼마든지 가능한 이벤트이긴 합니다. p176에 실린 컬러 도판에서도 그들의 담대한 실험 정신을 엿볼 수 있죠. 

"로고의 혁명" 펜디를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저도 어느 야구단의 로고를 보고 아무 관련없는 다른 대기업집단이 생각나서 잠시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는데, 다른 의류기업 o라가 언뜻 연상되는 이 펜디의 로고는 등장 당시 모두를 당혹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알던 로고라는 것의 상식을 깨는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젊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얻어 젊은 세대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게 된(p237) 펜디는 전에 다른 브랜드가 걸어 본 적 없던 길을 걷는 중입니다. 패션도 여타의 산업과 마찬가지로, 혁신에 실패하면 반드시 경쟁에서 도태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어느 섹터보다도 감각적이고 치열한 혁신이 있어야 살아남는 분야입니다.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전사들이 시대를 이끌기 위해 살벌하게 현장을 뛰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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