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입문을 위한 최소한의 서양 철학사 : 인물편 - 요즘 세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서양 대표 철학자 32인
신성권 지음 / 하늘아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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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따라 젊은 세대가 교육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도 많이 달라지는 중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코딩 교육이 필수라고들 했었는데, 이제는 AI가 발달하여 코딩도 대신 해 준다고들 합니다. 컨셉만 말해 주면 AI가 영화도 대신 찍어 준다고 하니 카메라 조작법, 구도 설정법 같은 기술적 지식은 일일이 배울 필요가 더욱 적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미 AI가 세밀화까지 다 대신 그려 주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AI가 쉽사리 흉내낼 수 없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궁구하는 능력이야말로 미래에는 중요한 자질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 누구라도 말입니다. 서양 철학사는 예전에도 대학 입시나 임용고시 패스를 위해 널리 요구되던 지식이었고, 그런 스펙 축적을 떠나 내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도구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던져 놓고 그 해결을 모색했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평범한 우리들도 한 번 정도는 고민해 보는 게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p64를 보면 아무리 세상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돈을 많이 벌어도 해결이 안 되는 게 바로 구원 이슈라고 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욕심 때문에, 혹은 착오나 본능 때문에 크고작은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이게 깨끗이 씻어지는 건 아무리 돈과 위세를 동원해도 불가능하니, 인간은 사후의 구원과 영생에의 길을 따로 모색하는 건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선형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신의 나라를 준비하는 교회에만 구원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책에 따르자면 이후 천 년 간 기독교가 유럽에서, 또 북미에서 권위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교부 철학은 신교(프로테스탄트) 측에까지 그 신학의 핵심 기반을 제공하지만, 조금 뒤에 나오는 스콜라 철학은 구교 측에서만 그 일부를 지금까지 존숭할 뿐입니다. 

회의(懷疑)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아무 결론도 끌어내지 못한 채 말장난만 일삼자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방법론적 회의, 즉 어떤 건설적인 무엇인가를 명제화하기 위한 방법론적 회의를 내세운 철학자가 르네 데카르트(p96)였는데, 그는 우리가 여태 상식적으로 당연히 옳다고 여겨 온 모든 내용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끝까지 가 보니, 의심을 지금 진행 중인 나 자신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명제는 이후 수백 년 동안 그 구체적인 해석을 놓고만 의견이 갈렸을 뿐 20세기 실존주의의 거두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그 정립 자체는 부정당하지 못했을 만큼 거대한 발견이었습니다. 

p116 이하에 나오는 사회계약설은 사실 주장하는 철학자마다 내용이 다르며 그 내용도 심오하여 오늘날의 우리들도 그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이후 시민혁명을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 특히 삼권분립 같은 시스템의 정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데에 의견이 거의 일치합니다. p117에 사회계약설의 세 거두, 홉스, 로크, 루소 입장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요즘은 미국 유학이 늘어서인지 루소보다는 영국에서 활약했던 홉스와 로크가 더 자주 원용되는 것 같습니다. 

p193에 나오듯 제레미 벤담은 공리주의의 아버지입니다. 이뿐 아니라 그는 판옵티콘 개념의 창시자이기도 했는데 이게 벤담이 처음 고안해 낼 때에는 교도소 간수들의 학대로부터 죄수들을 오히려 보호하고 자율적인 교화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니(p194) 오늘날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느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또 공리주의는 그 자체로 많은 모순점, 혹은 공격을 자초하는 구조를 안고 있었는데 p198에 나오는 미뇨네트 호의 사례가 그 좋은 예입니다. 책에도 나오듯 벤담 자신이 이에 대해 성의 있게 반박했고 이것만으로도 철학사에 중대한 기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칼 마르크스 역시 공리주의에 대한 일부 긍정과 비판으로부터 자신의 사상 중요한 부분의 기초를 마련했을 정도이니 벤담의 위치는 불변의 위상을 지닙니다. 

자연계에 물리적인 사과가 존재해서 사과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배, 딸기 등과의 대비 때문에 그 어휘가 제 구실을 한다는 게 드 소쉬르의 입장입니다. 적어도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감각에 의해서 세계가 분간되는 게 아니라 언어가 프리즘처럼 세상을 분간해 주는 것이며 세계도 언어를 통해 비로소 틀을 갖추고 존재합니다. 소쉬르의 이런 입장은 비단 언어뿐 아니라 푸코, 데리다, 레비스트로스 등의 구조주의 철학 전체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고 책에서는 설명합니다. 

최소한의 서양 철학사라는 제목이지만 내용이 매우 풍성합니다. 또 단편적인 사항 전달 위주가 아니라 전체를 보는 관점을 알려 주기 때문에, 물고기를 던져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책이라는 느낌이 드는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이 책은 인물편인데 앞으로 나올 사상 쪽 어프로치도 기대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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