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몬 상·하 세트 - 전2권
최아일 지음 / 너와숲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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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하순 이 드라마가 처음 방영될 때는 흔한 판타지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일단 남녀 주인공의 뛰어난 외모 때문에, 다른 채널로 돌아가는 중에라도 잠시 주목하게는 되는 컨텐츠였고, 내용을 전혀 몰라도 화면이 참 예쁘게 찍혔기 때문에 몇 분 정도는 넋을 잃고 지켜봤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사가 좀 오글거린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서사가 깊이 있었고 매번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 때문에 웃음도 났고 각본을 참 영리하게 썼다 싶었습니다. 

초자연적 존재가 어쩌다 인간 세상에 떨어져 결국은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한테 동화한다는 테마는 익히 봐 오던 것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경쾌하고 참신한 전개 덕분에 전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초자연적 능력(이 드라마와 대본집에서는 그냥 "능력"이라고 불립니다)을 지닌 남주와, 재력, 미모, 재능(p116을 보면 학교 스펙도 좋습니다)을 모두 지닌 여주라면 삶의 난도가 참 낮겠다 싶은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초기 설정에서 전혀 뜻밖인 위기 상황을 끌어내기 때문에 우리 힘 없는 시청자들이 조마조마해하며 응원을 계속 해 줘야 할 판입니다. 하권 p100에 보면 "뭐든 잘하는 도도희, 밤새는 것도 잘해?"라는 대사가 있는데 오글거린다는 생각도 이제 안 듭니다. 9화부터 얘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더 이상 틱틱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권 p42(1화)를 보면 도희가 구원더러 이름이 좋다고 칭찬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참 뒤 9회에 보면 그 이름의 유래가 나오는데 시청자들도 어이가 없어 웃게 되죠. 도희도 그때서야 정말 시시한 작명 동기였음을 알고 구원을 타박합니다. p27을 보면 정구원이 박복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이때만 해도 저는 박복규가 그냥 코믹 릴리프인 줄만 알았지 앞으로 그렇게나 중요한 구실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권 p174(11화)에서 "저는 무성애자 성애자입니다."라고 할 때 진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김유정(도도희), 송강(정구원)의 비주얼이 워낙 압도적이라서 단연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박복규가 씬스틸러입니다. 대본집에는 안 나오지만 드라마를 보면 박복규의 이름은 계약서에 朴福規라고 쓰입니다. p127을 보면 복규가 제 이름대로 팔자가 박복하다고 푸념하는데 이런 드립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펜에 복규의 손가락이 찔리고 그 핏방울로 서명이 갈음되는 장면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스트 라이더>의 그 장면과 비슷합니다. 하권 p58에 신비서님이 이름 갖고 장난치는 장면 있습니다. 

최아일 작가 대본은 지문(地文) 설명도 코믹하게 합니다. 별로 좋지 않게 끝나긴 했으나 <철인왕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예를 들어 p132를 보면 구원이가 레슬러들 곁으로 차를 거칠게 몰고 오는데 이걸 "드리프트"한다고 해서 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p117을 보면 캐릭터 한민수는 홍보 팀장으로 언론 담당 업무를 맡았는데 이 배우 박진우씨는 2019년 같은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프로야구단 드림즈 홍보 담당 변치훈 역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배우 개그(actor allusion)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두 남녀 주인공은 대체 인생(정구원의 경우는 귀생[鬼生]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이 불편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일이 꼬이고 16화분 드라마가 구태여 만들어진 이유는 p89에 나오듯 타투가 느닷 정구원에게서 도도희의 팔목으로 옮겨가서입니다. 아직까지는 그 이유를 대체 알 수가 없는 이 기현상은, 앞으로 16화 내내 시청자들 손에 땀을 쥐고 탄식을 지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p262를 보면 이제는 아무 능력을 발휘 못하는 정구원은 들개파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꼼짝없이 죽을 판입니다. 물론 이 깡패들이 나쁜 놈들이지만 정구원도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 여기서 아마 충전기인(ㅋ) 도도희가 짠하고 나타나 주겠거니 시청자들도 다 예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나타난 도도희는 입에 호루라기를 불고 열심히 불고 있고(ㅋㅋㅋ 왜 그러는지는 알겠지만 너무 웃기죠), 10m 떨어진 거리에서 열심히 전기 충격기를 쏴 댑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전기 충격기는 테이저 건이 아닙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시청자는 웃음이 안 날 수가 없는데, 이건 대본집으로만 보면 절대 그 효과가 안 납니다. 혹시 관심이 생긴 분이라면 다시보기 등을 통해 이 드라마를 꼭 한 번 보길 권합니다. "경호원의 경호원이다!"라는 대사도 얼마나 웃기는지 모릅니다. 

p177을 보면 소아암에 걸려 모진 고생을 하는 어린이 연서가 등장하고 정구원은 모종의 계약을 맺는데, 이게 9화 중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생깁니다... 우리가 그저 최강인 줄 알았던 정구원은 알고 보니 이렇게 취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아, 그 사정은 저 뒤 9화에 가야 확인됩니다. 

앞에서 도희와 구원 모두 의외로 취약한 상태라고 했습니다만 p122를 보면 도도희는 노수안을 갖고 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의에 가득찬, 동시에 적당히 약은(아무리 약게 굴려 해도 도도희가 훨씬 지능이 높기 때문입니다), 수적으로도 우세인 노씨 재벌 일가를 고아 출신인 도도희가 당해 낼 수 있을까 싶은데, 이 나이 먹도록 그 나름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 내고 그간 잘 방어했지만 저그가 저렇게 물량공세로 쏟아져 나오는데 결국은 밀리고 부식되고 잠식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슴아프고 답답하지만 이 드라마 보는 재미는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참 뒤 하권 p111을 보면 노수안이 "항상 나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이노무 기지배를 내가 이길 수가 있어야지!"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노무"라는 부분은 대본집에는 없고 드라마에서 배우 이윤지씨 대사로만 나옵니다. 

저는 여기서 참 의의였던 게 주여사(김해숙씨 扮)의 캐릭터였습니다. 애(부모가 사고로 죽고 이제 막 고아가 되기까지 한 애)한테 처음엔 대체 왜 저러나 싶었는데, 역시 반전이 있었습니다. 실망스럽다 못해 인간말종에 가까운 아들과 그 손자 탓도 있지만, 공감 능력과 지능이 모두 뛰어난 도희에게 딸, 손녀, 아니 거의 인생의 동반자에 가까운 친구로까지 그 관계를 발전시키고, 죽고 나서까지 수시로 출몰하는 참으로 속 깊은 츤데레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처음에는 배우 김해숙씨 인상 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타워즈의 오비원 케노비처럼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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