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클래식 리이매진드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올림피아 자그놀리 그림, 윤영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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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는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던 판타지 고전이며 지금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를 따져 가며 읽으면 또다른 느낌이 들고, 당시는 물론 현대의 사회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 풍자하는 작가의 시선이 빛나는 심오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완역본이라서 프랭크 바움의 원작 전체를 다 담았고 모두 24개의 챕터로 이뤄져서 두께도 제법 두껍습니다. 하지만 번역이 매우 쉽고 정확하며(서울대 고미사 전공자인 윤영 선생님의 번역), 한국에서 최근 전시회를 열기도 한 미술가 올림피아 자그놀리의 삽화들 덕분에 아이들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서양 고전 명작에는 압제로부터의 해방이 주제로 강조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와 저항 정신이 서로 무슨 관계일까 싶어도, 이 책 p41을 보면 도로시가 가장 부유한 먼치킨인 보크의 집에 초대받아 정찬을 제공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그날이, 이 먼치킨들이 사악한 마녀의 속박에서 벗어난 걸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로시(아주 평범하고 흔한, 시골 처녀의 이름이죠)의 모험도 결국은 나쁜 마녀에의 대항 역정이긴 합니다만, 이 작품이 지어진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 신분제의 폐습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터전을 일구려는 이민자들의 건실한 기풍이 아직 살아있던 미국이었음을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p53을 보면 허수아비가, 빵 한 조각을 건네는 도로시에게 사양하면서 '내 몸은 사방에 구멍이 나 있으니 만약 음식을 먹으면.... 그래서 배가 안 고픈 게 다행이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대사는 아주 유명하며 축약본 동화나 만화 버전, 주디 갈란드 주연판 영화에도 안 빠지고 꼭꼭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내게 없고 남에게 주어진 걸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그 타인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나쁜 마음을 품기도 하고, 스스로 (공연히)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게 필요 없는 건 구태여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처음부터 필요가 없는 걸 애써 가지려고 발버둥칠 이유도 없습니다. 욕심 없는 허수아비가 바보처럼 보여도,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에 도로시는 주저없이 수긍합니다. 

알고보면 도시의 삶도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편의시설이 많고 교통도 발달했지만 하다못해 19세기 영국에서도 마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율도 높고 합법을 가장한 각종의 사기와 술수가 넘쳐납니다. p79를 보면 양철나무꾼이 도로시에게 대답하길 "풍경은 아름다워지지만 위험한 곳을 한참 지나 에메랄드 시가 나온다"고 그의 아버지가 가르쳐 줬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로시 역시 번화한 곳과는 한참 떨어진 시골에서 자랐고, 따라서 이 일행에게 도시는 여전히 낯설고 무서운 곳으로 남을 대목이긴 합니다. 아마 이 구절에서, 아직은 도시화가 덜 진행된 미국의 어린 독자들이 무척 공감하며 읽었을 만합니다. 

허수아비, 도로시, 겁쟁이 사자 등 모두가 계곡, 가파른 낭떠러지(p92) 앞에서 망설입니다.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고 그들에게 시간이 많지도 못합니다. 사자는 이제 일행 한 명씩을 태우고 이 위기를 넘기자는 제안에 동의하는데, 우리가 잘 알듯 이 사자는 공연한 허세를 부리지 않기에 이 제안조차도 간신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을 뿐 본인이 먼저 꺼낸 게 아닙니다. 독특한 건,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바로 점프를 시도한다는 점인데 "그게 우리들의 방식일 뿐"이라는 간단한 설명만 곁들입니다. 막상 힘을 내야 할 때 망설임이 없다는 이유에서 이 사자는 사실 조금도 겁쟁이가 아닙니다. 부당하게 씌운 프레임, 껍질만 벗어던진다면 바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영혼입니다. 

드디어 양철나무꾼은 오즈를 만납니다(p156). 그러나 도로시 일행의 기대와는 달리 그가 부과하는 과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도로시를 도와 서쪽 마녀를 죽여야만 양철 나무꾼은 그 무서운 짐승한테 심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아마 많은 이들이 비슷한 느낌을 받을 텐데, 분명 선과 정의의 편이어야 할 이 짐승이 도로시들에게 전혀 친절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충격적인 것입니다. 정의는 그게 정의일망정 결코 쉽게 구현되지 않고, 흔하게 만날 수도 없으며 겉으로 보기에 마냥 아름답지도 않다는 게 냉혹한 진실입니다. 

역시 사악한 마녀는 강한 힘을 지녔습니다(p168). 까마귀, 시커먼 벌떼, 그리고 윙키 노예 등을 차례로 부리며 도로시와 친구들을 죽이려 듭니다. 우리 독자들이 여기서 위안 하나를 받는 건,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능력만 지닌 것으로 보였던 도로시들이 알고보면 제법 무력(?)을 잘 구사한다는 겁니다. 당장 까마귀와 벌떼를 확실히 퇴치하는 품을 보십시오. 단합된 힘과 사명감, 용기, 절박함은 그만큼 강한 모티베이션이 되기도 한다는 데서 어린 독자들도 희망을 얻습니다. 

도로시와 친구들의 에메랄드 시 귀환에 가장 먼저 놀란 건 문지기입니다. p209를 보면 문지기가 "세상에, 다시 돌아온 건가요?"라며, 전혀 기대하지 않던 그들의 업적에 당황합니다. 용기, 뇌, 심장, 귀향을 각각 받아내려 오즈를 찾은 넷은 진상을 알고 크게 실망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영화 <아이언맨 3>의 몇몇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영화의 각본가가 이 고전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토록 큰 성취를 이루고 왔건만 고작 이런 초라한 현실이 기다릴 뿐이라니...그러나 우리의 주인공들이 진정한 위대함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지점은 바로 여기부터입니다. 어떤 시시한 운명의 부당한 장난이 그들을 가로막아도 결코 낙담하지 않고 결국 바른 길을 걷는 그들. 어린 독자들이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도 바로 여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여전히 감동적이고 때로는 유쾌하며 위대하기까지한, 처음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던 도로시와 친구들을 보며 바람직한 어른의 이상형이 무엇인지 어린 독자들도 깊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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