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이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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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무래도 짧은 시간 안에 급속히 성장한 나라이다 보니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게 특징입니다. p18에 나오는 박경숙씨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경숙 정도 되는 사람이면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듯한데, 그런 건 조선시대나 다른 나라의 사정일 뿐이고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구멍가게에서 콩나물 값을 깎는 게 관행이자 차라리 미덕(!)입니다. 물론 자신보다 잘사는 사람 앞에서는 비굴할 만큼 철저하게 체면을 지키는 게 또 보편적 룰이겠습니다. 조정래 작가님도 예전에 남천삼익비치에 사셨으므로 이 점을 매우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ㅋ). 

의븟자식을 인사시킨다(p70)라... 뭐 돈 앞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고 체면이고 다 내팽개치는 게 이 사회의 노멀입니다. 이것 말고도 뜬금없이 바깥에서 양자를 들인다든가 하는 게 무슨 인도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나중에 상속분 주장을 하기 위해 허수아비 하나를 세우는 수작이죠. 세상에는 남의 돈을 먹기 위해 참으로 가증스러운 온갖 술수가 펼쳐지며 의붓자식 이런 건 양반입니다. 의붓자식이야 자신의 법정상속분으로 참여하는 건데 뭘 탓하겠습니까. 단지 그 안에 숨은 갖가지 검은 술수, 나쁜 속셈이 기가 막힌다는 거죠. 

p109에 나오듯이 민노진 기자처럼, 한눈에 척 보고 모든 진상을 알아차리는 날카로운 두뇌가 세상에는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악덕 사업가, 타락한 정치인, 위선자, 전관법조인, 그 외 이도저도 아니면서 한심한 수작을 부리는 모든 사악한 영혼들이 그나마 맘판으로 설치지 못하는 게, 어떤 착한 사람 눈이 무서워라기보다(그런 건 신경도 안 씁니다), 이런 날카로운 정신이 눈 부릅뜨고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긴 관행 중 하나가 변호사 등의 경우 풀 네임을 다 부르지 않고 성씨만 따서 김변, 박변 하는 식인데... 예를 들어 이 책(2권) p119 같은 데를 보면 "손 변"이라고 띄어쓰기까지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p126을 보면 이태하에게 한지섭이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데 그 말투도 그렇고 구구절절에 담긴 지극한 마음 같은 게 느껴져서 이 장편 소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에서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가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보내는 서한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p140에 나오듯 ktx 같은 자기부상식 고속열차가 나오면서 산업구조라든가 인구분포에까지 영향을 크게 준 바가 있습니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같은 게 요즘은 운행이 크게 줄어들었고 그 회사들도 원가가 오르다 보니 티켓값도 덩달아 올라서 이제 요금이건 시간이건 철도에 상대가 안 됩니다. 1990년대에 많은 논란을 딛고 이를 도입한 것은 확실히 혜안이었고 앞을 내다본 결단이었습니다. 영어 간판이 지나치게 난립하는 "천박한" 현상을 개탄하며 중국 동북 3성 등에서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는 예를 드시는데, 사실 수원이나 안산 등을 다녀 보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를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現壓冷麵이라고 쓰면 무슨 뜻인지 한국인이 바로 알아보겠습니까? (글자는 서평란에 간체자가 깨질 때가 많아서 편의상 윈도가 잘 구현하는 번체자로 했습니다)    

p171을 보면 포항제철, 현 포스코의 창업자 격인 박태준씨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평가가 나오는데 조정래 작가님은 예전부터 이런 스탠스였기 때문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p178을 보면 캐릭나 한지섭의 능력, 즉 특수작물 하나도 잘 키워나가며 상업적 재배에 성공시키는 재주에 대한 칭송이 있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정치적으로 일시 패배한 후 하방(下方)하여 그곳에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한 덩사오핑의 예가 생각났습니다. 1250년이 걸려야 얻을 수 있는 거액을 한순간에 챙길 꿈에 부푼 전진혜(p221) 같은 인간도 천민자본주의의 음습한 그늘에서 자라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은 언제나 이런 씁쓸하고도 한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치 심우도처럼 날카롭고도 심오하게 포착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게 최고의 매력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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