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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평점 :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나라답게, 세대를 불문하고 지나치게 배금주의가 사회에 팽배한 게 한국의 실정입니다. 또 그에 걸맞게, 제도나 법규범의 지향성에 대해서도 구성원 간의 의견 차가 매우 큰 것도 특징이라서 성별, 세대 간 갈등이 격심하게 나타납니다. 소설 p14 이하를 보면 박현규와 이태하의 설전이 격하게 이어지는데, 여기서 주된 논제가 되는 건 상속법과 친족법 중 성씨 부분입니다.
극중에서 캐릭터 박현규는 뭔가를 살짝 착각하는 듯합니다. 1963년에 암살 당한 JFK, 그 부인인 재클린의 경우 이름에 케네디를 남기고 그 뒤에 오나시스가 또 붙은 건 부성(夫性) 존중 취지의 강제 규정 효과가 아니라 대통령 부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재클린 스스로가 그리 선택한 것입니다. 힐러리 클린턴도 미들네임처럼 로댐(Rodham)이 남은 건 본인이 결혼 전 성씨를 남기고 싶어서 그리 한 것이고 말입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남편의 지위를 절대적으로 존중하여 법제를 그리 만든 게 아닙니다. 박은 재학 중 사시 패스를 한 천재라면서(p20) 왜 이런 걸 잘 모르는지 의아합니다.
박현규의 말 중 남녀평등을 내세워 1990년 상속법을 거의 절대균분으로 만든 건 대단한 업적입니다. 그당시만 해도 유교적 전통이란 게 사회에 얼마나 강한 습속으로 남아 있을 무렵인데, 어떤 과도기적 단계도 거치지 않고 바로 남녀균분이 이뤄진 게 다시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이것과는 대조되게, 박현규가 세트로 묶어 이야기하는 자녀 성씨 문제는 저때로부터 한참 후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법개정입니다. 두 제도는 같은 시점에 (박의 생각처럼) 졸속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과거에는 장자에게 제사 상속 등의 이유로 일정 부분을 더 떼어 주는 게 법제로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게 1:1:1... 식으로 바뀐 게 1990년의 민법 개정이었으며 사실 일부 한국인들은 아직도 이 제도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소설 중 정일준 집안의 예처럼, 상속규정은 강행규범이 아니기 때문에 유언장이 우선이지 자녀균분은 보충적으로 적용될 뿐입니다(정일준의 말이 맞음). 또 부의금은 상속 재산이 아니므로 상속분에 따라 나눌 이유가 없으나 한국의 판례는 비용에 일단 충당한 후 나머지를 상속분에 따라 나누라고 합니다. 그러니 동생 정일석 말처럼 형제자매별 조문객 비율과 액수로 나누자는 건 근거가 없겠는데, 다만 이는 판례의 태도일 뿐이므로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주색이 한 덩어리의 말인 것처럼 술자리에는 여자가 빠질 수 없다.(p101)" 음,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주색 같은 말은 대등합성어일지 아님 융합합성어일지... 국어사전을 보면 술과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렇게 정의하는데, 이 정의에 따르자면 그냥 대등합성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융합합성어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색(色)이란 말이 다층적인 의미를 띠는 부수적 효과일 뿐입니다. 저 당시 사업가들이 그 피땀을 흘려가며 업적을 일군 건 어쩌면 슬자리에서의 강렬한 유혹이 원초적 동기 중 하나를 이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대한민국의 부(富)는, 남자와 여자가 어기영차 힘을 합쳐 일군 것이라는 눈물나는 사연을 다시 확인하게(엥?)도 되네요.
돈 세탁이라는 게 뭐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좋습니다(헉). p156에서 보듯 최민제는 "그 남자(과연 누구일까요?)"의 치밀한 작업에 따라 세탁을 시도하며 그 분위기는 심각하기 그지없습니다. "회사와 전혀 관계 없는 새 변호사를 골라야 한다(p137)." 네, 그의 생각이 맞습니다. 세상에는 전관직을 이용하여 큰 돈을 벌어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p151에 나오는 대로 운동권 처녀성을 그대로 지닌 천연기념물 같은 이도 있게 마련입니다. 부인하고 싶든 어떻든 간에 최민제는 느닷 자신의 동생임을 주장하는 뜻밖의 사태를 맞아 경영권 유지 등 온갖 이슈를 다 고민하게 됩니다. 세상은 참으로 복잡한 여러 원인에 의해 작동하고 또 꼬여 가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