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오름, 자연을 걷다
김은미 외 지음, 송유진 그림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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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란, 산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어승생은 한자로 御乘生이라 쓰는데, 한자가 표시하는 뜻 그대로 御(어), 임금이, 乘(승), 타는, 生(생), 태어나는, 즉 임금이 타게끔 진상되는 말의 산지라는 의미로 보통은 이해들을 합니다. 그러나 p64에 나오듯, 이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며 현재의 어승생오름에 정확히 해당하는 지역에서 정말로 어승마가 사육되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물이 좋다"는 뜻의 어스새이라는 몽골어가 어원이라거나, 적어도 물과 관련된 지명이리라는 추측이 유력합니다. 독자들은 이 책 제목(혹은 어승생이라는 지명)을 처음 접했을 때 이 말이 한자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고유어라고 느낌이 바로 왔을까요? 

책은 거의 신비롭게까지 보이는 제주 현지의 사진으로 가득하며, 한편으로 제주도 특유의 토질, 지형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친절한 설명이 실려, 평소에 왜 제주도만 저렇게 독특한 풍광인지 궁금했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p18을 보면, 미국의 50번째 주인 하와이와 제주도를 비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둘 다 화산섬인데 규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며, 일단 면적만으로도 하와이가 15배 정도 큽니다. 또 하와이는 태평양 한복판에 솟아오른 섬이라서 덩치가 큰 반면, 제주도는 마지막 빙하기인 2만 1천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와 그대로 연결되어 걸어다닐 수 있었으리라는 게 유력한 학설(p20)입니다. 

어승생오름 정상은 해발고도 1169m라고 합니다(p85). 참고로 도봉산이 740m 정도이며, 북한산은 837m, 남산이 270m, 관악산이 620m쯤 됩니다. 제주도 자체가 화산섬이니 만큼 어승생오름도 마치 오목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가 그 본체를 이룬다고 나옵니다. p90에 나오는 그림27을 보면 어승생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Y계곡의 전경이 나오는데 온통 푸르른 색채에다 가운데가 옴폭 패인 기다란 협곡, 그러면서도 그 지세가 험악하지 않고 온건한 모양새라서 역시 한반도의 소속임을 누가 쉽사리 부인할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화산 활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p92)." 그렇습니다. 시간은 하릴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게 곳곳에 그 흔적을 남깁니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아주 미세한 변화가 축적되고 또 축적되어 돌연변이의 동력을 쌓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지형의 풍화에다, 현재의 극히 짧은 시간이 뭔 깊은 영향을 남길까 싶어도, 저자님 말대로 세월은 어떻게든, 바람으로 화산재를 옮기든 물의 흐름에 의해 바위를 깎든, 그렇게 작고 작은 변화가 모이고 모여 오늘의 기이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할 때 인류 문명도 타격을 크게 입으리라고 내다본 적 있습니다. 허나 p122에 나오듯 제주도에는 이런 중매쟁이 노릇을 해 줄 매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얼핏 보아 잡초처럼 별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제주조릿대와 참억새가 곳곳에 자라는데, 이들 역시 제주 생태계에서 고유의 하는 일이 있으므로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다고 나옵니다. 이들 역시 수 만 년 동안 제주 생태 순환의 한 고리를 이루고 한몫을 행해 왔으므로 어찌 감히 짧은 객으로 머무는 인간이 그 쓸모를 논하겠습니까. 

아무리 남쪽이라 해도 제주도의 겨울, 특히 어승생오름에서는 추위가 막심합니다. 세 계절을 제주에서 머무는 굴뚝새도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듯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p144). 동물 중에는 오소리가 현지의 명물인데 이 역시 겨울에는 아지트 안에 파묻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동면 상태에 들어가지는 않고 간간이 밖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어승생오름은 열매가 많이 열려 새들의 맛집(p155)이기도 한데 이 중 대표는 직박구리라고 합니다. 같은 페이지 그림 46에 직박구리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이 책에는 선명한 사진뿐 아니라 미려한 일러스트가 많습니다. p167의 그림49에도 귀여운 청개구리가 나오네요. 

사람은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이 혼자 힘만으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알맞은 역할을 맡아 협력을 해야 생존도 도모하고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각 생물은 기묘하게도,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고 과학적 친연도 매우 희박하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고얽혀 치밀한 의존, 공생, 나아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 더군다나 근래 외지인이 부쩍 늘어난 구조에서 인간들이란, 공연히 이 조화를 깨뜨리는 불청객 노릇을 하는 듯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이 우리네 누리에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길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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