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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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욘 올슨은 참 따분한 인생을 사는 사람 같습니다. p47을 보면 체격도 좋고 잘생긴 편이라고 합니다만 고작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이나 받아서 감지덕지하는 신세(p8)라니 처량할 뿐입니다. 남이사 여자하고 즐기든 말든 뭔 상관인지 공연히 의심이나 해 대는 브루스 워커 같은 사람 눈치나 보는 소심함도 안쓰럽습니다. 이런 올슨에게 무슨 낙이 있다면 낚시하기, TV 보기 등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수상기가 잘 작동하지 않던 건 알고보니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외계인... 언제나 이런 소설에서 우리를 느닷 찾아와 무슨 제안 같은 걸 하는 외계인들은 우리 지구인들보다 우월한 수준의 문명을 가진 이들입니다. 하긴 우리와 비슷하거나 못했다면 여기 지구까지 오지도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또 이들 외계인들은 우리의 한계나 특성을 손바닥보듯 훤히 파악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역시도 우리보다 우월하기에 가능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지구인의 장점과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활동과 문화는 "축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축구 시합을 제의합니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날 것을 고려하여, 지구인 시합 신청자들(팀)한테 수준도 맞춰 주겠다고까지 합니다. 

남의 선의를 함부로 의심하는 사람은 대개 꼬였다는 평가를 듣거나, 아니면 마음에 열등감이 자리해서 그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외계인들이 저런 제안을 하자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할 기회라며 설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 이건 뭔가 다른 검은 속이 있을 수 있다며 음모론부터 꺼내드는 이들이 또 나온다는 점입니다.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인생관도 천차만별인 동물이 바로 인간인데, 한 가지 반응으로 대세가 바로 형성되지 않고 이처럼 중구난방으로 의견이 갈린다는 게 또 흥미롭죠. 하긴 1980년대 TV 드라마 <V>에서도 처음에는 외계인들이 선한 명분을 내걸고 접근하다가 기어이 더러운 본색을 드러내기는 합니다. 

축구는 확실히 팀원들의 한 가지 자질만 뛰어나서는 승리가 어려운 종목이기는 합니다. 일단 남미인들처럼 개인기도 빼어나야 하며, 유럽인들처럼 체력과 체격 면에서도 강점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단체 경기인 만큼 전술에 대한 이해가 팀원들 사이에 철저히 공유되어야 하며 내가 특정 동작을 할 때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치밀하게, 신속하게 수시로 판단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강팀은 복합적으로, 총체적으로 강한 것이며 그 강점을 약팀이 쉽게 벤치마킹할 수 없습니다. 외계인들이, 많고 많은 스포츠 종목 중 하필이면 축구를 고른 건 그 나름 탁월한 안목입니다. "저놈들이 축구를 더 잘할지는 모르지만, 축구를 만든 건 우리야. 축구는 우리 거라고.(p245)." 

욘 올슨은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였으나 무릎 부상 때문에 꿈을 접은 아픔이 있습니다. 몇 년 전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백승수(남궁민 扮)의 동생 백영수가, 구타로 취약해진 허리를 경기 중 다치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가 되고 이후 뛰어난 통계학 실력을 바탕으로 야구단 전력분석원이 된다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또 1984년 로버트 래드퍼드 주연 영화 <내츄럴>에도 젊은시절 불의의 사고로 운동을 접었다가 늙은 나이에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욘 올슨, 가끔 자기 이름을 욜 온슨으로 잘못 발음하기도 하는(스누퍼리즘?) 약간 빈 데가 있어 보이는 이는 부상 후유증 때문에 무릎이 아파 이제는 일반인 수준으로 뛰기조차 힘든 형편입니다. 외계인 덕분에 축구로 갑자기 팔자를 고칠 기회가 열린 지구촌 분위기에 자극된 그는, 선수가 아니라면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전단지를 돌려 축구 교실을 연 그에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오고(예를 들면 재클린은 딸을 찾는 게 목적입니다. p298), 마치 <외인구단>의 손병호 감독처럼 올슨은 그들에게 축구로 새 활력을 여는 보람찬 작업에 열중합니다. 은수, 재클린, 라마 등의 여성 수강생들이 소통하는 장면에서는 1992년 영화 <그들만의 리그>가 떠오르기도 했네요. 

어떤 팀이든 아무리 실력 좋은 소수를 확보했다 해도 부상 등 돌발변수에 대비하여 후보가 어느 정도로는 받쳐 줘야 합니다. 과거 한국 프로야구 출범 초창기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아슬아슬하게 엘리트 선발 멤버로만 팀을 꾸려갔다고는 하나 이는 예외적 현상일 뿐이죠. p170을 보면 올슨 코치의 팀(?)은 확실히 뎁스(depth)라는 게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좋기나 하냐면 그것도 전혀 아니고, 돈이 없어 변변한 훈련장도 마련 못 한 채 고작 버려진 뱀밭에서나 뛰어다니는 판이니 이 사람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기적이 필요한 판입니다. 올슨의 무릎이 갑자기 씻은 듯 낫는다든가 말이죠. 

공은 둥급니다. 베켄바워는 강한 팀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라고 했습니다. 축구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룰이 오프사이드 규칙입니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쌓이면 팀 올슨에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기적 그 다음에 당사자들이 순수했던 초심을 유지하느냐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건 돈이나 권력이나 부질없는 명예 같은 게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연의 착한 영혼일 테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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