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이헌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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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영 작가님이 6년 전 발표한 장편 <한 생각>의 후편입니다. 저도 전편을 못 읽었습니다만 이 책의 앞부분에 내용 요약이 있으므로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용 요약만 읽어도 재미있더군요. 마치 <사기>에 나오는 염파와 인상여의 고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이처럼 대인스러움, 호탕함, 큰 그릇을 지녀야 마땅하지만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그런 큰 재목을 보기 어려운 듯합니다. 

p31에서 김주형의 대사 중 "이 자리에서는 안되겠구나."라는 말투는 실제로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가졌던 냉면 회동에서의 그 버릇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51에서, 정관영이 "해야겠다"가 아니라, "한다"라고 표현을 정정한 건 의미심장하죠. 사실 "해야겠다"도, 이미 일을 저질러 놓고 상대에게 사후 승인을 강요한다는 뜻에서 일방적이지만, "한다"는 아예 상대의 의사를 고려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강경합니다. 또 리비아의 카다피 사례를 든 것이나(공교롭게도 며칠 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이 타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기어이 못 지키고 저 꼴로 만든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대목은 아마 바이든이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싶습니다. 

p102에서는 정관영이 김주형 위원장에게 깜짝 놀랄 고백을 합니다. (1권에서) 자신이 허장훈에게 양보한 이유는 능력이 부족함을 스스로 알고 있고, 탄핵이 두려워서였다는 것입니다! 독자가 읽는 중에도 깜짝 놀랄 만큼 의외의 발언이었는데, 지금 이게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둘이서 목욕탕에서 나누는 대화 중에 나왔으니 그만큼 더 진솔한 속내라고 해야 할지...  

그러나 김주형은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얼씨구나, 이 자가 약하게 나오니 내가 올라타야겠다고 경솔한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습으로 나라를 물려받은 주제에 북쪽 절반도 제대로 못 다스리는 자신에 대해 에둘러 꼬집는 게 아닌가?"라며 대뜸 화를 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게 자격지심의 발로에서 괜히 상대방의 진심을 곡해한 것일 수도 있죠. 이상은 독자인 제 느낌일 뿐이며, p173 같은 데서 보듯이 소설의 기조는 "김 위원장"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주인공 정관영은 위원장의 비대한 체형에 대해 한심해하는 듯하며, 그 지성에 대해서는 약간 모자란 사람으로까지 볼 정도입니다. 

상대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면 움찔할 수도 있겠건만, 정관영은 오히려 한 술 더 뜹니다. "선친의 장례식장에서 위원장님은 부담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 않습니까?" 마치 조나라의 모수가 초나라 고열왕 앞에 가서 당당한 태도로 협상을 주도했다는 고사와도 비슷합니다. 또, 김주형이 정관영을 목욕탕으로 초대한 건 2차 대전 당시 처칠이 루스벨트와 알몸으로 열었다는 양자 정상회담이 연상되기도 했네요. 옷을 다 벗고 회동하는 건 도청이나 녹음을 막기 위해서인데 p154를 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p64에서,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라고 허장훈이 경고까지 했건만 정관영은 거침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관영만의 진솔한 인격이 잘 드러나기도 합니다. 

소설의 전개가 독자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갑니다. 1권을 안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김주형 면전에서 정관영이 그렇게나 직설적으로 쏘아붙이리라고는 전혀 예측을 못했기에 읽으면서 무척 놀랐습니다(후반부 p208에서도 다시 몰아붙입니다). 또 p121에서 인터폰을 눌렀을 때 일단의 인원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이 정관영을 투명인간 취급할 때에도 의외였네요. 그런데... 제7장의 제목이 "관영 죽다"라니! 고작 소설 중반에서 주인공이 정녕 죽는다는 말입니까? 음... 그러나.... 

p147에 처음으로 김유경이 등장하는데 아마 김o정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인가 봅니다. 부부장이라는 직함 역시도 그렇습니다. 인질을 자청한 정관영도 보통 사람이 아니지만, 서울의 김경희 대통령에게 소식을 전하고 평양으로 즉시 다시 돌아온 허장훈도 진심 의리의 사나이입니다. 일이 다 성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김주형의 이니셔티브로 이뤄진 것처럼 체면을 세워 주는 연극을 하는 대목은 마치 시안 사변의 몇몇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았네요. 김 위원장과는 대조적으로, 그 여동생인 "김 부부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의적으로 이 소설에서 형상화하는 듯합니다. 3만 5천이라는 탈북자 수에 대해 안 믿으려 드는 것(p184)은 오빠 김 위원장의 반응(p104)과 같습니다. 

"모두를 살리는 아이디어로 정곡을 찔러야 한다(p200)." 아이디어, 아이디어라... 스포일러라서 이 독후감 속에 자세히 적지는 못하지만, 정관영의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상천외합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으로는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교착 상태에 오래 머무를수록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정관영처럼 통이 큰 사람이라야 합니다. 나부터를 송두리째 내려놓을 줄 알아야 상대방도 그에 감화되어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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