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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르시시스트 맞아 ㅣ 쓰면서 치유하는 심리워크북
브렌다 스티븐스 지음, 양소하 옮김 / 에디토리 / 2023년 9월
평점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자아도취에 빠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고안되었다는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 개념은 우리 생각보다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p14를 보면 다소 "온화한" 범주의,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려는" 형태도 등장하는데 이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누구라도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질투하는 누군가를 근거없이 흠집내기 위해 무작정 나르시시스트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그렇게 남을 비난하는 사람 자신이 오히려 반사회적인 나르시시스트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책 p15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해롭다고 느낄 만한 나르시시트에 대해 공통적인 특징으로 꼽을 만한 아홉 가지 특징이 제시됩니다. 특히 6번, 대인 관계에서 상대방을 이용하려 든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 속셈이 남 눈에 훤히 보이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데도 악착같이 최초 계획에 집착한다는 게 특이하죠. 또 8번, 무한한 힘, 명석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서까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도 재미있게 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눈이 너무 높아서" 쉽게 이성을 못 만나는 사람도, 혹시 그가 나르시시스트여서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문제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책 p56에서는 그저 이기적인 태도로 사는 사람과 진성 나르시시스트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중심적 성향입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중심 성향 그 이상이며, 남을 해치는 데 있어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고 합니다. 일단 이 책의 중요 목표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독자인 당신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함부로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어떻게 하면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를 바로 알아보고, 또 운 없게 나르시시스트와 엮였을 때 어떻게 나를 방어하고 빠져나오게 할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또 특정인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하는 게 중요한데, p47 같은 곳에서처럼 체크리스트나 특수 시트를 통해 독자가 활용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나르시시스트로부터 피해를 입고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 줄 위기 핫라인(p85)을 만들어 두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나르시시스트와 대적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어렵기도 하고, 또 책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게끔 미리 공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이미 피해자는 그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참으로 무섭기도 합니다. 사람은 감정적인 동물이기에, 어떤 현실적인 도움이 아니라도 그저 내 지인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조금은 놓여나는 느낌이 듭니다. 책에는 이처럼 현실적인 충고가 많아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게 맞는 에너지 충전법을 찾으세요(p108)" 이 파트 바로 앞에서는 나의 성향 스펙트럼을 먼저 체크하게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를 타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 목적은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이 어떤 취약점이 있는지, 나르시시스트의 공격에 어떻게 당할 위험이 있는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외향적인 사람이라 해도 얼마든지 나르시시트에 당할 수 있으므로 예방책은 물론, 당하고 나서 치유책도 각각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마련해야 합니다. 책에서 특히 두드러진 장점은, 나, 피해자인(혹은 그렇게 될 수 있는) 나를 지킬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건데, p115의 "내면 아이한테 보내는 편지"가 그 한 예입니다.
내 감정이 다치지 않으려면,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그냥 당신의 감정에 충실하라"입니다. 저자님이 다룬 내담자 중 안젤라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미혼모 밑에서 자라면서 많은 정서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생들까지 돌봐야 했는데, 이런 소녀가장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self-denial입니다. 나보다는 내 식구들을 먼저 챙기느라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이런 걸 마음 속에 챙길 여유가 없이 성장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치유를 받으려면, 내가 힘들면 힘들다고, 뭐가 싫으면 싫다고 정직하게, 나에게건 남에게건 인정하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은, 남의 영역을 함부로 치고 들어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관계 금도를 함부로 넘는다는 것인데, 또 이런 사람들한테 잘 당하는 피해자들의 특징이 뭐냐면, 남에게 넘게 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자주 침범당하게 허용한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로서는, 다시는 그 누구라도 남한테(나르시시스트건 누구건 간에) 내 영역을 함부로 침해 못 하게 단단히 방벽을 쳐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또 남이 나를 함부로 무시하게 방치하면 안 됩니다. 무시를 당했을 때 나의 가장 큰 피해는, 내가 내 핵심자아로부터 멀어져 내 내면이 공동화하고 황폐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르시시스트를 막는 궁극의 방법은, 나의 진정한 자존감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