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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한대수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내 사진은 노래가 되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숙박앱 에o비앤비 광고를 보면 배경음악으로 1970년대 가수 한대수씨가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부르는 <행복의 나라로>가 깔립니다. 2015년 5월 이분이 쓰신자전적 에세이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을 읽고 저는 그 독후감을 이 블로그에 남긴 적도 있습니다. 그 책도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가득 담겼었습니다. 청춘기에는 가장 앞서나가던 성향이셨지만 그 외의 취향은 상당히 보수적이시지 않나 하는 짐작도 독자인 제 멋대로 조심스럽게 해 보는데,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책의 부제로도 나오듯) 필름으로 찍은 작품들입니다. 물론 그는 사진작가도 겸업하는 분이므로 작가적 방향성과 완성도를 위해서 이 포맷을 희생할 수 없었겠습니다.
"삷이라는 고통." 이 책의 제목입니다.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고, 또 무(無)이며 소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상에 태어나 감각적 쾌락을 맛보고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한대수 저자가 자신의 책들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삶의 최고 목적이죠), 무엇인가를 이루고 한세상살이 마감하는 건 누구나 긍정하는 삶의 의의이며 생명체의 의무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저자는 당시 한국에서 손꼽는 명문가에 태어나 아무 아쉬울 것 없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분입니다. 도대체 왜 그는 "삶"을 고통으로 선언하는 걸까요?
p22를 보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맞은편 페이지를 보면 어떤 흑인 소년이 (아마도 빈민가에 소재한) 집 안에서 허술한 방충망이 깔린 창 밖으로 힘없이, 그러나 약간의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시선을 주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문장은 다시 영어로도 반복되는데, 이 문장이 좀 묘합니다. We are all sentenced; to life. 만약에 이 문장에서 세미콜론(;)이 빠졌다면, sentenced to life는 그냥 "종신형을 선고받은"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문장부호(;)가 저렇게 하나 들어가면서,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감옥에 갇혔다"라는 묘한 뜻으로 다시 읽히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욕심, 집착, 미움... 삶이 이처럼 비생산적이고 불건전하고 소모적인 요소로만 가득하다면 과연 감옥살이, 그것도 죽을 때까지 출소가 안 되는 수형의 신세에 다름 아니겠습니다.
미국에서도 명문 학교만 다니던 그는 뉴햄프셔 주립대를 그만두고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조부와 부친에게 선언했습니다. 부친께서는 "사진은 취미이지, 직업이 아니지 않니?"라며 만류했다고 합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니 당장 알바를 해야만 했는데 NYT 광고란을 뒤져 그가 구한 자리는 레스토랑의 이른바 드링크맨(드렁큰맨이 아닌!)이었습니다. 업소에서 내건 "용모단정" 요건을 층족시킨 그는 바로 채용되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재클린 케네디, 앤디 워홀, 페이 더너웨이 등을 화장실에서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래서 크게 될 사람은 하다못해 알바를 해도 큰물에서 놀아야 하나 봅니다. "하하! 돈은 버는 사람만 번다!(p65)"
p79 이하에는 서울 창경원(당시 명칭)을 비롯하여 마치 개발 도상국 같은("같은"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던) 서울 곳곳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죽 이어집니다. 1969년이면, 현 75세인 그가 스물 한 살이던 시절입니다. 어느 허름한 식당(주류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인 듯)의 간판은 "전주집"인데 물론 이곳도 서울 소재입니다. 빨래가 널린 이유는 장식이 아니라 빨래를 햇볕 가득 말릴 공간이 거기밖에 없어서였겠습니다. 1969년은 그만큼이나 아득히 먼 멀티버스였습니다. 그리고 p173 이하를 보면 바르셀로나(2004), 뉴욕(2002)의 가난한 예술가 혹은 홈리스들이 곤경 속에서도 눈빛을 번득이는 사진이 이어지네요. 동시대인 듯 아득히 먼 시간과 공간.
p121을 보면 그 가난한 서울에서도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이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수줍어하거나 어색해하는 기색이 없고 당당히 렌즈를 응시하는데 "응, 뭐지?"라고 하는 듯한 당돌함이 그 표정에 배어납니다. 만약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했으면 저런 표정이 안 나왔을 듯합니다. p125를 보면 지게처럼 보이는 어느 도구를 도로변에 세워 두고 그 위에 올라읹아 잠이 든 어느 노동자의 고단한 모습 뒤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갑니다. 지게와 자동차라니 묘한 콘트라스트입니다. "캉가루구두약"이라고 특정 상표(당시)를 크게 써붙인 리어카를 끄는 서울의 중년 남성은 마치 중국의 인민복 차림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p235 이하에 이어지는 사진들은 2002년 베이징에서 그가 찍어논 것들입니다).
아무래도 한대수씨 같은 분은 군에서도 그 특기를 살려 참모총장실 영문연설 작성직으로 배치가 되곤 했나 봅니다. 당시 복무 기간이 무려 3년 3개월! 제대한 후 약혼녀 김명신씨(한대수씨의 팬들은 이분을 다 알기를, 마치 존 레논에게 오노요코가 있었던 것과 비슷할 만큼이죠)과 결혼하고, 불 같이 사랑하고, 20년 후에 드라마처럼 헤어졌습니다. 1992년에 옥사나 여사와 재혼해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p276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야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의 청년 시절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고 이에 반대하는 히피들, 플라워 칠드런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2022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지금 이순간에도 아무 의미 없는 테러와 폭력이 반복된다고 그는 고발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필요해도, 지구는 우리가 필요없다." 그저 불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중은 아닌지, 공멸로 치닫는 폭주를 이제는 멈출 때입니다. "나는 괴롭다. 고로 존재한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