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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트렌드 모니터 - 대중을 읽고 기획하는 힘
최인수 외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회사 다니는 분들은 엠브레인이라는 회사 이름을 들어 봤거나 실제 몇 번 컨택했었을 수 있습니다. 시장조사를 대행하는 곳이며 코스닥 상장법인이기도 합니다(움직임은 좀 심심한 종목입니다). 또 대선 때 엠브레인퍼블릭이라는 곳이 출처인 여론조사도 뉴스에서 자주 접했을 만합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서 매년 이맘때 펴내는 <트렌드 모니터> 시리즈도 처음 본 게 대략 10년 전 같은데 꾸준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소셜, 워크(work), 라이프, 컬처의 크게 네 챕터로 이뤄졌습니다.
"어른이 사라진 사회." 물론 성년/미성년을 괜히 가르는 게 아니라서, 사회 생활을 정상적으로 행하고 20세 이상이라면 모두 인격적으로 동등한 자격입니다. 나이 좀 많다고 함부로 어린 상대를 무시하거나 훈계를 일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조직이나 사회에는 그 공동체의 변천 과정을 죽 지켜봤거나 기여를 한 어른이 있기 마련이고 이들에 대한 respect는 마땅히 행해져야 그게 문명인답습니다. p42를 보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상황에 맞는 역할을 잘 찾아가는 사람"이 어른의 정의라는 응답이 73%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동문회 등에 가서 후배들한테 대접 받으려면 이 점 유의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책에서는 이른바 지연된 성인기를 맞는 세대에 대한 우려도 표명합니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거나 그 시기가 늦어지고, 이에 따라 사회는 젊고 싱싱한 노동력(정신, 육체적 모두)을 결과적으로 늦게 공급받는 셈이니 그 영향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는 타성에 젖고 혁신에 더뎌질 수 있으며, 은퇴 세대에의 연금 지급 과정이나 의료 보장에도 지장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세대간 갈등이 큰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이른바 노키즈존 같은 예를 들며, 신규 세대의 원활한 생산, 진입, 사회화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어덜티즘(adultism)에 대해 우려를 표명합니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낮아 국가 소멸을 우려해야 하는 나라에서 아이들 키우는 데 이렇게나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반대로 얼마 전 어느 카페에서, 자리를 오래 점유하는 노인에게 젊은 손님들이 싫어한다며 주의를 주어 가게를 떠나게 한 사건은 다른 함의를 갖는 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사는 탓에 학교건 직장이건 살인적인 경쟁이 벌너지는 게 또 문제입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에 인성이 피폐해지고 직장은 성원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공히 공동화시킬 만큼 살벌한 정글입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2~3년 전에는 코인 같은 신유형 자산의 등장, 코로나 시국 덕에 전개된 유동성 장세 덕분에 주식 수익 횡재 같은 게 있었으나 지금은 긴축과 불황의 기조 속에 씀씀이가 최악으로 위축된 판입니다. 사람들은 평균 이상의 수입, 성과, 과시, 소비를 자꾸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에 이제 질려서 그저 평균만 하자며 아우성치고 있다며 책에서는 진단합니다.
이 책에는 현 2030을 가리켜 "역사상 최고의 스펙 세대"라고 곳곳에서 규정합니다. 스펙도 탁월할 뿐 아니라 실제로 뭘 시켜도 척척 잘하고 판단도 합리적으로 내립니다. 인생관이나 정치관도 대개 논리적이고 차분합니다. 이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세대이기에, 사직이나 이직 문제에 대해서도 쿨하게 대처하고, "조직에의 충성"이란 강박이 없습니다. MZ에 대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프레임에 가깝다는 게 책의 진단입니다(p104). MZ에게도, 워라밸과 n잡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과 이중성이 분명히 있고 이런 갈등과 오해의 해소를 위해 기성세대와의 소통 채널이 따로 필요하다는 게 책의 제안이네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 젊은 세대는 자산 투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노동 소득 외에 다양한 자본 소득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실제 결과를 집요하게 내려고들 합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 노년층은 본래부터 재산 증식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성향입니다. 2030이 벌써부터 코인이나 주식 채권에 관심두는 건 아마 한국에서는 역사상 처음 보는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도 이 책 중에서 여러 번 짚어지는데,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책의 내용이 최근 트렌드 팩터들 여기저기에 걸친 데가 많아서라고도 생각됩니다. 하나의 급소만 짚어서는 책이 그만큼 성공하지 못했겠다는 뜻도 됩니다.
요즘은 어느 기업이나 구독 서비스를 최전선에 내세워 승부를 겁니다. 구독(購讀)이란 한자어는 본래 읽을거리(신문, 잡지, 책)에만 국한되던 것이, 영어의 subscription이 상품과 서비스 전 영역에 걸쳐 확대됨에 따라 그 번역어까지 어색하게 뜻이 확장되었습니다. 여튼 요즘은 온갖 것들을 다 구독하여 소비하는 세상이 되었고, 이제 구독 서비스도 어느 정도 체험해 본 소비자들이 그 속성을 파악하게 되었으므로 무엇을 구독할지 혹은 하지 않을지에 대해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따진다는 게 책의 분석입니다. 넷플릭스 같은 혁신적이고 신선한 서비스에 대해서조차 그리 충성스럽지 않고 무료 채널(광고만 시청하면 되는)을 찾아다니며, 가성비와 가심비를 넘어 시성비(시간이 곧 돈이므로 시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것)
예전에는 폰 주소록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연락처가 저장되었는지가 인맥 위력의 척도였습니다. 지금은그렇지 않고 필요할 때 과연 내가 원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소수에 속하는 자신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이가 친구이며, 극단적으로는 "딱 한 명이라도 상관없다(p210)"는 게 최근의 경향이라고까지 합니다. 대중은 다수를 무작정 추종하려 드는 경향도 있지만, 반대로 여건이 무르익으면 비록 소수임이 명확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 의사를 드러내려고도 하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그런 추세가 두드러진다고 하네요.
컨텐츠는 점점 개인화하여, 표면적 형식적 공정성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대변해 줄 수 있는, 이른바 매운맛 채널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도 요즘 눈에 띄는 추세입니다. 다만 이런 극단화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과연 건강하겠는지는 별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인지한 여러 외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OTT규제를 마련한다고도 합니다. 유해 환경에 뜻하지 않게 더 노출된 소비자들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져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소비자들은 모순적입니다. 어떤 나라를 싫어하면서도 그 나라에서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거리낌없이 소비하기도 합니다. 어린 세대인데도 레트로를 이상하게 선호하기도 하며, 이런 트랜드는 미국, 일본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흥미롭고 특이합니다. 소셜 미디어가 실제의 사교(social acts)를 상당 부분 대체하자 젊은층에서 이제는 소셜포비아가 증가한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소셜 미디어가 안티소셜을 자극한다는 게 실로 역설적이죠.
트렌드를 키워드 위주로 앙상하게 짚기보다 수필처럼 자상하게 풀어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또 트렌드 분석이 분석에 그치지 않고 회사 실무자가 바로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게, so what? 코너를 일일이 덧붙여 follow-through 해 주는 점도 무척 도움이 되었네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