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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인간은 역사를 이야기 형태로 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정도가 사실에 부합하고, 어디서부터가 왜곡 과장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힘듭니다. 고고학적 증거는 그 자체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주제이지만, 역사적 진술이 과연 팩트인지 아닌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수단 구실도 합니다. 어쩌면 영원히 답이 나오지 않을 만한, 이미 확정적인 미궁에 빠져버린 문제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 정답은 있지 않겠겠냐는 확신 하에 탐구를 이어 가는 학자들의 분투는 위대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프랑스도 그렇고 의외로 닭이라는 동물이 "상서로움"을 상징(p68)하는 문명권이 많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금성, 서라벌, 나중에는 동경 등으로 불렸는데 별칭 중 하나가 계림이며 이때의 계 자가 닭 계(鷄) 자입니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달걀은 식용이 아니라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고 책에 나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인용하여 천축국에서 신라를 어떻게 불렀는지가 설명되는데, 그들 식으로 바꿔 부른 명칭에 그렇게나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닭을 숭배하고 귀하게 여긴 문명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는 게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이어, 세계 최초로 닭을 가축화한 고고학적 증거가 중국 허베이성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해당 주장이 물적 증거까지 얻은 최근의 현황을 알려 줍니다. 또 한국에서는 의외로 닭을 가축으로 사육한 지가 오래지 않았고 오히려 쉽게 사냥할 수 있었던 꿩 식용이 흔했다고 나오네요. 우리가 토종닭이라 아는 종은 허베이성이 아니라 한참 멀리 떨어진 운남성 출신이라고 하니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운남성은 원나라 대에 와서야 중화 제국에 완전히 편입되니 말입니다.
생선은 몸이 해로운 물질이 적은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기 때문에 인류가 즐겨 섭취해 왔습니다. 그러나 변질이 쉽고 운송이 어려워 많은 이들이 식용으로 쓰지는 못했는데, 훨씬 후대에 들어 고작해야 염장을 해서 보관하는 정도였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생선을 먹었던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삼한 시대에 들어서야 사람들이 해산물을 즐겨 먹은 흔적이 나오는데, 한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듯 상어 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한국 컨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몇 년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p95에도 나오듯 인간의 놀이 문화는 그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오락 전용이 아니었고, 장차 전사로 자라날 후속 세대를 약간 잔인한 방법으로 교육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p97에는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에 남은 암각화가 사진으로 소개되는데, 다리가 O자형으로 휜 것도 말에 탔을 때 몸에 밀착하여 중심을 잘 잡기 위함이라 하니 좀 놀랍기도 합니다.
원작국인 일본뿐 아니라 한국, 나아가 서양에서까지 큰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는 주인공이 영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그 원형을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로 꼽습니다. 사람은 한 곳에 평화롭게 정착하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아주 낯선 곳을 애써 찾아 떠나고 방랑하기를 꿈꾸기도 하는 묘한 존재입니다. 저자는 이런 여행 본능을 통해, 인류가 진화, 생존, 번영, 나아가 안식이 가능했다고 규정(p145)합니다. 한 곳에만 안주하는 개인이나 문명은 결국 퇴화, 피폐화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영생에 대한 갈망은 p284 이하에도 자세하게 논급됩니다.
동물들은 그저 배를 채우고 비바람과 추위로부터 해방되면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습니다. 놀랍게도 인간만이 형이상학적 욕구를 가져 문제 해결이나 초월을 갈망하기도 하고, 사치나 장식 등 따로 미적 욕망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의 제3부 주제와 제목은 "명품"인데, 실크, 황금, 금관, 인삼 등이 주요 토픽입니다. 특이한 건 이 3부의 첫째 토픽이 "석기"인데, 석기가 명품과 무슨 관계일까 싶어도 흑요석 등으로 만들어진 석기는 도구 이상의 노릇을 했으니 그리 평가받을 만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 독자들이 주목할 대목은, 20세기 중반 미국 고고학자 뫼비우스가 동양의 석기를 두고 조악하다 평가하여 지능이나 문명화 척도 이슈로까지 비화할 여지를 암시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일단 한반도에서도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반례가 생겼고, 애초에 차돌 등이 많아 가공이 어려운 환경에서 찍개 위주로 발달한 사정을 고려치 않은 독단론이었다며 비판(p181)합니다. 인종차별이 깔린 선입견과 편견은 학문 발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입니다.
메타버스가 별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꾸곤 하는 꿈이 바로 메타버스(p262)라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이 메타버스를 예술로 표현한 게 바로 유적들에 남아 있는 옛 사람들의 (일견 투박해 보이는) 그림과 조각들이며, 고려의 <수이전>을 보면 실존 인물 최치원이 귀신 자매와 연애를 하는 사연이 나오는 등 꿈과 현실은 본래부터가 동전의 양면처럼 인간의 의식, 나아가 존재를 규정해 왔습니다.
21세기 한국에도 대학가 등 골목마다 보이는 게 사주카페입니다. 물론 젊은 세대가 정말로 미신이나 운명론을 믿어서가 아니라 유흥이나 오락을 즐기는 심리가 다분히 작용했겠는데,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점복(占卜)에 대해 그 이유를 고찰합니다. 이는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간절한 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며, 천문학도 본디 점성술에 약한 기원을 두었다가 오늘날처럼 자연과학적 본질을 갖추게 발달한 것입니다. 이런 욕구를 발전적으로 승화하는 지름길은, 인간과 인간이 섬으로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보다 큰 존재로 거듭나는 데서 가능하다고 저자는 마무리하며, 이는 이미 우리들의 조상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보여 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