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우울 -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이묵돌 지음 / 일요일오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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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는 에곤 실레(Schiele) 풍의 그림이 실렸습니다. 여인은 무엇인가를 피해 웅크리는 듯도 보이며, 이 표지에 90도 우회전하여 인쇄된 까닭에 벽 뒤에 숨어 은근 시선에의 노출을 즐기며 누구를 응시하는 듯도 보입니다. 그 표정에는 불안과 두려움, 반대로 기대 같은 것이 은근 섞인, 복잡미묘한 모습입니다. 놀랍게도 약간의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풍깁니다. 누가 봐도 특유의 선과 색이 실레의 것입니다만 구체적으로 그가 남긴 어떤 제목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우울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단방향의 폭주이지만은 않고 복잡한 감정입니다. 물론 우울이 병으로까지 발전하여 당사자가 도저히 감당 못 할 지경이 되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 봐야 하겠습니다만,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가 우울을 달고 삽니다. 책을 읽어 보면 이묵돌 저자께서는 남들보다 혹독한 어떤 체험을 하시고 정말 지독한 우울증을 겪으셨는데, 그 결과물인 깊이 있는 사색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19세기 독일의 니체라든가, 이 저자님 같은 분은 남들 몫의 몇 배를 혼자서 우울해하고 그 고통스러운 부산물(그러나 갚진)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적이지만 우리 독자들은 대신 극한체험을 시키고 그 느낌이 어떤지, 생각이라는 게 어느 경지까지 가는지 책을 통해 슬쩍 엿보고 과실을 챙깁니다. 

이게 최선이었어?라고 물을 때는 보통 그게 정말로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묻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불만족스러워서입니다. 뭐 어떻게 보면 최선의 역설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거나 없애버리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이 정도로 간신히 수습하고, 싸게 막았다고 여기고 참는 것입니다. p19에 보면 "최선을 다해 젖어가기로 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젖어간다는 말은 적응한다는 뜻입니다(독자인 제가 이해하기로는요). 누구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도 하는데, 이건 남의 사정을 모르는 너무도 무책임하고 냉정한 말입니다. 저자님 말대로, 간신히 간신히 젖어가는 게 우리가 도망칠 수 없는 괴로움과 난관을 우리가 견뎌가는 방법입니다.  

p69에 보면 babip 수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세이버메트릭스 혁명 덕분에 국내 야구팬들이 이야깃거리가 늘어서 행복해진 요즘입니다. 배빕이니 WAR이니 wOBA니 하는 말들이 이제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일상용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야구 좋아하시게 보이는 저자께서도 이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한 흔적을 이 책에 남기셨는데... 우리 인생도 어찌보면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 여부와 무관하게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버린 요소가 참 많죠. 그래서 운명론 같은 게 나오는 건데... 

저는 배빕의 경우는 꼭 이게 운명론이라기보다, 어찌보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갖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잘하는 타자도 타율 4할을 못 넘기듯, 종목의 우연성이 크게 작용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결국 그게 그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다만, 배빕 이론은 얼핏 보아 상식에 반하는 결론 같아도, 우리가 알게모르게 의심하던 바를 기어이 통계를 통해 규명한, 학문적 쾌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불편하긴 해도 내심으로는 수긍하던 바를 수면에 끌어올려 진실로 정립한 거죠. 

p79에 보면 운전면허 연습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연습은 뭐하러 했냐는 책망이 친구한테서 나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허무하고 무력해 보여도 이게 정답입니다. 최악은 뭐냐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넋 놓고 있는 거죠. 설령 이 또한 지나간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역효과가 안 나는 한에서 발버둥을 쳐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인간은 불안 때문에 제풀에 지쳐 죽습니다. 

저자님의 이야기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용어 사용도 굉장히 정확성을 기하는 스타일입니다. 미셀러니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할까요. 소확행에 대한 지론(p98 이하)도 독자 개인적으로 동의 반대 여부를 떠나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 많았습니다. p105 이하에 나오는, 에리히 프롬의 고전에 대한 해석도 시원시원했습니다. 그시절(도스토옙스키가 활동하던 시대)만 원고료를 단어 수로 책정(p125)하던 게 아니라 지금도 스크립터(그리고 상당수의 작가)는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페이를 받습니다. 우습긴 하지만요. 

우울은 과연 질병과도 같아서 타인에게 전염이 될까요?(p182) 저는 무조건이라고 봅니다. 어떤 감정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전염이 잘 되는데, 우울감처럼 뭔가 인간 정신의 본체 비슷한 요소는, 기다렸다는 듯 화선지가 벼루에서 먹을 빨아들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이런 감정을 잘 다루시는 전문가에게 내 몫의 짐까지 떠넘기고 싶고,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면서 대보름날 내 더위 사가라는 양 헛스윙 크게 휘두르고도 싶습니다. 남이 크게 우울한 걸 보면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값싸게 안도하는 내 모습이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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