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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산 패밀리 1 ㅣ 특서 어린이문학 3
박현숙 지음, 길개 그림 / 특서주니어 / 2023년 9월
평점 :
요즘은 동네 뒷산 같은 곳을 지날 때 조심해야 하는 게, 사람들이 버린 반려견이 들개로 변해(p151, p181)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도 그런 버려진 개들을 소재로 삼았는데, 소설 속에서는 마냥 사람의 관점에서 이들을 위험하게만 볼 게 아니라, 그런 처지로 몰아댄 비정한 사람들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듯합니다.
1인칭 화자인 얼룩이는 매사에 원한이 가득합니다. 천개산 산66번지(p22 등)에 모여 사는 개 다섯 마리의 삶은 참 처량한데, 요즘 속어로 일종의 "팸"을 이뤄 살고들 있습니다. 모두가 사람에 의해 학대당하다가 탈출하거나 버려진 애들이라서 가출은 아닙니다만 여튼 공통의 한을 품고 팀을 이뤄 힘든 삶을 꾸려 갑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유독 얼룩이가 강경론자 극단론자인데, 너무 고생이 심해서인지 인간미, 아니 생물 공통의 어떤 공감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아주 삭막한 심성입니다.
바다는 주인에 의해 버려진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길을 잘못 들어 미아가 되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합니다. 하긴 그런 식으로 어떤 가상의 사연을 만들면 본인 마음이 덜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에 맞아 아프면서도 사실은 별로 안 아프다며 (예상과 달리) 아프지 않은 자신을 확인하는 얼룩이에 대해 조소를 보내기까지 하니 최강의 자기기만 기제입니다.
미소는 이름만 미소일 뿐 얼굴은 찌그러지고(p61) 험상궂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나쁜 경험이 있는 데다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드니 그 외양인들 편하게 변할 리가 만무하죠. 이 와중에도 진돗개라며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번개를 보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반면 얼룩이는 이름이 없으면서도, 어차피 이름이라는 게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붙여 준 것에 불과하니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항변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다 버려진 개들에 불과한데 사람에 의해 부여된 서열을 따지며 자부심을 갖는 꼴이니 말입니다. 말콤 X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사랑 받고 귀하게 살았는지 몰라도 결국은 버려진 거야.(p100)" 이것은 나중에 대장과 큰 싸움을 벌이는 번개의 항변입니다.
규칙을 어기면 대장이라도 쫓겨나야 한다고 외치는 얼룩이의 마음엔 어떤 생각이 깃든 걸까요? 리더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쿠데타 세력의 야심? 그렇다기보다, 과거에 대한 상처가 지나치게 깊은 이들이 종종 보이곤 하는, 혹은 약자 컴플렉스의 발로인, 극단적 원칙론자의 모습이 드러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이 버려진 개라는 끔찍한 트라우마(p54) 때문에 잠시 심성에 때가 묻었을 뿐 천성은 나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독자 모두가 갖습니다. p52을 보면, "마음만 약하지 않으면 최고의 대장"이라는 그의 평가가 나옵니다. p83을 보면 그러나 같은 표현을 쓰면서도 얼룩이는 제법 다른 뉘앙스를 담습니다.
번개보다 더 격렬히, 조난자, "그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하던 게 얼룩이입니다. 이 얼룩이에게 "들개야"라며 이름(?)을 새로 불러 준 게 조난자입니다. "버림 받은 주제에 왜, 사람을 이해 못 해서 다들 난리들이야?(p143)" 얼룩이가 바다를 찾으러 편의점 근처에 갔다가 만난 "흰 개"는 참 말이 많습니다. 얼룩이는 마을에 내려가서 바다를 찾긴 하지만 뜨거운 튀김을 훔치다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 차에 치이기까지 합니다. 말은 거칠지만 친구를 위해 이렇게 목숨까지 거는 얼룩이를 보며 바다가 우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책 안에 컬러링 카드 다섯 장이 들었습니다. 정성들인 일러스트가 많아서 그래픽 노블을 읽는 느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