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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양장) - 무소유 삶을 살다 가신 성철·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메시지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드신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이 책은 수 년 전에 김세중 저자에 의해 이미 독자들을 만난 책이지만, 30주기를 맞아 새로 나온 판입니다. 책은 성철 스님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13년 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담았습니다. 책 표지를 보면 왼쪽에 성철 스님이 특유의 기운 장삼을 입으시고, 그 옆에 법정 스님이 매우 젊은 얼굴을 하시고 가부좌를 트신 사진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20년 정도 더 젊으신 분입니다.
성철 스님은 생전부터 타 종교에 대해 몹시도 열린 태도를 견지하셨습니다. p28을 보면 "종교(불교) 자체보다는 진리가 더 우선"이라고 생전에 하신 말씀이 인용됩니다. 물론 참된 불교의 도를 끝까지 추구하면 그게 곧 진리이니 불교와 진리가 둘이 아닙니다만, 구태여 선후를 매기자면 진리가 더 우선이라는 말씀 앞에 숙연해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애초에 궁극의 도를 바라보시는 분이, 이름이 불교가 되었든 기독교가 되었든 심지어 사탄이 되었든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p89를 보면 부처와 악마가 한몸이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늦은 변화를 생멸이라고 하며, 빠른 변화를 윤회라고 한다(p80)." 책에서는 육도윤회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이처럼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모든 것이 돌고돌며 변화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심지어 나 자신도 내가 아니며 자아라는 게 성장 과정에서 편의로 잡아 둔 허상에 불과한데, 무엇 때문에 나의 생각 나의 욕구 나의 고집이라는 걸 우기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괜히 업이나 지으면 다음 생에서 축생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 하물며 선과 악인들 구분이 있겠습니까? p92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노인은 갖은 고생을 하며 자이언트 말린을 낚았지만, 귀항할 때에는 빈 뼈다귀만을 거두었을 뿐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말린과 노인 자신이 결국은 한몸과도 같았으며 노인은 궁극적으로 이 점을 깨닫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도 결론 내립니다.
p110을 보면 오히려 선과 악을 구별하는 건 사물에 대한 공허한 집착이 그 주된 이유일 뿐이라고 합니다. 선(善)과 악을 지나치게 따지고 드는 게, 실상은 그 마음이 전혀 선하지 않아서라는 지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과 악을 지나치게 가리는 사람은 아마 극락과 지옥도 엄청나게 분별해 댈 것입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심지어 "마음의 눈을 뜨면 우리 사는 이 세상이 곧 극락(p121)"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이 더럽다 하지 않으시고 이 예토에서 마음껏 진리를 설파하시다 가셨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그 한 단계가 우리들 중생에게는 이리도 힘듭니다.
성철 스님은 자신을 만나려면 삼천 배(拜)를 할 것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자신을 높이려는 게 아니라 삼천 배를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전과는 달리 많은 생각과 성찰을 해 볼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선(禪)의 기본은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입니다. 몸이 전과 달리 아파 오면, 사람은 고집을 버리고 먼 곳을 응시할 여유를 찾습니다. 마음에 독을 품는 자는 그 독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게 법정 스님의 가르침 중 하나입니 다. 마음 속에 달빛 어린 정원(p247)을 만드는 게 우리들 유한자의 올바른 자세임을, 무소유를 설파한 법정 스님의 뒤안을 살피며 우리 독자들이 깨닫는 바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