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이 들어도 늙지 않기를 권하다 - 죽기 전까지 몸과 정신의 활력을 유지하는 법
마리아네 코흐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평점 :
백 세 시대라고 합니다. 20대 젊은이라고 해도 중반이 넘어가면 아 내 청춘이 다 가는구나 하며 아쉬운 상념에 젖기 마련입니다. 아니 18세 고교생이라고 해도 민증이 나오면 뭔가 슬퍼집니다.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산다 해도 수명을 늘리거나 손상된 건강을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산 사람일수록 안타깝게도 병을 얻어, 혹은 다쳐서 더 일찍 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필멸의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게 인간이고 보면, 죽기 싫어 늙기 싫어 같은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것보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해지고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찾는 길로 나가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독일 출신 의학박사가 쓴 실용적인 처방전입니다. 죽음에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오히려 나이에 걸맞은 성숙과 안정, 관조하는 마음을 장착한다면 뿌리 없이 떠돌다 큰 사고를 칠 수 있는 젊은이보다 훨씬 낫습니다. 게다가 중장년에게는 경제적으로 든든한 물적 자산이 있지 않습니까. 저자의 성씨를 보면 인류를 질병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킨 세균학자 코흐와 같은데, 이런 점에서도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만) 뭔가 책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듯합니다. 실제로, 임상 경험도 풍부한 의학박사이셔서인지, 흔한 덕담이나 위로가 아니라 신체적 건강과 마음의 평화, 인격적 성숙, 생에의 관조 등 모든 면에서 독자에게 종합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92세이니 인생의 스승으로서 교훈을 내릴 자격조차 갖춘 분입니다(책 자체는 2년 전에 나왔습니다).
제로사이언스라는 분야가 있다고 합니다(p15). zero-science가 아니라, 늙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근 gero-, geronto-에서 새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이 학문은 장노년에게는 물론, 사회 생활을 갓 시작한 청년층에게도 일생을 두고 노화에 대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대비를 시켜 주는 데에 일차 의의가 있습니다. 많은 처방은 일단 준비된 설문에 대한 응답들로 시작합니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세밀하게 만들어진 설문에 답하다 보면 전문가는 사례자의 성향에 대해 파악하게 되며 응답자 본인도 (처방을 받기 전부터도) 자신이 누구인지 뭔가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정해진 궤도 안에 안전하게 몸을 맡기려 드는 게 보통입니다. 나이 들면 자신이 여태 가져 오게 된 정신적 자산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젊은이가 다른 생각을 말하면, 너보다 더 많이 살아 온 나의 생각이 너보다 못하다는 것이냐며 마치 자신의 인격을 모욕당한 듯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래서 노인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고, 또 노인은 으레 선입견 덩어리이겠거니 하고 다른 연령대가 그들에 대해 선입견(p59)을 갖기도 합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우선 젊은이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노인이 인생을 헛산 건 또 아닙니다. 사람인 이상 틀릴 수도 있죠. 내 생각에 진정한 확신이 있으면 젊은이가 이를 부인하려 든다고 해서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안타까워서 웃음이 나죠. 화가 난다는 건 이미 자신의 생각에 자신부터가 믿음이 안 가므로 대접해 달라고 어린이처럼 생떼를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음으로, 유연한 사고(思考)와 상황 대응이 가능하냐 아니냐로 늙음과 젊음을 구분해야 하며, 나이가 젊어도 어떤 고정관념에 매여 있다면 이건 내일이면 저세상 갈 늙은이만도 못한, 불쌍한 젊은이에 불과합니다(이미 젊은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융통성 있고 적응력 좋은 노인들은 외관상으로도 노인 티가 안 나는 게 또 공통점입니다. 희한하게, 정신이 건강한 노인들은 몸에도 탈이 덜 납니다.
나이 들면 또 살이 많이 찝니다. 그러다가 임계점을 지나면 급격히 빠지고 그러다가 돌아가시는 겁니다. 적정 체중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살이 찐 이들은 마음이 급합니다. 이거 빨리 빼서 다 없애버려야지 급한 마음으로 급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지만 살은 절대 쉽게 안 빠집니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이게 내 팔자인가 보다 체념하거나,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 받느니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으면서 마음 편하게 살다가 가련다 같은 자기위안 자기기만에 빠집니다. 폭식으로 이어지고 예전보다 살은 더 찝니다. 책에서는 1개월에 1kg씩만 빼라고 합니다(p83). 이걸 누가 못할까 싶지만 사실 이것도 다음 달에 목표 실패하기가 십상입니다. 뺀 효과는 콘스탄트하게 유지가 되어야 그게 진짜이며 따라서 1달에 1kg 빼기는 현실적으로 목표를 낮춰잡자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감량을 위한 치밀한 전략입니다.
세상이 디지털화한다는 건 오히려 노인들에게 유리한 점입니다. 신체 능력이라는 건 30대만 되어도 크게 꺾여가며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몸을 안 써도 되는 일에서 젊은이들이 채 흉내낼 수 없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사회에서 나이가 아닌 능력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나이가 들면 지적 능력도 쇠퇴하는 게 아닌가? 그게 바로 선입견입니다. 그 선입견에서 못 벗어나면 영원히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는 거고 말입니다. 이 책은 늙어감에 대비하는 학문적 성과가 담겼을 뿐 아니라 저자 자신부터가 (머리가 활발히 돌아가는) 90세 노인이므로 여러 모로 강력한 확증과 설득력을 갖춘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