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읽는다 세계사를 바꾼 전쟁의 신 지도로 읽는다
김정준 지음 / 이다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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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누리에는 언제까지나 평화가 깃들어야 하며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전쟁으로 해결하려 들면 이제는 모두가 핵 피해 때문에 죽게 되어 있습니다.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이미 인간의 방식이 아니며 사람이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아무 명분 없이 나에게 폭력으로 도발해 오면 그에 대응하는 최소의 수단으로 자위 전쟁이 강구되어야 하며, 그런 이유에서라도 지난 역사의 전쟁 과정과 결과는 진지하게 고찰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역사 속에는 한 종족이 다른 종족에 맞서 싸우며 발휘한 지혜의 총체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또 저자께서 지적하신 대로, 한 번의 결정적 전투에서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거둔 승리는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 놓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한 사연이기도 합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뉘며 모두 23인의 명장이 등장합니다. 3장은 고대, 중세, 근현대를 각각 다루며 시대에 따라 역사의 형세, 각 정치단위의 구조, 전쟁의 양상이 다르므로 일단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눈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독자로서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은 광개토태왕과 이순신 두 사람, 일본인, 중국인, 몽골인 등 기타 동아시아인은 손무, 백기, 한신, 칭기즈칸, 오다 노부나가 등 다섯 사람입니다. 근현대에서 뽑힌 여섯 명은 모두 구미인들인데 독일인 2명, 영, 미, 불이 각각 1명씩입니다. 명장이라고 해서 모두 장수 신분이었던 건 아니고 천부적으로 왕족이었던 이들, 출세하여 군주까지 이른 이들이 두루 포함되었습니다.   

키루스 2세는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가 메소포타미아와 근동을 통일하게 만든 군주입니다. 그의 통일은 거의 최초로 시스템이 잘 갖춰진 국가가 제국을 일군 사례인데, 그저 폭력적 억압과 공포 분위기 조장으로만 신민을 다스리지 않고 장기 비전과 통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합니다. p21에 컬러 지도가 두 폭 수록되었는데 역시 이다미디어의 이 시리즈는 예쁜 지도가 최고 강점입니다. 또 이 통일 페르시아는 건너편 반도의 그리스 여러 도시국가들에까지 심각한 우려를 끼쳤는데, 천 수백 년 후 낭만주의 사조가 휩쓴 유럽에서 이 키루스를 소재로 여러 멋진 그림을 남겼고 책에는 그 명화들이 올컬러로 실렸습니다. 

손무는 병법서의 저자이기도 하고 명장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천 수백 년 후 빌헬름 2세도 황제였으면서 이 중국 고전을 탐독하며 감탄하기도 했고, 책에 나오는 대로 위 무제(조조)가 직접 주해를 하기도 한 고고이죠. p32에는 컬러로 정리된 표가 나오는데 회수 이남 3대국인 초, 오, 월의 군주들이 대순(代順)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될 시기에 초점을 두어 정리한 표인데 독자에게 깔끔하게 정보를 전달해 줍니다. "전하께서는 병서를 즐겨 논하실 뿐 실제의 용병에는..." 운운하는 손자의 말은 여러 사서에 등장하여 독자들에게도 익숙한데, 아마 빌헬름 2세한테도 똑같이 적용될 듯합니다. 항상 현실에 무지하고 탁상공론에만 능한 왕들이 문제입니다.  

백기는 섬멸전의 주역으로 저자께서 평가하는데 아마 기록상의 과장이 있긴 하겠으나 40만명의 조나라 군사를 생매장한 사례는 역사 어디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기 힘들 듯합니다. p63에 심플하게 도식화한 장평 전투의 대진도가 역시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고대에는 이처럼, 물산이 풍부하여 많은 수의 백성을 넉넉히 잘 먹이던 느슨한 기강의 나라가, 척박한 변방에서 상무적 기풍을 유지하던 나라에게 큰 일격을 당해 일시에 국세가 무너지는 예가 많았으나, 현대전은 물량과 보급 위주이므로 이렇게 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군국주의 일본도, 만만히 보던 미국한테 된통 당하고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귀족이었던, 정복 군주로 내내 자라날 운명이었던 항우와, 정치 99단이었던 서민 출신 유방 사이의 건곤일척 항쟁으로만 알던 초한 쟁패기에서 사실 진정으로 군신이라 불릴 만한 이는 한신이었습니다. p73에 컬러로 초와 한 사이의 일전일퇴상이 잘 정리된 지도가 나오는데 산동 반도를 보면 제(齊)가 표시됩니다. 이 제나라가, 한신이 유방더러 가왕(假王)을 삼아 달라고 했던 그 땅이며, 책사 괴철이 자립을 권할 때 그 기반으로 삼으라고도 했습니다. 괴철은 철(撤)이라는 이름자가 한 무제의 휘와 같다고 하여 <사기>에는 내내 괴통(通)으로 피휘됩니다.    

알프스를 넘는다, 혹은 적이 전혀 생각 못한 난지형을 넘어 기습공격을 감행한다고 하면 첫째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병졸과 장교들에게 무리한 작전을 감행하고도 동의를 얻을 만한 지도력이 있어야 하며, 이 장군을 따라가면 위험해도 그만한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야 합니다. 둘째로 경험이 아주 많거나 임기응변에 아주 능하여 자연지형상의 각종 난관을 요리조리 잘 피해가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크게 경영 역량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데 한니발에게는 이런 재주가 있었던 것입니다,.물론 그는 야전에도 능해서 그가 이끄는 군대와 정면으로 붙어 이길 수 있는 사령관이 로마에는 없었습니다. 마치 연의의 제갈량이나 19세기 초 유럽의 나폴레옹 1세와 같았습니다. 책에는 이 파트에서 모두 세 점의 지도가 나와 한니발의 천재성과 최후의 비극성을 독자에게 잘 이해시킵니다. 물론 그를 이긴 스키피오도, 러시아에서 끝내 나폴레옹을 격퇴한 쿠투조프만큼이나 명장입니다. 

한니발이라는 대적(archenemy)을 퇴치한 로마는 이미 원하든 않든 자신의 방식으로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계속 내치를 공화정으로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오리엔트처럼 제정으로 갈 것이냐의 기로에 섰었습니다. 이 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두 파트에 걸쳐 다루는데, 전편은 골 족을 물리친 외정에 초점이 놓이며, 후편은 폼페이우스 등 로마 내부의 정적을 꺾는 과정을 분석합니다. 그는 로마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화족이었던 데다 교양이 풍부하여 단순한 무인이 아니었고, 그저 무지한 자들을 사탕발림으로 선동하여 얄팍한 사탕발림으로 한몫 잡으려는 사기꾼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p115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그의 일대기가 나와 거인의 자취를 엿보게 합니다. 

보통 사산 조 페르시아와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이 공연히 항쟁하다 신흥 사라센에게만 좋은 일 시켰다고 비웃지만 이슬람 제국 역시 그만한 역량이 있었기에 "이삭줍기"가 가능했으며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같은 명장이 정통 칼리프들의 명을 잘 받들어 동로마를 효과적으로 격퇴하지 않았더라면 이후 수백년의 영화가 없었을 뿐 아니라 현재 중동 사람들이 무슨 종교를 믿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명장도 결국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역사에서 쓸쓸하게 퇴장한 건 한(漢)나라의 한신(韓信), 청나라의 연갱요, 융과다 등과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앞에서 백기의 잔혹함에 전국 시대 백성들이 치를 떨었다고 했으나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 , 또 그의 후손을 자칭한 티무르 등이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에서 각각 자행한 대량 학살은 한동안 해당 지역에서 문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졌습니다. p259에는 티무르가 오스만 투르크 황제 바예지드 1세와 일합을 겨룰 때 양군이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도식화가 나옵니다. 바예지드는 이 전투에서 티무르에게 져 그의 몸뚱이가 발받침으로 쓰이는 치욕을 당했다고 하며, 그의 아내는 옷이 벗겨진 채 춤추기와 술따르기를 강요당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스웨덴의 왕이면서 병법에도 능했던, 북부 유럽의 오랜 군사적 정통을 제대로 상징하는 아마도 마지막 군주였지 싶습니다(물론 고유의 군주정은 지금까지 이어집니다만). 귀신 같은 솜씨를 자랑했건만 역시 병법의 천재였던 발렌슈타인과 한판 붙다 전사하고 30년 전쟁은 이제 합스부르크 제국이 전 유럽을 가톨릭 기치 하에 통일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만 난데없이 같은 구교국인 프랑스가 개입하여 결국 유럽은 종교상의 할거 시대로 진입합니다. 이후 상무의 전통이 완연한 프로이센이 특히 프리드리히 대왕의 영도 하에 열강으로 자리잡고 발전하다가 나폴레옹의 grande armée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전략전술은 그것이 아무리 과거에 찬란하게 효율을 발휘했다 해도 현재의 기술 여건을 최대한 반영해야 실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투하체프스키 같은 명장도 이미 소련에서 현대적인 군사 교리를 성립시켰으나 스탈린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그 성과가 사장될 뻔했습니다. 독일에는 하인츠 구데리안 같은 천재가 기갑사단 운용에 걸맞은 원칙을 발전시켰고 아르덴을 통한 프랑스 진입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워 그 천재성을 세상에 증명했습니다. 전격전의 위력을 잘 보여 주는 지도가 p401에 잘 나옵니다.   

특히 전쟁사는 지도와 함께 공부해야 그 정확한 의의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신 김정준 저자의 정확하고 명료한 서술과 함께하는 "지도로 읽는다" 시리즈가 이다미디어에서 계속 출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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