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을 읽어 보면 꼭 대상수상작뿐 아니라 같이 실린 우수상 수상작들, 기수상작가 자선작 등도 재미있습니다. 이번 연도(2023) 작품집에서 저는 대상수상작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김멜라 작가의 <이응 이응>에 더 큰 흥미를 갖고 감상했습니다. 작년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읽지 못했습니다만 찾아 읽어 볼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3년 전 8월 이 작가분의 <적어도 두 번>을 읽고 독후감을 남긴 적 있습니다. 

미도파(p10)는, 대상수상작 <애도의 방식>에서 어느 찻집(작품의 제재) 이름으로 쓰입니다. 미도파라고 하면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대농그룹이 운영하던(현재는 롯데 소속) 남대문상가의 백화점이 떠오르겠습니다. 또 1980년대 최강 전력의 실업 여자배구단 이름이기도 하며(같은 기업이 운영), 현 프로 흥국 핑크스파이더스의 직전 감독, 현 KBS 해설위원 광주광역시 출신 박미희씨 같은 이름이 연상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고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미도파"가 선택되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작중 찻집 미도파의 실내나 분위기 모두 촌스럽다고 합니다. 특히 인테리어 중 체리색 몰딩(p10)은 요즘 젊은 2030 여성들이 질색을 하는 획일성과 갑갑함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무려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에까지 체리몰딩이 끌려나와 욕을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체리몰딩이 그리 싫지 않고 호불호가 덜 갈리는 무난한 선택인데 왜들 그러나 싶지만 여성들 사이 최신 트렌드가 그렇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동주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는 어른들 때문에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듯합니다. 어떤 할머니(제 몸뚱이가 다 썩었다는)는 구태여 찾아와 네가 돈가스집 아들 아니냐(p21)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혼동하기까지 합니다. 이 부분이 가관이죠. 어리석은 대중은 사건이 터지면 자신이 법관, 정의의 사도나 된 양 목소리를 높여 판결문을 읊어 대지만 이처럼 기초적인 사실 관계도 모르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바로 자신이, 사건의 가해자보다 더한 악을 저지르기 직전임을 알기나 할까요? 더 기가 찬 건 진실을 말해 달라며 피해자인 동주를 귀찮게 구는 승규의 모친입니다. 우리 독자가 이미 짐작한 대로, 또 작품 끝에 다 밝혀지는 대로, 진실은 웬 양아치가 미쳐 날뛰다 개죽음을 한 것이며, 심지어 죽고 나서도 남한테 폐를 끼친다는 거네요. 

"제가 쫓아낸 것보다, 댁의 아이가 개o끼처럼 군 게 더 문제 아니겠어요?(p43)" 요즘은 사회 곳곳에서 갑질이 문제입니다. 최근에는 교원들이 고생을 했나 봅니다만 원래는 이처럼 자영업자들이 버르장머리없는 아이들을 대동한 일부 부모들 때문에 온갖 고충을 다 털어놓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놓고 절대악으로 타매할 것은 아니며, 제도적 허점은 보완하되 개별적으로 누가 잘못을 했는지 세심하게 가려서 따져야 합니다. p45에 보면 문이 닫히면서 자칫 사고가 날 뻔했다는 서술이 있는데 실제로 어느 치킨집인가에서 애 손가락을 다친 사고 때문에 몇 년 전에 소송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아니, 한국 사회 어디서나 갑질 악성민원 없는 데가 없는데, 왜 교원들만 이렇게 민감하게 구나요?" 이 작(<너머의 세계>)의 오연수 선생 같은 분을 보면 명백하게 악질한테 잘못 걸린 사례가 맞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교원이 희생자이고 학부형은 이기주의의 귀신이 씐 악마일까요? 사례를 보다 보면 정반대 케이스도 많습니다. 단지 나이 어린 교원이 유독 타겟이 되고 이들이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양심이 여려서 사고가 날 뿐입니다.이 작에 나온 학생놈은 커서도 양아치 말고는 될 게 없는 싹수가 노란 망나니인 게 또 분명하고 말이죠. 

"역시 나이가 문제인 걸까.(p101)" 본인도 잘 알고 있겠으나 문제인 건 나이가 아니라 뒤떨어진 감각이며 헛된 추억의 자취에 대한 공연한 집착입니다. 나이 탓을 하면 다만 본인 마음은 당장 편하겠죠. 요즘 세대는 문자 소통에서 마침표 같은 구두점을 쓰지 않고, 특히 말줄임표(p134)는 극혐한다는데 나이 든 세대는 이걸 전혀 의식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p125에는 ㅋㅋㅋ ㅎㅎ 같은 초성체도 나옵니다. 이 작(<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에서 단발이 두 번 언급되는데 하나는 "애나의 희끗한 단발머리(p132)", 다른 하나는 바로 앞 페이지의 요가복 입은 백인의 칼단발인데 작중에서는 구태여 "칼로 자른 것처럼 반듯한 단발머리"라고 풀어 쓰셔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이제는 원로라고 봐야 할 김인숙 작가님의 <자작나무 숲>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제목도 (신작인데도) 오래 전 작품인 듯 착시가 일어났습니다(제 개인적으로). "가스보다 더 유독했던 건 할머니에 대한 나의 불안이었다(p184)." 우리는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쓸모, 볼품 없어지니 노화나 노인을 타자화할 일이 절대 아닙니다만 현실은 또 그렇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어요. 왜죠? 모든 것에 다 기억이 있어서요.(p203)" 그다음 말이 걸작입니다. "어떤 기억인가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혜 작가의 <북명 너머에서> 중 "북명"은 가상의 백화점 이름입니다. "나는 그 구덩이를 사랑했다는 걸, 절망한 이무기와 이별과 실패한 오욕이 고인, 빈 연못을 한없이 원했다는 걸 깨달았다(p242)." 같은 백화점에 입주한 매장이라고 해도 평수가 다르고 번창하는 정도가 달라서, 직원들은 위화감을 느낄 만합니다. 키가 훤칠하고 세련된 모델처럼 생긴 조옥(p243)은 그녀를 오빠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합니다(p247). 작품 말미에 이르러서야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기억"이, "이무기가 돌아올 때까지" 바라보아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