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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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에서도 수학한 후 도미니크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신 김인중 신부님의 그림과, 일생을 두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탐구해 오신 조계종 사회부장(前) 원경 스님의 시, 산문이 함께했습니다. 하드커버 올컬러 백상지 책이라서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좀 화려한 외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와 불교는 그 사제직을 맡은 분들이 평생토록 비구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닮은 데가 있습니다. 순결을 지키며 오로지 영혼의 부름과 질문에만 반응하시는 분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청정한 경지라는 게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충청남도 청양군 역촌리에 소재의 빛섬아트갤러리는 김인중 신부님이 작년(2022)에 개관한 문화시설입니다. 올해 83세이시며 그의 작품은 높은 예술적 완성도와 심오한 종교적 깊이로 인해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통일과 조화, 사랑과 진리를 논하십니다. 러시아 대문호의 저 명언은, "인간은 구제불능"이라는 안타까운 현실 진단을 전제로 삼습니다. 구제불능으로 타락하고 시도때도 없이 물어뜯고 싸우는 인간 사회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게 마지막으로 버티게 해 주는 든든한 방어막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 앞에서 어떤 악당도 그 추함을 일단 멈춥니다. 

우현장주(雨絃長奏),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 不亦悅乎). 원경 스님이 빛섬아트갤러리에서 김 신부님을 처음 뵈었을 때 그 감회란 한편으로 존경스러움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오래 그리워하던 벗을 만난 기쁨이었습니다. 원경 스님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절창 <승무>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김 신부님에 대해 "'빛' 그 자체였다"고 술회하시는 원경 스님이신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스님의 시에 대해 정리된 독자의 감정이야말로 "승무"의 벅찬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원융담적(圓融湛寂)이란 말씀도 울림이 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엇을 제조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는 것(p44)." 이 말씀과, 김 신부님이 인용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연결해 보십시오. 플라톤은 그의 철학 전(全) 논고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어딘가에 놓고온 이데아의 이상(理想)을 환기했습니다. 완전체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고 비루한 우리들의 현실, 그러나 이상을 망각하고 현실의 척박함에만 지나치게 적응하면 우리네의 삶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짐승의 몸부림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왜 예술가들은 비실용적인 가다듬음, 터치, 색고름에만 집착하는 걸까요? 그런 노력을 통해 낙원과 천국에 한 걸음, 반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괴테도 죽어가면서 "더 많은 빛"을 되뇌었다고는 하지만 원경 스님도 빛이란 단어 하나만을 제목으로 삼고 p72에서 빛과 꽃과 마음결과 기도에 대해 노래합니다. 짧은 시이지만 이 구도자의 마음 속에 얼마나 깨끗하고 신성한 아름다움이 깃들었는지를 우리 속인(俗人)들이 엿볼 수 있습니다. 해동(海東)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일컫는 말이었으며, 하동(p84)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터잡은 고장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초춘(初春)과 심춘(深春)을 노래합니다. 삶이란 삼세(三世)의 공간이라고도 하십니다.  

예전 교과서에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이라는 시가 있었다고 하죠. 우순풍조민안락(雨順風調民安樂)이라는 말을 통해 원경 스님은 무엇이 과연 뭇 땅의 백성이 제 분수를 알고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십니다. 햇차를 마심은, 몸과 마음에 깃든 여러 때와 삿된 상념을 말끔히 씻어냄입니다. "소박함으로 이웃의 곁을 넓혀주고 만족함으로 제 삶의 기쁨을 삼는다(p127)"는 구절을 읽으며, 과연 우리네 삶이 무엇을 바라보고 품어야할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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