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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이 내 곁을 떠났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후,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
한수정 지음 / 설렘(SEOLREM) / 2023년 9월
평점 :
"유족". 유족이란 말은 남겨진 가족이란 뜻입니다. 아직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덜컥 유족이란 말로 규정되다니. 저자는 "믿기지도 익숙해질 수도 없는 말(p24)"이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데 "전래 동화에 소복 입고 나오는 사람만 과부 아니냐"는 말에 빵 터졌다고도 하십니다. 이래서 어른들이 아이들 덕분에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한번 크게 웃을 수 있다고 하는가 봅니다.
"여전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p61)."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면 이를 수용해야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순도 높았기에 좀처럼 그게 잘 안 됩니다. 남편께서 돌아가신 그날도, 직분을 행하려 쓸쓸히 발걸음을 떼시던 모습이 평소와 같았기에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p65)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뜻밖에 자녀분의 재미있는 말 덕분에 등장한 "과부"라는 말이 내내 저자분 마음에 무겁게 다가온 듯합니다. 사시다 보면 남편 없는 설움이 수시로 느껴질 텐데 "나도 모르게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생길 것 같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요즘음 비혼이나, 이혼한 후 혼자 사시는 분들도 무척 많은데 그분들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떤 아픔을 안고 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하물며 사별의 경우는...
학교에서 가족관계증명서에 아빠가 나와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왔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물론 담임선생님이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는 하나, 이런 서류가 왜 필요한 걸까요? 예전에는 호적등본 등으로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걸 지금은 당대 중심으로 새 양식이 마련되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잘 납득이 안 되었는데, 저도 최근에 이 서류를 떼었습니다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엄연히 표시가 되어서입니다.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서류에 나와 계신 걸 보니 뭔가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책의) 미성년자와 (저 같은) 성년자가 다른 것일까요? 아무튼 나이 어린 당사자(와 그 어머니)에게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구태여 겪게 하는 법정절차는 개선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라이어 캐리가 전성기를 지난 후에도 평생 풍족하게 먹고 살게 해 주는 효자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인데 이 캐롤은 해당 가수가 뜨고 난 후에 등장했으므로 생각만큼 역사가 그리 오래된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크리스마스 자체를 상징하는 노래처럼 엄청난 존재감과 인기를 지금까지 누리는데, 저자께서는 이 노래 제목을 들을 때마다 슬퍼진다고 하시네요. 뜻하지 않게 이처럼 어떤 분들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남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북받침에 괴로워할 수도 있으므로 우리가 살면서 조심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내 기분에만 충실한 사람은 참으로 못나고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사별한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걸까" 죽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으면 이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이런 말을 두고도 봉건적 분위기라니 뭐니 하며 비판하는 자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평생 사랑 같은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불쌍한 인간으로부터라야 그런 말이 나올 법합니다. 사람에게는 향상심이라는 게 있다는 저자의 지적 역시 타당합니다. 사람이 그저 현상이나 유지하려는 안일한 본능이 지배적이었다면 우리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동물의 단계에 머물렀을 겁니다.
책 처음에도 나오지만 전 시어머니도 어떤 점에서 참 대단하신 듯합니다. 아들의 불행한 사실을 냉정하게 전하시고, 장례식 후에도 기일은 물론 생일에도 빠짐없이 아드님을 찾으신다는 게... 저자는 생일을 가끔 빠지기도 하신다는데 일단 시모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며, 역으로 슬픔이 너무도 큰 까닭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녀 간에 잠시 타올랐다가 감정이 식거나 한편의 부정(不貞) 때문에 냉정하게 헤어지기도 하는 게 요즘의 세태입니다. 물론 부부를 이어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더 안 잊히고 석별의 정이 절절해지기도 하겠으나, 제3자 입장에서 여튼 남녀가 사랑을 한다면 이 정도 순도가 있어야 그게 사랑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사별을 한 분들은 물론, 오히려 지금 한창 뜨겁게 사랑하는 젊은 커플들이 읽어 보면 더욱 유익할 책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