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욕망의 늪
안원근 지음 / 문이당 / 2023년 8월
평점 :
한 시대의 아픔과 질곡, 모순이란, 그 피해를 직접 당한 개인뿐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나아가 그 끔찍한 사연을 전해 들은 후속 세대에까지 트라우마를 안기게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비록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논픽션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생생하고 치열한 증언, 고백, 묘사를 담았습니다.
짜식이는 제 이름도 그 음소가 그런 구성이지만, 된소리만 잘 발음하고 예사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째끼들 찌원하고 깨운 히뻐리것다." 이건 아마도 번역하자면 "새o들, 시원하고 개운해버리겠다."겠죠? 동네 아이들, 이 대목에 나오는 것처럼 시골 아이들은 유독 여름에 아랫도리까지 벗고 나다니는 걸 좋좋아하데, 또래 여자애들이 보는 걸 즐기는 심리도 있고 자갈 등과 접촉할 때 느껴지는 묘한 감촉의 쾌감도 있다고 소설에 서술됩니다. 사실 이 비슷한 서술은 일제강점기 아동문학가인 소파 방정환 선생의 산문에도 나옵니다.
이 소설은 영화 <대부> 2편처럼 여러 시대가 교차되며 등장하는데 저 아이들이 일종의 항일 운동(?)을 벌이는 대목이 p90이하에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무렵 시대 배경은 일제가 진주만 기습을 하고 루스벨트가 대응하여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이 사람들 사이 대화 중에 전해지는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박완주와 이혜경은 이 와중에도 친일부역배들의 악질 행각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웁니다.
채만식의 <탁류>에 보면 요즘말로 선물(future) 거래에 가까운 투기적 거래가 등장하는 등, 친일파의 본능적인 이익 추구 욕구는 반민족적인 체제가 동포들을 착취하는 풍조 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합니다. p50을 보면 정교술이 이런 패륜적 시스템 하에서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가 잘 나옵니다.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장제수는 엄연히 이철문이 남편으로 있는 지순례에게 추행을 하고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여기서 소설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노비제가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해도, 사실상 소작농과 구분이 안 되는 외거노비가 일제 말엽인 1940년대에도 여전히 한반도에 잔존했고, 일제의 근대화 선전이 얼마나 허명에 불과했는지까지 알려 줍니다. (장제수는 조금 뒤에 처단당하는 장면이 나오니 너무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p74를 보면 독재정권 하에서 여대생(이 소설에서는 영자)가 불법 시위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와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끔찍한 취조를 당했는지 생생한 묘사가 나오네요.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였겠으나 가장 잘 알려진 케이스는 권인숙양(보통은 그냥 권양이라고 불렀음) 부천서 성고문 사건인데 심지어 월간조선 1987년 8월호 같은 매체를 봐도 그 참상(과 이 사건이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졌는지의 과정)이 아주 자세히 적혔습니다. 이런 야만의 시대를 살아 왔다는 게... 참고로 권인숙씨는 교수를 거쳐 현 국회의원입니다.
권력을 통해 취약한 소작인의 아내에게 은밀한 타진을 하여 성착취를 시도하는 아주 못된 작태는 아마 식민시절, 또 조선 후대를 통틀어 아주 자주 벌어졌으리라 짐작되죠, 한영주가 임실댁을 괴롭히며 끝내 죽음에 내모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과 가족이라는 건 사회의 가장 근간이 되는 시스템이며 임금도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인륜의 토대입니다. 이게 흔들리고 욕보인다는 건, 이미 국가 체제가 존립할 근거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그러했으며, 소설에서 교차 등장하는 군사 독재 체제가 그러했습니다. 권력의 썩은 마각은 성(性)을 통해 기층 민중의 가장 약한 부분을 침투해 오는 것입니다.
"개인이 갖추고 누려야 할 인권이니 인격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사치에 불과했으며 억압과 착취를 통해 인간의 존재성을 망각시키고 있었다.(p236 일부 문장 변형 인용)" 이런 악질의 사기꾼들, 독재자들은 21세에도 엄존하며 그 진영의 좌우를 가리지도 않고 어디서건 출몰합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하여 압제와 사취, 뻔하고 상투적인 수작에 저항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