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평점 :
심해(深海), 즉 깊은 바다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어떤 생물이 그 깊은 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사는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문학가 괴테는 죽기 직전 "더 많은 빛을(Mehr Licht)!"이라 외쳤다는데, 그저 캄캄할 것만 같은 깊은 바다에도 스스로 빛을 내뿜는 해양생물들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데서 학자들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빛은 질서이며, 어둠은 혼돈이다(p33)." 우리 생명체의 아득한 기원이기도 한 바다에 대해,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한다 해도 책을 통해서나마 이렇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비단 해양생태계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 학자들이 특히 곤란을 겪는 이유는 각 생물들이 고립되어 살지 않고,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의존하기에, 몇 마리만 골라 실험실에 고립시켜 놓고 연구하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조합(combination)으로 단순 계산해 봐도, 고려에 넣어야 할 모든 종의 수와, 그 중 초점을 맞춰 연구해야 할 종의 수가 각각 하나씩만 늘어나도 경우의 수는 크게 증가합니다. 고립이 아닌 상호의존과 협력이, 생태계 작동의 본질이라는 점 다시 확인하게도 됩니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기로 선택하는가에 따라, 우리 존재의 모습이 결정된다(p44)." 외계에 대한 인식의 뱡향과 기준을 우리가 정하면, 그에 따라 우리도 비로소 결정이 된다는 뜻인데, 인식(perception)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절대적 실재가 있고 그에 따라 우리가 생각, 행동한다는 우리의 믿음과는 배치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이고 생각할 뿐입니다. "동물의 시각적 신호가 어떠한지 알려면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한다. 즉 그들이 사는 세상을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p79)" 인간이 지독하게 우리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탈피할 줄 알아야 동물과 자연에 대해서도 비로소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특정 깊이의 바다에 특정 파장의 빛만 잡히겠거니 짐작했는데 전혀 예상 못한 빛이 감지되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p131). 생명체가 스스로 발하는 빛은 그 생명체가 살아 있으면서 열심히 대사 활동을 한다는 뜻도 되고,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피식자들이 떼를 지어 방어 활동 중이라는 뜻도 됩니다. 영어 격언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도 생각납니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개체의 노력에서는 어떤 비장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집니다.
올해 6월 타이타닉 잠수정 참사처럼, 바다에서는 일정 깊이 이상으로만 들어갔다 하면 반드시 안전 문제를 신경써야 합니다. 이 책 전반부에서 거진 주인공 위치인 와스프 호의 역할이라는 게 자주 부각되었는데, 과학자는 이처럼 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 외에도 장비 조작 기술을 필수로 숙지해야 함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팀에는 이에 능숙한 전문가, 기술자가 합류합니다만 과학자 역시 자기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반드시 정해져야만 전체 프로젝트가 지체 없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p226에서는 앨빈 호도 잠시 언급됩니다.
"안전줄에 의존하지 않고, 칵테일 셰이커처럼 요동치지 않아(p131)" 인간 없이 해양생명체 자신들끼리만 있을 때 어느 정도의 발광(發光)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새로운 장비인 딥 로버를 채택하였을 때 자자 에디스 위더 박사님을 비롯 팀원들 전체가 설레는 마음이었겠음은 책을 통해서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저 뒤 p199에 보면 007처럼 스케일 큰 대작 영화에 기여했던 기술진이 이 과학 연구에도 힘을 보태는 과정이 서술되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p154에도 나오듯 사실 인류는 우리가 짐작한 것보다 고대 이래 훨씬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도 현대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저 예전에 저런 공작이나 축조가 가능했었는지 모르는 이른바 ooparts라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죠. 저자는 이누이트 족이 눈[雪]을 읽을 줄 알았고, 고대 항해인들은 그들만의 신성한 항해술 비법을 알았으나 직업상, 혹은 종교적 이유로 후대에까지 전승이 안 된 점을 무척 안타까워합니다. 태평양 그 먼 곳 한복판까지 사람이 건너가 사는 걸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책 7장에서는 이 놀라운 신비에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데, 미 해군 기밀 프로젝트에까지 화제가 연결되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바는, 과학에서 영원한 진실은 없다는 것입니다(p198). 한 시대에 철석같이 진실이라 믿고 있던 내용도 다른 반증이 발견되어 뒤집어지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처럼 혁명적인 두뇌가 나타나 패러다임 자체를 뒤집어 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는 비판에 오픈되어야 하고,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이론에 포섭되어야 할 진실인지 세밀하게 섬세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심해에서 특정 발광 현상이 감지되고 안 되고는 그저 해양생물의 생태에 대한 기술적 연구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p285를 보면 중성미자(neutrino) 탐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심해 생활에 독특하게 적응한" 세균들이 입자 부착 상태로 발하는 빛에서 이 특이현상의 효과적인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곧, 첨단 물리학의 성과로까지 이어진다는 뜻) . 데드폴, 웨일 폴 같은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에서도 과학자들은 새로운 성과를 칮으려 두 눈을 부릅뜹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훔볼트오징어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동물의 이름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기려 지어졌는데, 그는 19세기의 만능 과학자이자 탐사가였고, 저도 책좋사 이벤트에서 2014년에 그의 저서를 당첨 받아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적 호기심(p16)으로 가득하고 앎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과학자들, 용감한 모험가들에 의해 더 살 만한 곳으로 나날이 바뀌는 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도중에 어떤 시련(p40)이 끼어들더라도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