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재발견 - 기쁨이 있는 곳을 찾아라
한승욱 지음 / 슬로우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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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한승욱 아워홈 상무님은 참 풍요로운 인생을 사신 분 같습니다. 연구원, 전문가, 대기업 임직원으로 평생을 보낸 분으로서 매 순간 몸담은 직위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신 분이며, 그 와증에도 인문과 고전에 관심을 갖고 구본형 선생 8기를 거친 후 이처럼 멋진 책 한도 저술하시기에 이릅니다. 책 추천사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는데 인생의 한 보람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구본형 선생 타계가 벌써 10주년을 맞았으며(p31), 저도 구 소장님을 기리는 책 한 권을 읽고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구본형 스승(책의 표현입니다)께서 생전에 "나의 장례식"을 주제로 삼아 수업을 진행했던 추억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나"라 함은 물론 수업에 참여하는 수강자 입장에서 가상으로 망인이 되어 보는 걸 가리킵니다. 이 수업에서 저자는 매사에 엄격하셨던 부친, 그리고 버스 사고로 사망한 어느 청년까지, 자신이 화해하고 싶었던 모든 이들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사람들과 불화했으며, 어떤 감정적 앙금을 아직까지 갖고 있을까요? 또 그것을 해소할 마음은 준비가 되었을까요? 

살다 보면 거친 사람들과 마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중에는 나쁜 환경에 시달리다 영 인성이 망가진 사람도 있고, 겉은 세련되지 못했지만 속에는 인간다움을 여전히 지켜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p44를 보면 저자가 전북 장수 폐수처리장 현장에 파견되었을 때 겪은 이런저런 일들이 회고됩니다. 몽키가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해 사람들이 웃었다고 하는데 몽키라고만 하면 모를 수 있어도 몽키스패너라고 하면 다들 알죠. 아무리 현장 경험이 없어도 말입니다. 해당 분야에 첫 발을 디딘 초심자에 대한 배려가 아쉬우며, 그 와중에도 무리 없이 전체 분위기에 잘 적응해 들어간 저자의 적응성, 사회성, 유연성이 돋보입니다. 

책 앞날개에도 원자력발전소에서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낼 때 외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아이들의 언어"로 소통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외국인들과 함께 약간은 서투른 영어로 소통을 이뤘다는 뜻이겠으며, p142에 보면 그때로부터 한참이 지나 이커머스 기업에 재직 시 동갑인 멕시코 직원분과 교분을 나누신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장의 힘"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으며, 아무래도 아이 둘을 키운다는 데서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었다고도 하시네요. 챗 지피티의 시대에, 사람과 기계를 근본에서부터 구별짓는 한 기준은 "공감 능력"이겠다는 결론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사람 목숨이 질기다고는 하지만 약하디약한 게 생명체의 육신입니다. 현대 사회는 그전에 상상치도 못하던 엄청난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 장비들이 많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중상해는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그 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를 거치고도 출근, 귀가를 무사히 끝내고 집에 돌아와 안식을 취하는 것도 얼마나 큰 행운이 보살핀 결과인지 모릅니다. p64 이하에 나오는 교통 사고 이야기를 보십시오. 저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더 큰 인명 사고를 막아낸 영웅 노릇을 한 것입니다. 이런 노고에도, 생각 짧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고마움을 느낄 줄을 모릅니다. 공감 능력 없는 이런 미성숙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에 필요한 연대의식, 시민정신의 발휘가 줄어들고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팽배해집니다. 

회사에서 불만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무척 힘듭니다. 아마, 한국에서 가장 힘든 직종이 악성 민원을 응대하는 일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런 일을 하시면서도, 2차 대전 당시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순간에 손가락으로 나비를 그린 소녀(p91)를 떠올리며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앞에도 나오듯, 아내분의 정성어린 내조가 역시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저자께는 큰 스승이신 구본형 소장님이 있고, 고3때 정말 힘든 시절 힘을 불어넣어 주신 선생님이 또 계신데 이분이 가르쳐 준 콩나물국이 소울 푸드 구실을 해 준다고 하십니다. 그 재미있는 일화가 p154 이하에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책을 직접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누구라도, 힘들 때마다 다시 힘을 솟게 해 주는 "콩나물국"이 필요합니다. 

영혼이 맑은 사람들에게는 그와 비슷한 심성을 지닌 착한 사람들이 또 우연과 필연처럼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p185 이하를 보면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은 미군과 잠시 비행기 안에서 대화를 나눈 에피소드가 마옵니다. 사람은 그저, 이 순간 특별히 몸 아픈 데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는 삶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마땅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받은 교훈은 그것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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