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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컨스피러시 ㅣ 옥성호의 빅퀘스천
옥성호 지음 / 파람북 / 2023년 7월
평점 :
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이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을 배신했고 배신자의 더러운 이름은 2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지탄을 받으며 이어져옵니다. 역사상 가롯 유다 만큼 치욕스럽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널리 회자되는 이름도 다시 없을 듯합니다. 더군다나 유다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이며(애초에 주로 유다 지파 사람들의 후예가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신약 유다 서의 저자 타대우스도 있고, 구약(외경) 민족 영웅 유다 마카베이오스도 있으니 이 아이러니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저자 옥성호 대표께서는 고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2호선 서초역) 설립자분의 아드님입니다. 전작도 여러 권이 있는데 이번 이 책은 예수를 배신한 배덕 제자, 타락한 사도 유다에 대해 집중조명하고, 결국은 유다에 의해 감행된 엄청난 배신 역시 사전에 정해진 신의 거대한 계획의 일환이며, 어쩌면 유다는 십자가로 환유되는 엄청난 구원 사업에 있어 하나의 의도된 도구가 아니었던가 하는 게 그 골자로 읽힙니다.
저자는 p48에서 도올 김용옥을 인용합니다. 그는 "지난 2000년 동안 자행한 만행을 지켜볼 때 기독교야말로 인류에게 재앙이었다."는 도올의 말에 찬성하며, 기독교가 살기 위해 그 희생양으로 지목하여 박해한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는 큰 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합니다. 어쩌면 가롯 유다야말로, 유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음모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p70에서 저자는 김기현 목사의 <가롯 유다 딜레마>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그는 우리가 현재의 형통함에 우쭐할 게 아무것도 없고, 언제라도 유다나 베드로처럼 예수를 팔아넘길 수 있다고 통렬히 자성합니다. 유다의 쉬운 길을 걷지 말고 착한 마리아처럼 순종하라는 말도 합니다. 제 뜻대로 큰길을 활보하며 침을 뱉고 날뛰는 건 쉬워도, 이유를 묻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순종하는 좁디좁은 길을 걷는 건 어렵습니다.
사실 말로만 성도를 자칭할 뿐, 이른바 믿는다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얼마나 자주, 대담하게, 뻔뻔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예수의 가르침을 배신합니까? 위선자의 눈물을 흘리며 예배당에서 아멘만 외친다고 헌금만 낸다고 그 더러운 행실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성도의 탈을 뒤집어쓴 죄인들이 악착같이 십자가 근처에 달려들어 예수의 손발에 못질을 하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게 현실 아닙니까? 이런 인간들은 유다를 넘어 아예 사탄의 자식새끼들이 아니겠습니까?
저자는 예수가 십자가형이라는, 인간의 가냘픈 몸으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거쳐 인간, 이 죄많은 인간의 구원 사업을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탄은 그만큼이나 간사하고 교활합니다. 유다는 그때 절묘하게 끼어들어 예수의 십자가형을 돕습니다. 그는 만찬 자리에서 스승에게 죽음의 키스를 퍼붓고 새로운 믿음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 누구인지를 가리킵니다. 저자는 사탄이 이때 적잖게 당황했다고 보는데, 느닷없는 배신과 당국에의 밀고라는 상황 발생으로 예수는 정해진 행로에서 이제 이탈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p92에서 저자는 토머스 페인을 인용합니다. "유다와 본시오 빌라도는 성인으로 추대되어야 마땅한데, 기독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상식에 반한다." 물론 비꼬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하나의 역설을 지적합니다. 토머스 페인은 물론 책 각주에서도 알려 주듯이 민주주의의 기폭제가 되었던 그 명저를 쓴 바로 그 사상가입니다. 여튼 현재의 기독교와 상식 사이의 괴리가 있다는 게 저자의 소결론입니다.
p146에서 저자는 복음사가 마태의 의도를 분석합니다. 마태는 유다의 동기가 돈 욕심이 아니었다는 쪽으로 암시한다고 추론하며, 저자는 이를 통해 유다의 동기가 다른 곳에 있었으며, "역사적 예수"의 논의처럼 이제는 "역사적 유다"도 재구성할 때가 되었다고 제언합니다. p180에서 저자는 복음사가 누가의 심중에까지 들어갑니다. 사실 누가는 시기적으로 더 후대의 인물이니 말입니다. 예수를 죽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유대인 군중의 모습이 모순적이며, 특히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유다가 성찬식에 참여했다는 게 이만저만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복음서의 융성과 승리를 위해, 과도하게 폄하, 왜곡된 유다를 이제 복권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독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네이버 북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