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평전 - 음악, 사랑, 자유에 바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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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려 7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평전입니다. 모차르트는 서양  고전음악 그 기본적인 틀을 완성하다시피한 사람이며, 그가 남긴 불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습니다. 핸드폰 벨소리에서부터 산모들을 위한 태교 음악에까지, 그의 작품에 담긴 명쾌하고 조화로우며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아름다운 구조는 그저 휘파람이나 콧노래로 흥얼거려도 신이 날 뿐 아니라 통속극에서 고전 정극에 이르기까지 어느 상황의 배경음악으로 써도 잘 어울립니다. 가히 마법의 멜로디라 부를 만하며, 이런 작품을 남긴 사람을 천재라 부르지 않는다면 과연 그 호칭에 값할 이가 누구일지 의문이 들어 마땅합니다. 

천재는 대개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특히 모차르트 같은 음악의 천재는 연주나 작곡 실력으로 타인을 즐겁게 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어린 볼프강은 잘츠부르크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p60을 보면 악단원들의 관심과 애정을 한몸에 모으며 성장했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의식이 일찍 형성되고, (헤겔이 지적한 대로) 어떤 군주의 기상 같은 게 있기에, 어린이들이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경향도 있죠. 이를 두고 책에서는 Königreich Rück, 진정한 왕국이라고 불렀다고 나옵니다. 아마 Rücken, 즉 등이나 등뼈라는 뜻이겠습니다. 책에서는 누나인 난네를, 엄마인 안나 마리아에 대해서도 짚고 갑니다. 모차르트의 팬들애게는 이런 포인트들이, 다른 책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는 사항을 알려 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각주에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에 대해 평가한 대목이 있어 흥미를 끕니다. 저자께서는 일단 이 평가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두 작곡가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적 간격이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일단 지극히 타당한 말씀이라 생각하며 작가님의 견해에 찬성하고, 단 괴테는 아마 그 나름대로 자신의 진심을 말했을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서양 고전음악의 초석(형식미)을 다진 사람이니 자신의 감정을 음악에 담는 데에는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면 세월이 흘러 멘델스존의 시대에는 곡에 사람의 절절한 감정이 실리는 기교가 절정에 달했고 순전히 이 관점에서라면 모차르트의 솜씨가 마치 기술만 알고 인생사의 비의를 모르는 똘똘한 어린이의 현란한 유치한 과시행위로 읽힐 여지가 있죠.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뛰어난데, 다만 모차르트의 앞선 수고가 아니었다면 멘델스존의 어깨에 과부하가 실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역시 기교를 위한 기교에는 찬성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우리들도 그저 장식음만 가득한 그시절 음악은 피곤해져서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가수나 작곡가나 "너 이거 할 수 있어?"라는 듯 현란한 기교만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만 그렇게만 일관하면 대중이 외면하죠. 나폴리 왕 페르디난도 4세 영명축일에서 타 작곡가의 작품에 대해 모차르트가 내뱉은 코멘트도 그런 취지입니다. 비평가들에게 그토록 악의 어린 질시를 받았던 모차르트가,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이 평전의 재미입니다. 

우리는 보통 간과하지만 누나 난네를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었으며 다만 여자였기에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한받았을 뿐입니다. 이때(1774년. 볼프강은 18세) 그녀의 나이 24세 절정의 젊음을 과시할 때였다고 책에 나오며 동시에 그 부친 레오폴트도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평전은 이처럼 연대순으로 자세히 천재 가족의 행적을 짚으며 독자들은 모차르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보다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엄마인 안나 마리아는 아들의 매니저 노릇을 하기엔 여러 모로 부족했었으며 이래서 부친 레오폴드의 엄격하고 치밀한 성격이 더 돋보이기도 합니다. 음악적으로나 경영 능력에서나 탁월한 점이 많은 인물이었고 베토벤의 부친 같은 사람은 이분을 어설피 따라한 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1780년이면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국 같으면 정조대왕의 재위 기간이었습니다. 이때 24세였던 모차르트는 징슈필 <차이데>를 작곡하는데 나중에 K.344로 정리되는 그 작품이죠. 징슈필이 뭔지 모를 독자를 위해 책에서는 친절히 역주를 달아 설명도 해 줍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이 작품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고 저자는 이 작에 대해 모차르트 가족 전체를 은유했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또 이 대목에서 우리는 K.384 <후궁 탈출>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었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황가 요제프 2세 앞에서 클레멘티와의 피아노 대결이 벌어진 건 1년 후인 1781년이었습니다. 아마 밀로스 포먼의 영화(1984)나 피터 셰퍼의 원작 뮤지컬에 나오는 살리에리와의 대결은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이었겠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실제 모차르트는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하는데 영화에서는 상대가 즉석에서 지어낸 어떤 곡을 역시 즉석에서 개량하여 터키 행진곡을 만들어내는 걸로 묘사되어 살리에리에게 절망감을 선사하죠. 물론 픽션입니다. 

또 여기서 황제는 겉으로 무승부를 선언하나 모차르트가 기술과 취향 모두를 갖추었다며 음악가 폰 디터스도르프와 함께 모차르트의 우월함을 인정합니다. 이 역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못 알아 보고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만 했다던 영화에서의 황제와 큰 차이가 나죠. 황제는 어려서부터 폭 넓은 교양을 섭취하고 자라나므로 모차르트 같은 천재를 바로 못 알아봤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또 "왜 훌륭한 가문의 처자와 결혼하지 않는가?"라 묻는 황제에게 모차르트가 바로 "저는 제가 정직하게 사랑하는 여인을 부양할 만큼 충분히 벌고 있습니다."라고 대번에 응수한 일화는, 천재 작곡가의 인격이라든가 빈틈없는 자부심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그저 모차르트의 열렬한 워너비로만 보통 인식되지만 이 책에서는 실제로 베토벤이 모차르트에 대해 어떤 평을 했는지 정확히 인용됩니다. 모차르트의 연주를 직접 듣고 "다소 구식"이라 코멘트했다고 나오는데, 고전음악이나 그 연주 방식은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784. 4.1 모차르트는 부르크테아터에서 콘서트를 여는데 기량으로나 인기로나 이때가 전성기였지 싶고 K.452에 대한 멋진 평가도 나옵니다. 독자인 저도 제일 좋아하는 곡입니다. 부친은 이무렵부터 계속 아프다가 1787년에 드디어 사거(死去)합니다. 

p566을 보면, K.550에 대해 슈만, 슈베르트 등 후배 음악가들이 어떻게 평했는지 잘 정리되었으며 또다른 모차르트 평전을 쓴 고바야시 히데오의 평가까지 망라됩니다. 또 이 대목뿐 아니라 책 곳곳에서 모차르트의 다양한 작품들에 대해 저자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평이 있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감상력의 증진을 촉진합니다. 1791년 아직 강대국의 위상을 유지하던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는 일단 평화를 유지했으나 정작 빈은 이때로부터 몇 년 후에 엉뚱한 데서 존립 자체에 위태로움을 겪게 되죠. 모차르트는 이무렵 다시 살리에리와 경쟁하나 이미 궁중 내 출세 경쟁에서 패배한 시점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p648을 보면 프란츠 자버가 출생했다고 나오는데 아버지보다야 훨씬 못하지만 이분도 후세에 이름을 남긴 음악가입니다. 프리메이슨(세력)과 황제 간의 미묘한 관계도 이 책 후반부 곳곳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마술피리>도 이 관점에서라면 좀 다른 해석도 가능하며 저자는 매우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p671에 <마술피리>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분석도 독자에게 매우 유익한 읽을거리입니다. 

모차르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므로 독살설 등 여러 추측이 당대에나 근세에나 난무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점들까지도 촘촘히 커버했으며 독자는 작품이면 작품, 작곡가의 생애면 생애, 뭐 하나 소홀히할 데가 없을 만큼 풍성하게 모차르트의 세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평전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며 참고문헌소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내 저자님 솜씨라서 독자로서 더욱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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