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이부치 -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최덕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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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인류사에 다시는 있어서 안 될 수치스러운 참극입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뚜이부치"는 중국어로 미안하다는 뜻인데 한자로 對不起(대불기)라고 쓰죠.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도 가해자가 그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피해자의 마음이 눈 녹듯이 풀어지기도 하는 게 인간사인데, 일본은 여전히 사과를 진지하게 하지 않고 있으며 난장대학살에 대해서는 역사적 실재를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만화 형식인데 전 작품이 흑백 톤이며 피 같은 걸 묘사할 때만 붉은색이 쓰입니다. 이 기법 채택의 깊은 의도에 대해서는 우리 독자들이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작가님은 1998년 처음으로 아이리스 장(현재는 고인이 되었습니다)의 책을 읽었고, 2005년에는 MBC의 다큐를 시청한 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권말에 보면 작가님이 참조한 많은 다른 책들이나 컨텐츠의 목록이 나옵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인 아즈마 시로 씨는 2006년에 타계하였으며 1912년생입니다. 1937년 그는 겨우 20대 중반의 청년 장교였습니다. 어느 나라이건 국가에서 무장을 시켜 주고 제도상의 폭력을 대신 행사할 권한이 부여된 군인에게는 명예라는 게 있습니다. 총과 칼을 들었다고 마음대로 사람을 살상하면 이는 전쟁범죄이며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자국군이라도 엄격히 처벌합니다. 일본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오래된 무인의 도리라는 게 있으며 어느 무사도 칼이라든가 그 소지한 무기를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즈마 시로 씨도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장교로서 군 복무를 했지만 비무장 민간인을 대거 학살하는 만행을, 군대 상층부(나아가 국가)의 명령에 의해 자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p102를 보면 이른바 위안소라는 곳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아즈마 소위는 당연히 국가에서 제공한 이런 시설에 정당한 절차를 거쳐(당시 기준) 자발적으로 참여한 여인이겠거니 생각했었으나 이 사람은 조선 출신이었으며 행색이나 분위기를 보아 강제로 끌려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중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이런 식으로 욕구를 풀 생각은 없었고 말이나 잠시 나누다가 나갈 생각이었던 아즈마 소위는 상황이 파악되자 대경실색합니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은 청년의 양심으로, 이런 처참한 비극에 동참하여 같이 전쟁 범죄를 저지른다는 게 과연 용납이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천황의 부대다. 힘 없는 민간인을 해치며 야만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건 군인이 아니라 도적이나 다름없어!(p59)" 아즈마 소대장이 부하들에게 절규합니다. 그러나 그가 도덕과 인륜의 화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덴노 본인부터가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를 묵인, 방조하거나 사실상 지시했음을 알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p42를 보면 일본군의 포고령 일부가 나오는데 이처럼 그들은 눈 앞에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뻔뻔스럽게 항복 군인과 민간인을 국제법에 따라 보호하겠다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은 것입니다. 전쟁 포로는 일본군에 의해 (중국군이건 미군이건 영국군이건) 끔찍한 학대를 받았으며 이 사실은 국제 전범 재판정에서 샅샅이 드러났습니다. 

아즈마 시로 중위는 위안부를 통해 성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통행증을 얻어 마치 유럽의 쉰들러처럼, 혹은 남북 전쟁 당시의 리바이 코핀이나 해리엇 터브먼처럼 이 조선인 처녀를 탈출시킬 마음을 먹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인간의 양심은 작동하는 것입니다. 국제안전구역에 도달하기 위해 양쯔강을 건너는데 사람의 시신이 강 표면에 가득합니다.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의 결과입니다. 11장 "나무토막"에서 일본군은 병사들에게 누가 더 많은 중국인을 학살하는지 경쟁을 시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중국으로의 "두번째 방문"을 하게 되는 아즈마 노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몸부림치다가 코피를 기내에서 흘립니다. 일행 중 어느 노인이 여승무원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추태를 부리는 장면이 잠시 나오는데 짧은 삽화이긴 하나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여튼 우리가 아는 대로, 아즈마 노인은 50년만에 중국어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합니다. 그는 사실 사과를 할 필요도 없던, 극히 드문 양심적인 군인이었으나, 사과를 정작 해야 할 죄인들이 반성하지 않은 탓에 엉뚱한 사람이 일생을 두고 괴로워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 비극은 9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마무리가 되지 않은 채 추악한 공방이 이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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