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홍선기 지음 / 모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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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열풍이라는 게 한국에서도 21세기 초에 불었었습니다. 지금(2023.7~8월) 한국 증시 시총 65위쯤인 엔씨소프트도 벤처로 시작했고 김택진 회장은 그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케이시도 20대의 젊은 나이에 1조원에 가까운 부를 일궜고(참고로 엔씨소프트가 6조원대), 여러 조건과 스펙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걱정과 근심이 있을까 싶지만 세상사가 또 그렇게만 흐르지는 않나 봅니다.    

이 소설은 챕터마다 1인칭 화자가 케이시, 가즈키 등으로 바뀝니다. 하츠네와 유메(키 큰 모델. p212)도 간간이 등장하기 때문에 교체보다는 순환에 가깝겠습니다. 요즘은 데이팅 어플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젊은 남녀들이 자신에게 맞는 이성을 만나기 더욱 쉬운 세상이 되었는데, 다만 그럴수록 상대의 외적인 면, 겉모습에만 치중하게 되어 진중한 교제라는 게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하츠네는 가즈키가 이런 어플을 통해 알게 된 여성입니다.    

p52 이하에 나오듯 케이시나 심지어 제임스도, 가즈키가 어플로 여자를 만난다니까 말리거나, 좋지 않은 반응을 보입니다. 특히 케이시가 아주 부정적으로 나오는데 다소 극단적인 평가를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말로만 저럴 게 아니라, 제임스처럼 대안을 마련해 준 후에 뭐라고 비판을 해도 해야 합니다. 제임스가 소개해 주려 했던 여성은 게다가 알파걸이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간혹가다가 여자 소개해 준다고 선심 쓰면서 아주 무성의하게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녀석은 친구가 아니라 내 인생을 망치려 드는 적이므로 바로 손절을 쳐야 합니다. 

p56을 보면 하츠네는 진실해 보이는 여성인데다 가즈키의 마음도 잘 읽는 등 뭔가 통하는 면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플에서 원 이런 상대를 만나다니 가즈키는 운이 참 좋습니다. 어플은 대체로 이런 결과가 안 나오는데 말입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자꾸 자격지심이라는 단어를 혼자 떠올리는 걸 보면,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가즈키는 정말로 마음 한 구석에 자격지심 비슷한 게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면이 공허한 케이시는 그렇게 비판을 해 대더니 기어이 자기가 어플을 깔고, 헐벗은 여자들보다는 기모노 차림의 조신한(여기가 교토라는 점 유념해야겠네요) 여성들 중심으로 물색합니다. 발정난 고양이, 쫓겨난 푸들 운운한 사람이 누구였던지를 생각하면... 그런데 뭐 일관성은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바로 그런 상태임을 인정하고(...) 상대도 그 코스를 밟을 사람을 상정하며(그런데도 순수해야 한다고 함) 시나리오를 짜니 말입니다. 적어도 위선자는 아닙니다(이건 독자인 제 생각이고, 저 뒤 p280에선 ooo가 케이시더러 위선자라고 막말을 하는 장면 있네요). p201을 보면 "일부러 비뚤어지려고 작정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딸들은 크면 다 자유롭게 자기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성인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이 뭐라고 하셔도 말입니다. 부모님은 료타를 마음에 두지만 그는 하츠네가 남자로 진지하게 여기는 상대가 아닙니다. 료타도 하츠네를 그닥 좋아하지 않거나, 최소한 하츠네의 마음을 캐치하고 알아서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p250에서 결국 하츠네는 ooo로부터 고백을 받습니다. 홋카이도 오타루로 가서 장인장모(예비) 두 분을 만나는 ooo. 역시 두 분은 딸 편이라서 흔쾌히 승낙을 하십니다. 

앞에서 어플로 기어이 "교토 사쿠라(도쿄 로즈가 생각나네요ㅋ)"를 만난 케이시는... 어휴 이럴 것 같으면 뭐하러 어플을 깐 건지. 솔직히, 실물을 눈 앞에 보면서 사진은 뭐하러 같이 봐 주고 감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대가 그린라이트를 보냈으면, 뭐 아무거나 입혀 보고 실물을 세팅하여 마음껏 감탄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이런 서투른 사람한테 일일이 맞춰 주는 히토미상도 대단합니다. 일단은요. 사실 저는 좋지 않은 부류(이를테면 p361에 언급되는 그런 사람)를 떠올렸는데 그건 아니었고, 알고 보니 사연이 있는 여성이긴 했습니다. 케이시는 그 나름 정의감까지 발휘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데 이런 걸 보면 역시 돈이 좋긴 하네요.  

p338을 보면 케이시는 원래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 문제가 있나 봅니다(라기보다 무기력증, 특유의 건성주의 때문이겠지만). 자기 회사 모델이었던 ooo도 처음에 기억을 못한 채 만남을 시작하다가 기어이 관계가 쫑났는데, 료코(=레이첼)와도 또 이런 식으로 시작입니다. 죽은 동생하고도 안 닮았는데 자기 혼자 우기는 거죠. 이렇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데도 워낙 지갑이 두툼하니 여자들이 알아서 또 맞춰 줄 것입니다. 그럼요. 

그리스 신화에서 큐피드는 사이키(프쉬케)에게 말합니다. "의심이 있는 곳에 사랑이 깃들 수 없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의심을 하는 쪽은 케이시이니 성별역전이지만 갑을관계는 남자 우세이므로 그대로입니다. ooo도 어지간한 게 무려 십억엔(이라고 해도 케이시 전재산의 1%)을 단칼에 거절하는... 

네 커플(?)의 티격태격 사랑이 재미있었으나 마지막에 ooo가 죽는 비극 엔딩이라서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장에서도 케이시가 1인칭 화자인데 왜 제목이 저런지 그 깊은 뜻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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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5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빙혈 2023-08-08 21: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서두가 벤처기업 이야기라서 그리 생각하신 듯합니다. 주인공 케이시가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번 벤처기업가라서 그 이야기로 시작을 꺼냈구요. 다음 문단부터는 모두, 페이지까지 명기해 가면서 이 소설 줄거리에 대한 제 느낌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