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군주론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9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용준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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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잘 일깨우고, 험한 세상에서 어찌보면 지혜롭게 살아남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물론 연대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공동체 안에서, 마키아벨리식 책략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일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지탄 받고 단죄되어야 마땅합니다. 공자가 만약 천 수백 년 후의 마키아벨리가 쓴 이 책을 읽었다면 별 주저없이 그를 소인배로 낙인 찍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에도 법가, 종횡가 등이 이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주장을 이미 내놓은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그런 결론을 내게 한 중근세 이탈리아 반도 내 도시국가들의 사정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 자료일 뿐 아니라, 아직도 국제관계에는 도덕률과 신사도가 통용된다고 보기 어렵기에, 이 책은 아직도 무시 못 할 묵직한 울림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또 책 뒤표지에 나와 있듯, 수백 년 후 헤겔 같은 이도 "대단히 위대하고 고결한 심정을 갖춘, 참으로 정치적인 두뇌의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고 진실로 가득 찬 착상"이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습니다. 고결한 도덕적 이상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세상이 속임수와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이상 그 본질이라도 철저히 규명해 보자는 그의 이지적인 노력과 총명한 본성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p56에 보면 "군주의 혈통이 갑자기 말살되면 군주제의 전통에 익숙했던 이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새로운 지도자를 쉽사리 세우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도 모른다"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마키아벨리의 시대로부터 6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라고 하겠습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많은 나라들이 독재자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민주정치를 향유할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가들은 갑작스러운 민주주의의 시행에 적응 못 하고, 오히려 포퓰리즘 독재자를 맞아들여 퇴행하는 모습까지 드러냈으며 지금 이 시점까지 그 폐해가 이웃 나라들에까지 미치는 중입니다. 

p61을 보면 "무장한 선지자들은 정복에 성공했고, 무장하지 않은 선지자들은 파멸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영어 번역본들에서는 이 구절의 주어를 전통적으로 (un)armed prophet(s)라 옮기는데, 20세기의 저술가 아이작 도이처는 이 구절에 착안하여, 초기 소련 내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트로츠키를 두고 "무장하지 않은 에언자"라고 그 인생 후기를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대로 이 구절은 당대 민중주의 종교 지도자였던 사보나롤라를 주로 가리키는 의도였습니다. 

p80을 보면 "잔인함"에 대한 논급이 나옵니다. 찬탈자는 자신의 행위가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고, 누구에게 혜택을 주었는지(의도를 했든 아니었든 간에) 면밀히 살피고, 가해행위는 그 행위의 여파가 여러 날 지속되지 않게 단칼에 해치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확실히, 이방원 일파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도 그렇고, 이세민 역시 현무문의 변을 최단 시간 안에 마무리하고 충격을 받았을 민심을 위무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시대보다 앞서 발생했고 십중팔구 그는 이 동아시아의 정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겠지만 이 분석은 그 성공한 찬탈의 사례에 대해 잘 적용됩니다.    

p128을 보면 아마도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일 "사자와 여우" 비유가 나옵니다. 함정을 잘 피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멀리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군주는 백성에 대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는데 인간의 본성은 어차피 사악하므로 상대방 역시 약속을 어차피 어길 게 분명하며, 약속을 어길 때 둘러댈 핑계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개탄스러울 만큼 한심하고 비열한 진술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도 신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군주는 그 자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그 응보를 치렀다는 점 분명히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딴 식의 마인드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가 내내 분열되어 외세에 시달렸고 통일된 후에도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지리멸렬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저 매사를 운명에만 맡기려는 무책임한 군주는 국사가 잘 풀릴 리 없고, 반대로 운명을 제 힘으로 개척하려는 의욕에 충만한 군주는 역경이 닥쳐도 이를 극복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는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있죠. 영어로는 vicissitude라고 부르는 이런 인생사, 세상사의 국면은 사실 개인(군주라고 하더라도)의 힘으로 극복이 안 됩니다. 하지만 불요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가지고 매사에 임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결과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권말에는 <카스트라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가 실렸는데 일종의 평전입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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