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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평점 :
한국인이 특히 사랑하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 신작이라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신작은, 2년 전에 나왔던 그의 두 권짜리 장편 <기억>을 읽고 나서 읽는다면, 특히 사실상 주인공인 역사 교사 르네 등의 지난 행적하고 연결이 되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독자를 친절하게 배려하는 작가님이기 때문에, 이 신작에도 전작 요약이 필요한 만큼은 꼭 들어가므로 구태여 그 작품을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소르본 대학의 극우 학생들(p49)" 이 구절을 읽으니 몇 달 전 읽고 리뷰한 <베르베르 씨, 오늘은...>이 생각났습니다. 그 책에서 베르베르는 자신의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같은 또래 청년들이 격렬하게 시대의 모순을 고민했던 국면을 독자에게 묘사합니다. <기억>에서도 드러났지만 베르베르의 정치적 성향은 자유주의에 가까우며 좌우를 가라지 않고 독재자를 단호히 비판합니다.
p47을 보면 르네와 오팔이 장래를 걱정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본래 재판에서 진다는 게 당사자에게는 물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이렇게 남기곤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도 여태 공동체에 기여도 하고 정신적으로 건전한 소속감도 갖던 귀족 같은 사람이라 해도, 아 이제 이 나라에선 더 이상 못 살겠다, 이민, 망명이라도 해야겠다며 분을 못 삭이는 태도가 자주 세팅되기도 하죠. 오팔과 르네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튼 적잖은 타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사실 베르베르의 소설 주인공들은 똑똑하긴 한데 약간 철이 없거나 현실 감각이 떨어집니다. 아마도 창조주인 베르베르부터가 그런 사람이라서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베르베르의 작품은, 자주는 아니라도 간혹 움베르트 에코 풍으로 진로를 틀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 1권 p80이하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르네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서 <꿀벌의 예언>이라는 책이 실제로 있는지 검색을 시도하는데, 살뱅 드 비엔이라는 저자(가상), 또 역사가 파트리크 코발스키(역시 가상의 인물)의 소장을 거쳐 이 도서가 실체와 사연을 갖추었음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르네는 결론내리기를 "이 책은 가짜(즉 위서)"라고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의 진자>에서 대놓고 가짜 책 하나를 만들어낸 젊은이들의 소동을 다룬 바 있습니다.
p92에서 르네는 자신의 이름 유래를 설명합니다. 이 소설뿐 아니라 박식한 베르베르는 그의 작품 속에서 단어나 이름의 어원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1권 p202도 참조하세요. 티라미수 이야기를 합니다). 르네에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 레나투스 이야기가 나오고, 프랑스에서도 흔한 남성형 이름 알렉상드르(여기서는 학장님)의 어원에까지 화제가 옮아갑니다. 여기서 (제 생각에) 베르베르는 알렉상드르의 뜻을 통설과는 다소 다르게 푸는데, 이 설도 그럴듯하기 때문에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도 되었네요.
이제 소설은 연세 지긋한 학장님과 젊은 여성 교사의 모험 이야기로 본격 발전합니다. 이런 흥미진진한 오락성이 또, <타나토노트> 이래 베르베르 소설만의 매력이고 개성입니다. 아쟁쿠르 전투는 셰익스피어 작품 <헨리 5세> 중에도 언급되는 중요 사건이며 프랑스 입장에서는 마치 조선이 정유재란을 겪은 듯 불쾌하고 불길한 타격을 받은 역사적 경험이겠습니다. 르네나 학장님 둘 다 프랑스인이니만치 이런 감성작인 베이스가 있겠음을 염두에 둘 필요도 우리 독자들에게 있겠네요.
<기억>도 그렇고 <문명>에서도 베르베르는 전생이라는 모티브를 매우 흥미롭게 사용합니다. 이 신작에서는 퇴행 최면이라는 기법이, 무려 오르가슴까지 연결되는 과정(p165)이 재미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열심히 현생에 의미를 부여해 가며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들에게 "지금 이것은 중간단계에 불과하다"는 오팔의 말은, 르네뿐 아니라 우리 독자들에게까지 뭔가 깊은 허탈감을 느끼게 하네요. 에휴.
학장님이 걱정을 멈추지 않고 표현하지만 당찬 멜리사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마이웨이 모드입니다. 장하기도 하고 무모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p267에 인티파다가 언급되는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꼬이고 꼬인 사연, 이어서 솔로몬 왕의 치세 중 레바논의 백양나무에 얽힌 그 사건이 교차 소개됩니다. 이 의도가 무엇이겠는지도 독자가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