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 세상이 멸망하고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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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의 멸망이라는 건 별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3년 전 우리는 코비드19 때문에 밖에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했고,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한데 모여 식사를 하거나 여흥을 즐기는 일에까지 제약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거리두기 기간 동안 어느 미국의 백만장자는 장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그는 백만장자였으므로 경제적 곤란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어딜 다니지 못하고 숨쉬는 일에도 매번 감염을 걱정해야 한다면 바로 이게 일종의 아포칼립스 아니겠습니까. 

<매드맥스> 같은 영화에서도 그랬고, 아포칼립스가 일단 닥치면 세상을 더 망치려 드는 자도 배짱 좋은 악당이며, 반대로 세상을 다시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 역시 비범하고 용기 있는 유형입니다. 과거 인류가 겪은 갖은 전쟁이나 혼란, 기근 등의 고초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모두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때 시련을 이겨내자고 상황을 주도하는 이들은 보통 영웅이라 불리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소심하고 두려움 많고 어느 구석을 봐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면 이건 확실히 기존 상식에 반합니다.   

"아이돌을 잘 모르는 30대는 처음 보는군요. 그런데 10대인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3D보다 2D가 더 좋습니다(p70)." 지우의 말입니다. 사실 독자인 저도 아이돌에 대해 잘 모르는데, 주위의 같은 또래들이 거의 모두 이 정보에 대해 빠삭하니 잘 모르는 제 자신이 비정상처럼 느껴지고 자괴감마저 듭니다. 이른바 "인싸"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대목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러나 "최강자"는 (이렇게) 소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척척 결정하지 못하는 바를 대신하여 잘 결정내린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남들 앞에 지도자랍시고 나서는 사람의 자질이 그저 "소심하지 않은 것" 정도라면 그 사회는 참 앞날이 걱정된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뻔뻔함이 그를 리더로 만들었을 것입니다(p89)." 하긴 중국에서도 이른바 후흑(厚黑)의 자질이 사회적 성공의 첫째 조건이었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는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가 가능한 자가 리더로 나서도 나서야지, 그저 속마음을 잘 숨기고 술수를 잘 피우며 뻔뻔스럽게 구는 게 고작이라면 아포칼립스 없이도 이미 그 사회에는 아포칼립스가 닥친 것 아닐까요?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진짜 무서운 재난이 무엇일지,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본질적 위험은 따로 있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금은 영화관(p129)뿐 아니라 어디라도 자유롭게 갈 수 있죠. 여성이라면 긴 생머리가 아무래도 로망이겠으며, 라푼젤처럼 긴 머리를 드리우고 싶어하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이 대목에서 서윤은 하필 라푼젤을 이야기했을까요? 답은, 사실 라푼젤 역시 그 행동에 제약을 받던 처지라는 데 있습니다. 단톡방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우에게 마트나 백화점 가는 걸 말립니다(p167). 과연 이 세상에서 단톡방은 누가 돌아가게 하는지, 하찮은 편의라도 이제는 결코 당연한 게 되지 못할 듯하지만 말입니다(p12에서 정부의 배급 언급한 부분도 참조하십시오). 

"확실하진 않지만 이 세상에는 수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확실하다(p210)." 선동 말마따나 참 소심한 사람이 내린, 역설도 아니고 그 자체로 모순인 엉터리 진술입니다. "세상이 망했는데 oo인들.."이라며 체념할 게 아니라, 그래도 세상을 낫게 만드는 무엇이라도 해 봐야 사람된 도리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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