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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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모든 저주는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축복입니다. 사람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세팅되었을 때 더이상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 저주가 걸렸다고 여길 때, 이를 탈피하거나 부당한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발버둥을 치기 마련입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악조건이 붕괴할 수도 있고, 그 노력의 부산물로 어떤 다른 탈출구가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폰타나 가문의 모든 둘째 딸들은, 일시적인 건 몰라도 영원한, 혹은 진정한 사랑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사실 세상에 어떤 특정인을 향해 내려지는 저주 같은 게 정말로 있다면 그 내용은 정말 살벌한 것입니다. 과연 뭐가 진정한 사랑인지 그 정의도 분명치 않은데, 내가 현재 만족스러운 사랑을 못한다고 해서 이를 모종의 저주 탓으로 돌린다면 한편으로 우습기도 하고 뭔가 귀여운 면마저 있습니다. "이게 다 내가 모 가문의 둘째 딸이라서 그래!" 하긴 뭐 다른 유니버스의 다른 둘째 딸들도 적어도 그 연애사만큼은 그리 순탄치가 않더라는 기억이 나긴 합니다.  

이탈리아는 풍광과 기후가 다채롭고, 도시국가들이 곳곳에서(남부 제외) 자신들만의 문화를 꽃피웠기 때문에 반도가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지역 없이 고루 개성적으로 발전한 면이 분명 있었습니다. 시스템의 획일적인 억압을 비교적 덜 받고, 개개인이 자신의 이상대로 취향대로 자유롭게 살아온 전통이 뚜렷했습니다. 그러기에 중세부터 풍요롭고 활기찬 삶이 가능했고, 이탈리아 여행은 타 국가의 귀족 자제들에게 더 큰 성장을 위해 하나의 필수 의식, 절차처럼 치러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뭐 중근세의 사정이고, 지금 에밀리아, 루시아나 둘에겐 더 현실적인 문제가 던져졌기에 이탈리아 여행은 호사가 아니라 숙제입니다. 어느 가문에건 금기시되는 인물이 있고, 이 인물과 정면으로 맞닥뜨림으로써 두 처녀는 금기를 깨는 동시에 저주도 벗어나고(저주라는 게 진짜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을 옥죄는 정신적 사슬을 스스로 벗어던질 때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성장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쩌면... "그 오래된 과제"까지도 같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죽은 아이에게 집착이 너무 심해서 차마 그냥 보낼 수 없었던 여인(p141)." 사실 포피 이모(짜증스럽고 사랑스럽고 미친 작은 노인. p177)뿐 아니라 주변에 보면 이런 엄마들이 꼭 있습니다. 자녀가 꼭 어떤 불행한 사고로 죽어야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는 품 안에 있을 때에나 자식이며, 다 성장하면 자기 뜻대로 배필을 찾아, 자기 먹을거리를 찾아 살게 떠나 보내야 합니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자식이 꼭 부모의 돈을 탐내고, 지원을 기대하고 추한 의존을 일삼습니다. 아내가 탄생시의 성을 떼내고 남편의 성을 쓰는 건 종속의 표시가 아니라, 다른 남자의 가문에 대한 새로운 지분권을 따내었다는 주주 자격 증명입니다.   

그린칠리 시트러스 보드카(p232). 세상엔 너무나 서로 모순되는 성분으로 배합된 음료, 혹은 주류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의 루시는 그리 기준이 까다롭지도 않습니다. 그 몇 기준 중 하나가 "여친과 있을 때 다른 여자에게 두길마보기를 하지 않는다" 정도인데, 아니, 이건 사람인 이상 너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엔 에밀리아가 오히려 아닌 듯 착한 듯 무난한 듯하면서도 까다롭고 눈높고 비위 맞추기 힘든 여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티를 안 내니 오히려 마음을 읽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나이 먹도록 싱글인 게 사실은 다 이유가 있... p285를 보면 가브가 "긴장할 필요 없다"며 에밀리아를 배려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것도 사실은 은근 짜증나는 면입니다. 얘는 자기가 긴장한다기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대신 긴장하게 만드는 타입이에요. 가브도 여기서 정말 그러고 있고 말입니다(본인은 모름). 

말만 저주지 사실은 자의식 강한 이탈리아인들의 자기 도취 대축제 같습니다만 뭐 사실 우리도 남 눈치만 안 보이면 은근 공감이 많이 되는 사연들입니다. p515를 보면 알베르토가 요하나의 이마에 입맞추며 "당신 덕분에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그녀(들)의 재주입니다. 남자들 역시 그냥 행복한 저주에 걸렸다 생각하고 여자들의 정신없는 게임에 장단을 맞춰줘야 제 신상이 편해지더라... 뭐 소설의 결론, 교훈(그런 게 있다면)은 이게 아닐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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