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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 덕의 정치, 사랑의 정치, 힘의 정치 ㅣ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1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6월
평점 :
민주시민인 이상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그 표를 심사숙고한 후 행사하는 건 일종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적 신념을 확고히 가졌다고 해도, 이를 정제된 형태로 다듬고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저자 홍성민 교수님은 정치학이 정신과학이라는 특질을 감안하여, 어떤 "관점"을 마련한 후 다른 개념들까지 순차적으로 공부해야만 어떤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p7을 보면 자연과학의 경우 "내"가 대상을 어떤 틀 없이 그대로 관측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학의 경우 패러다임을 일단 한 번 거쳐 대상을 보고 해석하고 전달하며 비평하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토머스 쿤은 자연과학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그 정도와 방법이 정신과학과 같을 수는 없으므로 일단은 논외입니다. 만약 이 관점(perspective)이 올바르게 자리하지 않은 채 정치적 소통을 시도하면, 자칭 자유주의자가 전체주의적 주장을 (비록 부분적으로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강변하거나 반대로 사민주의자라는 사람이 공리주의적 주장(p7)을 앞뒤 안 맞게 내세우는 볼썽사나운, 차라리 코믹한 광경을 목도하게도 됩니다. 혼자 있으면 상관 없는데, 정치적으로 적대하는 진영이나 개인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자신이 속한 진영에까지 피해를 끼칩니다) 평소에 공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홍알정 기획이 독자들에게 시도하려는 방향성이 이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뉩니다. 첫째 덕의 정치, 둘째 사랑의 정치, 셋째 힘의 정치입니다. 덕의 정치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사람이 우리 동아시아인들에게는 공자일 텐데, 책에서는 p75 이하에 나옵니다. 이 파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정신과학 분야에서도 이분이 고전의 기초를 놓았으며 사실 고교 과정에서도 이분의 정치사상을 개략적으로나마 다룹니다. 우리가 기억을 못 할 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분야 그의 대표 저작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습관을 통해 인간은 정의로워질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p25). 본성에 의해 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본성이 덕을 애써 밀어 내어 방해하는 것도 아님을 주장한 그의 입장은 어찌보면 성선설, 성악설 모두를 지양(止揚)한 실용적인 관점이라서 흥미롭습니다. 중용을 강조한 그는 정치적 지혜, 실천적 지혜의 두 구별되는 존재 앙식을 논했는데, 같은 페이지 각주에 나온 홍성민 교수님의 평소 지론, 즉 정치인도 자격고사를 치르고 정치를 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교하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귀결이 그렇지만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본 정치의 궁극 목적도 결국은 행복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관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의 반대편에 서는 이들이라든가, 혹은 그의 입장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이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쪽 입장은 칸트, 마르크스가 나오는데 사실 이 두 사람도 (시대는 다르지만) 자기들끼리는 엄청 대립하죠. 특히 p54 이하에서 칸트적 인간관을 놓고, 공동체주의로 파악되는 아리스토텔레스 관점과 대립시키는 저자의 설명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롤즈의 입장을 칸트주의의 계승으로 보는 대목도 최곱니다. 찬성은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마이클 샌들 두 사람이 설명됩니다.
사랑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정치학을 전개한 이들로는 레비나스, 리쾨르, 니버, 묵자 등이 소개됩니다. 이 철학자(정치학자)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던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사랑의 정치"라는 관점의 범주에 묶여서 통합적으로 설명되는 걸 보면 또 뭔가 크게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돌봄은 개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가 떠맡아야 할 정책 대상이다(p96)." 시장의 영역을 벗어나 문화의 영역으로 돌봄의 행정을 편입해야 한다는 게 배려의 책임윤리이며 이것이 레비나스 철학의 한 핵심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기 책임 하에서만 살 수 없는데, 은혜의 축, 공감능력, 사회제도의 세 가지 핵심으로 체계를 전개하는 게 폴 리쾨르입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꽤나 다른 두 철학자의 사상을 이렇게 하나의 틀에서 조감하니 또 색다른 느낌이네요.
국제정치학에서 "힘의 정치"는 레알폴리틱스에서 모든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역시 마키아벨리가 첫째로 꼽힐 만한데 그가 자신의 주군 체사레 보르자를 과연 잘 보필했는지는 의문이지만 후세에 자신의 이름을 불멸로 남기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어떤 개념이 설령 저술자 본인에 의해 아무리 잘 정의되었다고 해도 독자에게 항상 모든 맥락에서 명확히 이해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홍성민 교수님은 p145 이하에 <군주론>의 모든 페이지에서 '비르투(virtu)"들을 추출하여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나중에 <군주론>을 따로 정독할 기회가 생겨도 이 대목이 요긴하게 쓰일 듯합니다. 국가이성에서 종교 색채를 완전히 뽑아낸 게 그의 큰 공로 중 하나라고 합니다(p172).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소명의식을 강조합니다(p166). 그가 카리스마를 강조한 논변을 보면 "힘의 정치"란 개념이 그의 사상 체계에서 갖는 위치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세심한 구분을 보면 그의 지향이 어디를 향하는지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마이네케는 마키아벨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면서 정치가의 비르투를 1차, 시민의 덕성을 2차로 봅니다(p173). 1차 대전의 발발은 국가이성의 왜곡에 있다고 보며(p174) 그 책임을 마키아벨리-헤겔-트라이치케 계보가 독일 제국주의를 낳았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이네케는 E H 카의 <역사란...>에도 자주 거론되는 이름이죠. 그람시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에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중첩시켰다고 요약합니다(p182). 한비자의 분석으로는, 본래 강(姜)씨의 나라였던 제(齊)를 권신 전상이 가로챈 건 그가 민심을 얻어서인데, 홍성민 교수는 이를 두고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홍알정 시리즈는 거의 17부에 걸쳐 이어질 전망인데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