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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 인간창조편 - 딸아 한자 공부는 필요해. 아들아 너도 ㅣ 신화 속 한자, 한자 속 신화
김꼴 지음, 김끌 그림 / 꿰다 / 2023년 7월
평점 :
"딸아, 한자 공부는 필요해. 아들아, 너도." 약간은 코믹하게 들리기도 하는 이 말은 그러나 의외로 묵직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한자를 정확히 알아야,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그 무수히 많은 한자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문맥에 맞게 쓸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한자에는 세상이 작동하는 이면의 심오한 원리가 깃들었으며, 이 이치를 깊이 탐구하고 숙고하는 사람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여타의 우중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생각 깊고 현명하며 바른 행동이 몸이 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한자 학습은 꼭 필요합니다.
이 책은 한자의 제자(制字) 원리를 다루는 가운데 창조 신화, 혹은 인간 사회의 발달사를 알기 쉽게, 일러스트를 결들여 가르칩니다. 한자에 평소부터 관심을 많이 갖고 공부해 온 사람이라고 해도 갑골문으로부터 비롯한 글자들의 정확한 형성 원리를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 이 글자가 아런 과정으로 만들어졌으며, 연관되는 다른 글자에는 이런 것들이 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배움의 새로운 경지에 접어드는 이들이 많을 듯합니다.
매(每. every)라는 글자에는 특이하게도 어머니 모(母)라는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책에서는 갑골문 분석을 통해 머리를 올린 여인이라고 그 기원을 잡습니다. "성인식을 끝낸 여인은 언제나, 매일,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몸조심을 하는 모습"이라는 해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繁(번)이라는 글자에도 자세히 살펴 보면 每가 들어 있는데, 머리에 가체를 덧붙이니 그게 번거롭지 않겠습니까. 悔(회) 역시 그 아쉬운 마음(후회)이 늘, 언제나 깃드니 그런 모습의 글자가 되었으며, 심지어 侮(모)도 모욕을 준 사람이 언제나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치가 그렇다 하니 읽으면서 수긍하게 되네요.
季(계)는 원래 볍씨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禾(벼 화)와 子(아들 자)가 합쳐졌으니 그게 볍씨가 맞는데, 이게 계절이란 뜻으로 전이된 건 볍씨가 각 네 계절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뿌림, 기름, 거둠, 보관) 그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흥미로운 건, 왜 "막내, 끝"이란 뜻을 이 글자가 갖게 되었냐인데, 봄의 끝무렵에 볍씨를 직파하던 고대의 풍습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 이치는 누가 연구하여 밝힌 걸까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다.
目(눈 목)이라는 글자도 온갖 다른 글자들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옥을 문지르면 빛이 나타난다고 해서 나타날 현(現)인데 이 글자에도 目이 들어 있습니다. 觀(볼 관)도 황새 관(雚)에다가 볼 견(見)이 붙은 건데, 책에서는 큰 눈(口+口)과 艹(눈썹), 그리고 隹(새 추)가 합쳐진 글자가 雚라고 설명해 줍니다. 일종의 상형자라는 건데, 이 글자를 초등학교 이래 여러 번 쓰고 외웠지만 그런 뜻이 담긴 줄은 몰랐습니다.
글자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그 숨은 연관성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腋(겨드랑이 액), 夜(밤 야)는 모두 亦(또 역)에 뿌리를 둔 형제 글자라고 합니다(p147). 亦은 큰 대(大)의 겨드랑이 사이에 털을 그려 사람의 겨드랑이라는 뜻을 표시했다고 하는데, 그러니 진짜 겨드랑이 액(腋)이 모두 亦에서 유래했을 수밖에 없었겠네요. 이 글자를 바탕 삼아 다양한 다른 글자들에까지 응용이 또 되는데, 구멍이 겨드랑이 사이에 뚫리니 시원해서 爽(시원할 상)이 나왔다고 하네요.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
낳을 산(産)에는 이미 낳을 생(生)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런 모양이 되었는가. 무엇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낳음[生]만으로는 안 되며, 두드러진 노력이 더해져야[产] 가능하다는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한자의 이치는 공부하면 할수록 신비롭고 오묘합니다.
상황이 급박하면 평소대로의 절차를 따박따박 밟아서는 일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편법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사기열전 등에 나오는 전국시대 사공자 중 한 명인 위(魏)나라의 무기(無忌) 신릉군(信陵君)은 빼어난 지혜와 덕성으로 인망이 높았습니다. 진(秦)이 조(趙)를 침공하자 신릉군은 위왕의 병부(兵符)를 훔쳐 군대를 빼내어 조나라를 구하는데, 조와 위를 모두 이롭게 한 현명한 행동이었으나 참람되게 왕의 군 통수권을 행사했으니 눈밖에 나게 되었고 결국 실의에 빠져 죽습니다. 절부구조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야기와 함께 익히는 한자 공부는 기억에도 오래 남을 뿐 아니라 선현(先賢)들의 지혜까지 함께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합니다. 어려서부터 한자를 이치적으로 배운 아이는 아마 자라서 공동체와 환경까지도 더불어 보살필 수 있는 정의로운 시민이 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