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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꽃피는 토론 1 - 모든 공부와 통하는, 개정신판 ㅣ 신나는 토론 맛있는 공부 1
황연성 지음 / 이비락 / 2023년 6월
평점 :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싸움은 대부분 토론의 규칙을 몰라서 그지경까지 치닫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토론의 규칙이라는 게 없이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니 미개한 진흙탕 다툼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토론의 기본 규칙을 알고 차분하게 공동의 선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혔다면 많은 분쟁들이 평화롭고 생산적으로 해결되었겠습니다. 사실 어른들 중 많은 이들도 토론의 규칙을 잘 모르기에, 초등학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이 책을 공부하고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어의(語義)를 둘러싸고 서로 이해가 달랐던 탓에 공연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하는데, 상대방은 그 말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고 다툼을 벌이는 거죠. 이 책 p27을 보면 ⑨번 항목에 "애매어의 오류"가 나오는데,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토론 시작 전에 용어들의 뜻을 분명하게 정해야 하며, 혹 여의치 않다면 토론 중이라도 서로 합의를 한 후 재개해야 합니다.
p21를 보면 디베이트의 첫 단계인 "입론"이 나옵니다. 책에 나오는 설명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들 입(入)자로 시작한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설 립(立)이라고 하죠. 한자어에는 이 비슷한 용례가 많은데, 예를 들면 입춘(入春)이 아니라 입춘(立春)인 것과 같습니다. 여튼 입론 단계에서 많은 쟁점들을 미리 정리해 두면 이후의 논점 일탈을 방지하고, 토론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논제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논제 설정을 마치 자동차의 핸들과 같다고 비유(p14)합니다. 논제는 바로 토론의 주제입니다(p10). 토론의 주제는 정책 논제(~를 해야 한다), 가치 논제(~가 옳다), 사실 논제(~가 사실이다) 등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논제는 긍정 형식으로 진술할 수 있으면 긍정형으로 쓰는 게 좋고, 구태여 부정형으로 쓸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대체로 논제는 시의성이 있는 주제로 정해지게 됩니다.
대체로 토의는 디스커션, 토론은 디베이트라고 합니다(일부 혼용도 있습니다). 토론은 토의와 달리 승패를 가르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판정이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이 판정 절차가 꼭 승패를 정한다는 의의 외에도, 참가자들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더 발전된 디베이트 능력을 기르게 하는 다른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p33). 각 팀에는 여러 참가자들이 있고 각 참가자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이 참가자(팀원)들의 점수를 합쳐서 이긴 팀을 정합니다. 판정기준표의 한 예시가 p35에 나오는데 이게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초등학생 디베이트 진행에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음... 모든 활동이 그렇지만 원칙과 룰을 사전에 철저히 익히는 게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전 학습 이후에는 "실전"을 겪어 봐야 아 이 룰이, 이 원칙이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거구나 하는 게 내재화, 각성이 이뤄지고 진정한 실력이 배양됩니다. 그래서 p41부터는 실전 디베이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마치 스포츠 게임트랙처럼, 혹은 생중계 스크립트처럼 예시들이 나옵니다. 이 제1권 후반부에는 도덕과 종교라는 테마 아래 세 개의 논제(동물실험, 심청, 채식주의), 법과 범죄 테마 아래 세 개 논제(홍길동, 인터넷 실명제, 안락사)가 나옵니다. 논제들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보편적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식상한 것들도 아니라서, 진짜 토론이 눈 앞에 전개되는 것처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네요.
토론은 민주 시민이라면 작게는 지역 공동체 자치에 참여하기 위해, 크게는 나라의 국정 운영 방향에 국민으로서 한 표를 정당하게 행사하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로서라도 필요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관성대로 1번, 2번을 찍기보다는 내가 지금 저 후보를 지지(혹은 반대)하기 위해 저 토론장에 들어가 한 마디를 거든다고 상상하고 TV 토론을 시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 혹시 장래 변호사, 변리사가 될 학생이라면 토론 실력은 필수로 갖춰야 합니다. 유능한 법정대리인은 나의 의뢰인을 위해 즉석에서 유리한 논거를 번개처럼 척척 제시하여, 적기를 놓치지 않고 올바른 변론, 공격, 방어를 제출하여 재판의 승리를 이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홍길동은 의적인가 범죄자인가? 찬반의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합니다. 탐관오리의 응징도 올바른 방법으로 했어야 했다, 세금을 탈취하면 국가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너도나도 홍길동의 방법에 의존하면 과연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등이 홍길동 단죄론의 논거입니다. 옹호론은 첫째 홍길동은 기존의 시스템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했다, 만약 그 행동이 불법이라면 먼저 법이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설령 불법이라 해도 예외 취급을 하는 경우도 있다 등을 논거로 댑니다. 제 생각에는 찬반 양측 논거에 다 결함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홍길동옹호론(=처벌반대론) 측의 손을 들어 주는데 약간은 사심이 개입하신 것처럼도 보였습니다(어디까지나 독자인 제 주관적 느낌입니다^^).
이 책에서는 "디베이트의 꽃은 반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도 TV 토론이나 법정물 컨텐츠를 보면서 그 치고받는 반론 재반론 과정을 몰입해서 보곤 하죠. 노벨문학상을 받은 센키예비치의 역사 소설 <쿠오 바디스>도 그 외줄타기 같은 아슬아슬한 변론, 반론, 궤변(이라고는 하나 거의 예술의 경지)인 향연을 읽으며 넋을 잃곤 합니다. 규칙을 잘 따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디베이트는 어느 사회에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