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인생 수업 - 인생에는 항상 플랜B가 있더군요
이순국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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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벌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너무 쉽게 쓰곤 하는데 사실 재벌은 기업, 그 중에서도 대기업집단을 가리키며 이런 기업의 오너, 혹은 그 일가라면 일생에 한 번 스쳐지나가듯 만나 보기도 힘듭니다. 그냥저냥 잘사는 부자라면 한국 같은 풍요로운 나라에서 그리 드문 존재는 아닙니다만, 정말 대기업 총수(아니면 고용된 CEO라든가)라면 30위까지 내려온다 해도 지극히 레어한 사람들이죠. 사람이 한 가지 재주만 갖고 태어나기도 쉽지 않은데 자기 힘으로 기업까지 일구고 공인회계사, 의학박사까지 취득한다는 게... 한국에 남자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영예란 영예는 다 가진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분이 들려 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라면 누구라도 귀를 기울일 만합니다. 

이현재 전 국무총리는 아직도 생존해 계신 분인데 서울대 총장도 역임한 분이죠. 저자 이순국 회장이 서울대 상대를 다닐 때 교수였던 그는 학생들더러 "속물스럽다고 여기지 말고 젊었을 때 자격증을 따 두라" 같은 실용적인 충고를 자주 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게 지금 같으면 너무도 당연한 소리인데 이회장님 학생 시절에는 순수 학문으로 대성하는 걸 더 중시했으므로 교수가 따로 저런 말을 해 줘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공인회계사 같은 건 당시에 인식이 그리 좋지도 않았고 다른 경로로 취득하는 일도 많았죠. 1980년대 중반 이후 평가가 치솟던 이 자격증은 최근엔 기업에서 회계사 쓸 일이 많아져서 다시 인기 폭발입니다. 이현재 국무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노태우 정부 때 초대 총리를 지낸 분이고, 1998년 외환위기를 수습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서울 법대 출신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꼭 한국에는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고 투서질을 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있는데 p83에 보면 저자가 초년생 회계사 시절 어려운 고객에게 수임료를 싸게 받다가 덤핑 수주로 제재를 받아 자격이 정지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건, 당시(1970년대)에 해당 직역에 저런 일(즉 덤핑 수주)이 제재 사유가 되긴 했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여튼 이때 제재를 받고(전화위복이라고) 저자는 삼성특수제지에 바로 전무로 입사해 3년 만에 부사장이 됩니다. 그 젊은 나이에 말입니다. 

삼성특수제지는 지금 같으면 상상이 안 되지만 부도가 한 번 났는데(저자분이 퇴사하고 자기 회사를 가진 후입니다), 이후 신호제지로 재탄생하는 데에 이 저자분이 다시 혁혁한 기여를 한 것으로 책에 나옵니다. 사실 삼성특수제지는 중앙일보에 용지를 독점 공급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부도가 났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좋은 여건이라 해도 경영자 자질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란 점도 확인 가능합니다. 참고로 이후 전주제지로 사명이 바뀌고(여전히 삼성 계열사였다가) 이병철 창업주 사후 장녀 이인희씨(이재용의 큰고모)에게 상속분할되어 한솔제지가 됩니다(현 한솔그룹 소속).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내실 가득한 회사로 다시 살리는 데 특별한 재능을 증명한 그는 1980년대에 아예 기업사냥꾼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요즘 주목 받는 그런 악덕 헌터가 아니라, 박식한 회계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정직한 경영을 했을 뿐입니다. 당시만 해도 기업 돈 내 돈 구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회사 자금을 내 돈처럼 끌어썼는데 이게 배임이라는 생각도 못할 때 아니었겠습니까. 저자는 "자연인과 법인은 엄연히 구분되며 기업이 이런 풍조에 지배되어야 영속할 수 있다"는 말을 책에서 하는데 사실 한국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저자는 또한 기업 세습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를 개탄하는데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하시는 대목이 재미있었습니다. 

세상 모두를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자는 1998년에 한 번 타격을 입으시고, 2010년에 다시 협심증으로 쓰러진 바 있습니다. 젊었을 때 술이 센 걸로 유명했으며 작은 체구에 당찬 스타일이라 하여 이신저(헨리 키신저에 빗대어)란 별명도 붙었던 그는 이제 운동도 새로 시작하며 여전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책이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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