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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 - 세계를 탐구하고 지식의 경계를 넘다
윌리엄 바이넘 지음, 고유경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6월
평점 :
인간은 자연과학의 발달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풍요로운 문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여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을지, 아니면 번영과 편익에도 한계가 있어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만족해야 할지, 그렇지 않고 판도라의 상자를 마침내 열어 모든 것의 파국을 맞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실한 건 그에 대한 해답 역시 자연과학이라야 가르쳐 줄 수 있을 듯하며, 인간이 자연과학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그 지난 역사도 알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시대에 알려졌던 거의 모든 지식에 체계를 부여했으며 따라서 그의 업적은 비단 자연과학에 한하지 않습니다. p42를 보면 플라톤이 "철학자"였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철학자"였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를 자연과학자라는 범주에 넣는다는 사실을 혹 과거의 그가 안다면 매우 의아해할 것이라는 말도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데,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그는 단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므로"라고 합니다. 철학자, philosopher라는 단어의 어원을 이용한 말장난이지만, 오늘날의 자연과학이 극히 지엽적이고 극단적인 기술주의로 치닫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힙니다. p48을 읽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자연철학은 언제나 목적인, 질료인, 형상인을 중시했지만, 요즘은 작용인에만 치중하는 게 자연과학이라고 이해할 수 있죠.
고대 그리스 문명이 저물고 서로마도 수명을 다한 후 지중해 세계의 중심은 아라비아 세계로 옮아 왔습니다. 우마이야 왕조가 다마스커스에서 세력을 떨치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따르는 새로운 종교가 신봉자를 늘림에 따라 자연과학과 수학도 무슬림 세계에서 새로운 단계로 발전을 보았습니다. 책에서는, 소중한 그리스 문명의 유산이 대거 유실됨에 따라 이슬람 문명권에서 보존하고 번역한 각종 문헌들, 또 새로이 저술되고 발전된 저작들이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또 이슬람은 그리스 문명뿐 아니라 멀리 동쪽의 인도에서도 문명의 정수들을 많이 수입하고 개량해 왔는데 대표적인 게 0의 개념과 아라비아 숫자 등입니다.
연금술이란, 현대인들이 들으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분야입니다. 어떻게 납, 철, 구리 따위를 가공해서 금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세에는 놀랍게도 이런 과제에 당대 최고 두뇌들이 열정을 다 바쳐 매달렸으며 파라셀수스(p71) 같은 이는 너무나도 깊이 몰입한 나머지 (그 부산물로) 근대 화학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행여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도, 금의 희소성이 떨어지면 결국 금은 금이 아닌 게 됩니다. 스페인이 남미를 약탈하여 엄청난 양의 금을 유럽 본국으로 실어 왔으나 남은 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사치 풍조의 만연, 산업의 붕괴였고 스페인은 이후 내내 서유럽의 최빈국 신세로 남습니다. 연금술의 과제가 20세기 들어 어떻게 귀착났는지는 p266을 보면 되겠습니다.
해부학이란, 중세 이전까지 대단히 중요한, 의학의 원활한 작동에 핵심적인 지식 분야였을 듯합니다. 저지대 사람 베살리우스가 이 분야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고, 이분보다 좀 앞선 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인간의 신체 내외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인체 내부의 구조는 사실 여간 큰 용기를 내지 않으면 접근하기 힘들지만, 일단 명확히 구조를 밝히고 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앞선 시대의 현인들보다 지금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은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분위기입니다만, 중근세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윤휴 같은 지식인은 "천하의 바른 도를 어찌 주자만 안단 말인가"라고 했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렸고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경직된 풍조 하에서는 지식이라는 게 발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p99)했던 근세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카르트는 좌표계라는 걸 완성한, 수학과 자연과학의 중대한 기초 하나를 놓은 지식인이었는데 우리가 잘 알듯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란 명언을 남긴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좌표란 강력한 도구가 개발된 후 인간은 유클리드식 기하 문제를 모조리 좌표로 치환하여 훨씬 쉽게 풀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외에도 천문, 측량, 항해 등에 좌표 체계가 남긴 기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요즘 로봇 공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산업 한 섹터를 이끌어가는 중이며 관련 주식들도 활황세인데 데카르트가 그 이른 시기에 "자동기계"라는 아이디어를 기초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아이작 뉴턴은 어느 기술사학자에 의해 매겨진 영향력 순위에서 예수, 석가모니, 칭기즈칸, 카이사르 등을 모두 제치고 2위에 오를 만큼 큰 업적을 이룬 과학자이며 아예 과학자의 대명사라 할 만합니다. 만유인력의 법칙뿐 아니라 이후 삼백 년 동안 자연과학의 기본 인식틀이었던 고전역학을 완성(갈릴레오 등 다른 기여자들도 있었지만)한 사람이고, 미적분학도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나 광범위한 업적을 남기기란 당시에나 지금이나 불가능에 가까우며 도대체 어느 정도로 머리가 좋아야 이 비슷한 흉내라도 낼 수 있을지에 생각이 미치면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뉴턴은 유럽에 비해 안정적이었던 영국 정세의 덕을 본 바도 적지 않으며, 책 p151, p166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와중에 헛되이 목숨을 잃은 라부아지에에 대해, 또 (비교적 운이 좋았던 그 친구) 드 라플라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학사 공부를 해 봐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체계라든가 인식이 대체 얼마나 불완전한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만 해도 플로지스톤 같은 허무맹랑한 이론이 과학계에서 주류였다늨 사실은 오히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대체로 자연과학은 생업을 위한 노동에서 자유로운 계층을 중심으로 발달했었는데 가상 캐릭터 셜록 홈즈 같은 이도 집에서 화학 실험을 하는 게 취미였습니다. 이 고정 관념을 처음으로 깬 사람이 데이비 교수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받은 패러데이였는데 오늘날까지도 중학교 전자기학 파트에 그의 이름을 딴 내용이 가르쳐집니다. 19세기 전자기학은 조금 뒤 제임스 맥스웰이란 거인이 등장하여 통합 체계를 세웁니다.
플로지스톤 이론처럼, 근대 과학자들은 "열"이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또하나의 오류를 저질렀는데 요즘은 초등학생더러 이런 소리를 해도 비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증기기관 하면 18세기 제임스 와트라는 이름이 바로 떠오르겠지만 책에서는 와트 외에도 다른 여러 기여자가 있음을 밝힙니다. 이 사람도 그렇고 후대의 제임스 맥스웰도 스코틀랜드 사람인데 인구도 적은 이 고장에서 어쩌면 이렇게 많은 인재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어 책에서는 엔트로피 개념을 소개하는데 이 이야기는 우리 현대인들이 다른 맥락 때문에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돌턴, 채드윅 같은 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원자 개념은 이후 방사능이라는 낯선 현상에까지 그 연구 범위를 넓혀 가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뢴트겐은 의료 발달에 혁혁한 공을 남기기도 했고 퀴리 부부의 업적은 미시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크게 넓혔으나 원자폭탄이라는 재앙적 무기 개발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진화도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를 통하느냐, 아니면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이뤄지느냐는 아직도 치열한 논쟁이 이뤄지는 주제입니다. 페니실린은 처음에 발견되었을 때 기적의 약으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결핵에의 특효 등 많은 성과를 보았으나 현재는 항생제 과다 사용 때문에 또다른 문제가 생기는 중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커다란 희망과 편의를 선사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인간이 지혜롭지 못하면 없느니만도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음을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