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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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death는 죽음이란 뜻의 추상명사를 뜻하기도 하지만, "죽음의 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death of death란, 죽음의 신의 죽음, 즉 인간이 죽음이라는 공포로부터 영원히 해방된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동남동녀를 파견하여 불로장생을 꿈꾸었다는 진시황 이래 인간은 늘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갈구해 왔습니다. 과연 의학과 자연과학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만큼 해답을 내놓았을까요? 인간은 필멸의 삶이라는 현실 자각 앞에 절망한 나머지 종교라는 탈출구를 마련하여 그로부터의 초극을 시도해 왔습니다. 이제 그 과제라는 바톤을 과학이 넘겨받은 셈입니다. 

노화는 과연 어떤 기제에 의해 진행되는가? 이에 대해 과학은, "약리적으로 조작이 가능한 신호 전달 경로(p38)"의 조절을 통해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결론내린 듯합니다. 시르투인이라는 물질은 특정 노화 관련 질병을 막는 데 꽤나 효과를 내며, 이 사실은 노화 전체의 진행을 막는 방법의 발견에 대해 과학자들에게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 준 듯합니다. 사실 무엇이 젊은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지, 즉 늙은 것인지는 누구라도 쉽게 판정할 수 있겠지만, 의학적으로 노화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확하게 합의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 학자들은 노화에 대해 실용적인 정의를 잠정적으로 내리고 이 과제의 해결에 역량을 집중합니다. 

p53에는 생물의 발생 계통도가 나옵니다. 이런 그림을 보노라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동물들과 가까우며 또 그런 원시 상태(이 역시 인간 편의적 개념입니다만)를 벗어난 게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은 가까운 과거일 뿐인지를 실감하며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생물학적으로 불멸에 가까운 건 다름아닌 (우리 인간이 그토록 경멸하는) 박테리아입니다. 손쉽게 개체를 복제하고, 항생제에 생존을 위협당하면서도 곧 극복하고, 대칭적으로 분열되기만 하면 영원히 죽지 않고 유전정보를 보존하니 이게 불멸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번거롭고 고달프기만 하며 필요 이상의 고통에 시달리기까지 합니다.  

"생식세포는 노화하지 않는다. 반대로, 인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암세포 역시 노화하지 않는다.(p70)" 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 전제로부터 큰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세포가 노화하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인체 전체의 노화 방지에 대해서도 뭔가 큰 디딤돌 같은 장치가 하나 생기는 셈입니다. 노화를 늦춘다, 멈춘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어렵겠으나) 가능할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진행이 된 노화를 되돌릴 수도 있을까요? 얼핏 보아 엔트로피 제2법칙에 반하는 듯도 보이기 때문에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직까지도 정설에 가까운 컨센서스는 마련되어 있지 않으나 오브리 드 그레이 같은 학자는 SENS 같은 패러다임을 만들어서 노화의 원인에 대해 일곱 가지 팩터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일곱 가지는 이 책 p89에 정리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비과학적이라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SENS 어프로치는 이제 학계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이론틀로서의 입지를 점차 굳혀 가는 추세입니다.  

이 문제가 그토록 과학적/비과학적이라는 이분법적, 원초적 비판에 시달리는 이유는, 불로이니 불사이니 하는 개념들이 애초에 황당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떻게 과학의 영역에서 이런 문제를 다룰 수가 있냐는 식의 반응을 부르기 딱 좋기도 합니다. 그러나 줄기세포와 텔로미어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제 얼마든지 과학의 영역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집니다. 나아가 특정 연구자 그룹은 아예 노화를 질병의 일종으로 다룹니다. 병에는 물론 불치병, 난치병이 있지만 그래도 죽음이 혹시 병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는 치유, 완치. 극복의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몇 년 전 유럽의 CERN에서 주도한 강입자 충돌기 실험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가 입증되기도 했죠. 책 p220에서 이 토픽을 거론한 이유는, 겉보기에 사람들의 실생활과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에도 거시정책적 이유로 거금의 예산이 (때로는 초국적적으로) 투입되는 경우가 있음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아폴로 계획이나, 오펜하이머 박사를 필두로 했던 원자탄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화 방지 프로젝트라면 더군다나 많은 이들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문제이므로 더욱 그 필요성이 절실합니다.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건 윤리적 태도입니다. 인류는 여태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색과 통찰을 통해 죽음이란 피할 수 없으며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여겨 왔으며 이에 저항하는 생각은 매우 유치하고 미성숙한 것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책에서는 불로불사를 추구 혹은 선호하는 캐릭터들이 대체로는 부정적으로 묘사된 예로 여러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들고 있는데(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개인적으로는 저 리스트에다 <엑스맨: 더 울버린>을 넣고 싶습니다. 그 영화야말로 물러가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분수를 넘어선 욕심을 부리던 자가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지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심지어 문예 속에서조차, 죽음을 담담히 수용 못 하고 영생을 꿈꾸는 자는 대개 이처럼 나쁜 취급을 받는다는 점 역시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노화가 정말 극복이라도 되면 그때부터 인류의 삶은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직 필멸의 삶을 사는 지금 시대를 BR(before rejuvenation), 노화 역전 이후를 AR로 구분하여 새로운 기원이 쓰일 수 있다고 합니다. 노화 역전에는, 발달한 인공 지능도 한몫 크게 거들리라는 전망인데, 이미 커즈와일 같은 이는 우주를 깨워 비생물학적 지능을 불어넣어 우주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현명하게 결정하게 돕는다는 원대한 전망을 내놓았었습니다(p309에서 재인용).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일수록 인간은 더 대담한 도전을 시도했었으며 과연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이 몸부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우주의 시선에서도 궁금할 법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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