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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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특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author입니다. 그의 초기작 <개미>부터 해서 <타나토노트> 등등 프랑스 문단이 널리 알아보기 이전부터 우리 한국 독자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사랑해 왔습니다. 번역이라는 과정을 한 번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은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며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신선한 영감을 선사했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의 몫이 크겠으나, 과연 그는 어떤 소재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으며, 유려한 문장은 어떻게 생산해 내는지 우리 평범한 독자들도 궁금합니다. 그가 자신의 글쓰기 비법(?)에 대해 처음으로 한 꺼풀 열어 보인 이 에세이집은 자전적 스토리도 담겼기에 더 궁금했었고, 다 읽고 나서는 그의 정신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궁금함이 풀려서 좋았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항상 민머리에 호기심 가득한 젊은 얼굴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어서, 예를 들어 이 책 p104에 나오듯 "1979년에 법학 과목을 재수강..." 같은 말을 읽으면 '엥? 그때 대학을 다녔다고?' 같은 놀라움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개미> 같은 게 얼마나 오래된 작품이고 또 바로 이 출판사 열린책들 초창기에 나온 줄 잘 알면서도 그가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분이라는 게 새삼 놀라웠습니다. 우리 나라 정치인 주류는 1980년대 학번인 점을 같이 떠올려 보십시오. 아무튼 이 대목에서 베르베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극우 대학생들의 등쌀에 시달린 기억"도 곁들여져 있습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도(더군다나 1970년대에) 대학가에 원 극우가 다 있었나 싶었습니다(지금이면 그러려니 합니다). 참고로 1968년 5월에 "그 일"이 있었고, 1980년대는 프랑수아 미테랑이 처음으로 사회당 출신으로 대통령으로 재임한 시기라서 북한과 수교를 하니 마니 말이 나왔었습니다(장마리 르펜은 아직 존재가 미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프랑스는 그런 나라지요. 

베르베르의 문학 세계와 법학이라니 일견 잘 연결이 안 되는 듯도 하지만 그의 논리적이고 치밀한 문장 구조와 체계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다만 법 과목의 특성상 암기가 많고, 베르나르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이에 거부감이 들었으리라 짐작이 쉬이 되며, 그가 주력을 둔 분야는 범죄 수사 쪽이었다고 합니다. 은근히 미스테리 한 자락을 깔다가 나중에 "진상"을 밝히기도 하는 그의 스타일이 아마 이시기에 배양되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수님 말씀이 걸작입니다. "우리의 분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게, 허점이 많아서 검거된 자들만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정말 연구 대상인 자들은 지금도 대로를 활보하고 있죠." 과연 그렇긴 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나르 작가의 못말리는 호기심은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개미굴에 들어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p142)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만약 이때 사고가 나기라도 했다면, 아마 세월이 흘러도 비슷한 직품이 나오기 어려웠을 <개미>라는 걸작은 우리가 접하지 못했겠죠. 또 개미들도 인간 사이에 많은 친구들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그 명작이 얼마나, 우리 인간과 개미를 친하게 만들어 주었습니까. 

사람과 (개미 같은) 동물 사이가 종전보다 더 친해질 수는 있어도 사람 사는 사회에서 정치적 진영 간의 대립은 영원히 해소되기 어려운 듯합니다. 이 책을 보면 베르베르가 지역 신문 기자로 근무할 때 취재한 참사 하나가, 지역 정계에서 대립상을 보이던 정파 간 비협조 끝에 벌어진 일종의 인재(人災)였다는 점이 술회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사실 우리 나라에서도 벌어지기 힘든 성격인데,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는 습관"을 아쉬워하는 인용구가 눈에 띕니다. 길을 건널 때에야 조심하는 습관이 바람직하지만, 모두의 이익을 위한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좌고우면" 성향이 아주 해롭기 때문이죠.  

이 책에는 제라르 암잘라그, 즉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형(책에는 형이라고 나오는데 제가 알기로는 동생입니다)이 자주 언급되네요. 이분도 유명한 생물학자이며 프랑스 학계에서 권위자로 통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오래전 생물학자 라마르크(역시 프랑스 사람이었습니다)의 용불용설을 지지하는 특이한 스탠스인데 책에도 잘 나오지만 용불용설은 당시에도 최근에도 비웃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의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서도 "잘못된 학설"의 대표적 예로 실릴 정도죠. 그런데 의외로, 중학교 생물 선생님들 중 깊이 있게 공부를 하신 분들은 (입시 경향과는 무관하게) 이 학설을 마냥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획득 형질은 근래 제한적으로나마 유전에 관여된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도 했고, 방향이 좀 다르긴 하나 후성유전학이라는 분야도 최근에 주목받고 있죠. 언젠가는 멋진 역전 홈런이 터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자연과학이라고 해서 "절대"란 건 없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p371)" 작가뿐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짜깁기가 아닌) 무엇인가를 만드는 예술가들은 모두가 작은 신들이며 그들에게 부여된 군주의 기상(헤겔의 표현입니다)은 모두 창조주만이 느끼고 누리는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들은 각기 자신만의 아쉬움이나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그 난관을 딛고 일어서며 오히려 자신만의 강점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베르베르는 이 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한 분야에서 대성하려면, 확실히 껍질이 째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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